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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Jun 04. 2020

6시에 육퇴를 했다.

내 삶에서 그리 길지 않을, 지금의 시간을 귀하게 여기고 싶다.

“애들 잔다.”

“벌써? 한 바퀴 돌까?”

“그러자.”     


형님댁에서 아이들과 함께 놀다가 집에 가려고 차에 탄 지 1분쯤 되었을까? 미처 지하주차장을 빠져나가기도 전에 두 아이 모두 깊은 잠이 들었다. 휴대전화 시간을 확인하니, 6시 11분이었다. 형님댁이 바로 앞 단지라 신호 한 번이면 우리 아파트에 도착하지만 잠든 아이들을 좀 더 깊이 재워서 집으로 데리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우리 부부는 아파트 단지를 크게 한 바퀴 돌았다.      


“일단 집으로 안고 올라가자.”

“설마 깨진 않겠지?”

“둘 다 목 넘어간 거 봐. 깰 상황이 아냐.”     


나는 둘째를, 신랑은 첫째를 안고 집으로 올라왔다. 현관문 비번을 누르는 소리에 둘째가 한 번 울긴 했지만 다행히 잠에서 깨진 않았다. 무사히 두 아이를 안방에 눕히고 이부자리를 정돈해준 뒤, 암막 블라인드를 조절해 최대한 방을 어둡게 해준  다음 살금살금 방에서 나왔다.     


“이대로 우리 육퇴겠지?”

“그럴 것 같은데?”

“근데 밖이 너무 훤해서 한 두어 시간 자다가 깨면 어쩌지? 두 시간이라 해봐야 8시라 완전히 깜깜하진 않을 것 같은데…….”

“그런 일은 없을 것 같다. 문제는 내일 아침에 진짜 일찍 깨겠지.”

“그럼 우리도 빨리 저녁 먹고 정리하고 열 시 전에 자자.”

“근데 뭐 먹지?”     


아이들이 깰까 봐 소곤거리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우리의 목소리에는 오랜만에 너무 이른 육퇴를 한 설렘과 두근거림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저녁으로 뭘 먹을지를 한참 고민하다 평소에 먹고 싶었지만 두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달려드는 탓에 먹지 못했던 햄버거를 먹기로 했다. 이른 육퇴를 했으니 근사한 저녁이라도 먹어야 하나 싶었지만, 우리 두 사람 모두에게 그런 저녁을 차릴 에너지는 없었기에 그나마도 평소에 먹기 어려운 걸 먹어보자 싶었다. 햄버거와 프렌치프라이는 먹기에 딱 알맞은 온도로 금방 배달되었고, 우리는 오랜만에 넷플렉스에서 드라마 한 편을 재생하고는 각자의 햄버거를 오물오물, 그리고 천천히 음미하며 먹었다.      


“얼마만이지? 햄버거?”

“몰라. 오랜만이긴 하다.”

“잠시만, 이거 봄이 우는 소리 아니야? 음소거 음소거!!”

……

“아니다. 아구, 이제 막 환청이 들린다.”     


고요히 잘 자는 아이들의 모습을 문 너머로 살짝 확인한 후에야 다시 천천히 햄버거를 먹었다. 역시 천천히, 식기 전에 먹는 음식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었다.           




우리 집 두 아이는 모두 아침형 인간, 아니 새벽형 인간들이다. 6시 전후로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한다. 나도 그렇게 잠이 많은 편이 아니고 굳이 구분을 하자면 아침형 인간에 속하는 편이었지만, 두 아이를 키우면서는 단 한 번도 아이들보다 먼저 일어나 본 적이 없다. 언제나 아이들의 “엥~”하는 소리가 내겐 알람 소리였다.

 

첫째 사랑이는 통잠을 잔 5개월부터 13개월쯤까지 8시 전에 잠을 자고 다음 날 새벽 4시 40분경이면 일어났다. 정말로 아이 몸 어딘가에 알람시계가 장착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을 만큼 어김없이 그 시간쯤 이면 잠에서 깼다. 아이가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은 나에게 저녁 시간이 주어지는 것이라 좋기도 했지만, 4시 40분은 일러도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그나마도 여름에는 주변이 어슴푸레 밝아지는 시간이었지만, 겨울에는 아이가 깨고 두 시간이 지나도록 주변이 어두컴컴했다. 그래도 아이가 일찍 자는 덕분에 저녁이면 집안일을 몰아하기도 하고, 신랑과 치킨을 시켜 먹기도 하고, 책을 읽거나 일기를 쓰기도 했다. 다음 날 아침이면 어제 좀 일찍 잘 걸 후회하는 날도 있긴 했지만, 육퇴 후의 저녁 시간은 몇 시간의 잠을 포기하기에 손색이 없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첫째가 15개월이 지나니 9시쯤 잠이 들어 7시 30분경까지 잠을 자주었다. 삶의 질이 올라가려고 할 때 때마침 둘째가 찾아왔다. 나는 두 번의 임신 모두 심한 입덧과 불면증을 겪었다. 역시나 잠이 부족했지만 그래도 첫째가 잠을 잘 자주니 그런대로 견딜 만했다.

