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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Jun 01. 2020

엄마, 미안해요

네 살 아들에게 먼저 사과받는 미숙한 엄마라니.

“엄마, 미안해요.”      


사랑이가 운다. 아이의 이마와 콧잔등에는 땀방울이 맺히고 아이의 눈에서는 쉴 새 없이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나에게 미안하다고 하는 아이 앞에서 나는 주저앉고 말았다.

      



사랑이는 낮잠 투정이 매우 심하다. 아침 7시 전에 일어나는 아이라 오전 시간을 보내고 나면 열한 시쯤부터는 잠이 오기 시작하는데 아무리 재우려고 해도 안 자려고 버티며 그렇게 짜증을 부린다. 잘 놀다가도 갑자기 소리를 지르거나 떼를 쓴다. 그러니 우리 부부는 어떻게든 사랑이의 낮잠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카시트에만 타면 잠이 드는 아이라 어떻게든 잠이 오기 전에 아이를 카시트에 태우는 것이 우리의 미션인데, 그것도 타이밍을 놓쳐 안 나가겠다고 버티면 어떻게 해볼 도리도 없이 아이의 짜증을 온 마음으로 다 받아 내야 한다.      


오늘 오랜만에 집에서 놀고 싶다고 해서 집에서 오전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 잠투정 시간에 걸리고야 말았다. 업어서 재워주겠다, 밖에 나가보자, 자러 들어가 보자, 온갖 말로 설득을 해도 이미 잠투정에 돌입한 아이는 결코 항복할 뜻이 없었다.      


“안 잘 거야! 자기 싫어! 으아악!!!”     


안 자도 좋으니 짜증을 부리지 말라고 해봐도, 너무 피곤하면 잠시 자고 일어나는 게 훨씬 더 재밌게 놀 수 있는 방법이라고 설득해봐도 어떤 말도 먹히질 않았다. 그러면서 또 화장실에 가겠다고 쫓아다니고, 그때마다 바지와 팬티가 안 내려간다고 나더러 내려 달라며 울고 짜증을 부리는 데다가, 바지를 내려줬더니 벗어질 것 같다고 다시 올리라고 하고…. 한 번 시작된 아이의 잠투정은 재우는 것 말고는 어떻게든 해결이 나질 않았다. 그런데 아이는 잘 뜻이 없으니 해결이 될 리가 없었다.      


“사랑!! 엄마가 그만하라고 했어!!”     


결국, 아이의 목소리의 옥타브가 올라간 만큼, 내 목소리도 높아졌다. 그 한 번의 큰 소리에 아이는 바로 “엄마, 미안해요.”를 외치며 엉엉 울기 시작했다.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아이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마지막까지 끝내 참지 못하고 아이와 같이 화를 낸 나 자신이 미웠다. 아이의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엄마, 미안해요. 나도 모르게 자꾸만 눈물이 나요. 자꾸 눈물이 나서 말을 못 하겠어요.”     


물끄러미 아이를 바라보다 그냥 아이를 안아주었다. 등을 토닥여주었더니 이내 아이의 눈물이 잦아드는 소리가 들렸다.      



“사랑아, 엄마가 안아줄게.”

“응”

“사랑아, 엄마가 너한테 화내고 무서운 표정으로 소리 질러서 정말 미안해.”

“...”

“엄마는 네가 잠이 와서 힘들어하니까 잘 수 있도록 해주고 싶은데, 너는 다 싫다고 계속 짜증만 부리니 엄마도 참다가 화가 났어.”

“그런데요, 엄마. 자기가 싫은 마음이 들었어요.”

“왜 자기 싫었어?”

“그냥요, 그건 모르겠어요. 자기가 싫었어요. 그리고 자꾸 짜증이 났어요.”

“엄마 생각에는 사랑이는 잠이 오면 짜증을 부리는 것 같아.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훨씬 더 좋을 텐데 왜