      

그러다 둘째가 태어나 둘째의 새벽 수유와 이른 아침에 일어나는 첫째와의 시간을 모두 보내려니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온몸에서 이상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고, 그 덕에 살면서 처음으로 내 돈을 주고 보약이라는 것을 지어먹었다. 고맙게도 둘째는 4개월이 지나자 통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 후로 둘째도 성향이 그런 것인지, 첫째의 패턴을 자연스럽게 따라가서인지 몰라도 두 아이 모두 9시 전으로 잠이 들고 6시쯤이면 일어나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아주 가끔씩 두 아이가 모두 낮잠을 자지 않고 종일 열심히 논 날이면, 7시 30분쯤에 잠자리에 들기도 했는데, 오늘처럼 6시에 잠이 든 것은 내 육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그것도 두 아이 모두 동시에 6시에 잠이 들었다는 것은 거의 기적과 같은 일이다. 육퇴를 6시에 하다니!     


저녁을 다 먹고, 드라마 한 편을 다 보고, 어질러진 집안을 대충 정리하고 노트북을 열었는데도 겨우 8시였다. 참, 별일이 다 있구나 싶다. 그러고 보면 직장생활을 할 때 늘 대여섯 시면  퇴근을 했는데, 그때 나는 참 여유로운 저녁을 살았었구나 싶다. 그때 나는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맛있는 저녁을 먹고, 커피 한 잔을 나누며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요가를 배우기도 했고, 각종 연구 모임에 참석하기도 했었다. 오랜만에 별일이 없는 날이면 작은 원룸에서 포장해온 짬뽕을 후후 불어먹으며 노트북에 영화 한 편을 다운로드하여서 보기도 했다. 그러다 훌쩍거리며 울기도 하고, 깔깔대며 웃기도 했다. 혼자서 맥주 한 캔을 마시다 괜히 감성에 취해 하나뿐이었던 천장 등 스위치를 끈 뒤 작은 무드등 하나만을 켠 채로, 슈퍼싱글 침대에 납작 엎드려 좋아하는 시를 필사하거나 일기를 쓰기도 했다. 그렇게 때로는 여러 사람들과 때로는 혼자서, 오롯이 나만을 위한 저녁 시간을 보내며 하루를 마무리했었다. 다음 날 출근을 하더라도 7시에만 일어나면 되었으니 새벽 한두 시에 잠이 들어도 여섯 시간쯤은 푹 잘 수가 있었다.


그랬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화중지병이지만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아이들이 잠이 드는 시간이 내게 허락된 저녁 시간의 시작이지만, 그마저도 오롯이 나를 위해 내 마음대로 쓰기엔 밀린 집안일이 많다. 다음 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엄마, 놀자! 엄마, 엄마!!”를 외치는 두 아이의 목소리를 떠올리면 오늘처럼 이른 육퇴에도 마음 편히 맥주 한 잔 마시기도 망설여진다.

      

그래도 새근새근 다르랑, 옅은 코 고는 소리를 내면서 잠든 두 아이를 보고 있으니 그 저녁 시간쯤, 맥주 한 쯤 없어도 내 삶이 꽤 괜찮은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건 다 해봤으니까, 내 마음대로 내 패턴에 맞춰서 오로지 나를 위해서도 살아보았으니까! 앞으로 몇 년쯤은 더, 여전히 나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나의 시간을 내어주더라도 그렇게 아쉬워만 할 일은 아니다 싶다. 아이들은 나의 시간을 먹고 무럭무럭 자랄 것이고 멀지 않은 미래에 엄마와 같이 자는 밤을, 눈뜨자마자 엄마를 찾는 아침을 모두 잊을 것이다. 그러니 내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그리 길지도 않을, 지금의 이 시간들을 귀하게 여기고 싶다.



     

그나저나 내일 아침에 두 아이가 대체 몇 시에 일어날는지. 새벽 4시쯤 일어나는 일은 없겠지? 그래도 5시까지는 자주겠지? 설마 한두 시간 후에 재출근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이른 육퇴로 인해 여러 가지로 조마조마한 이 밤, 맥주 한 캔으로 이 마음을 달래며 두 아이가 모두 내일 아침까지 무사히 잘 자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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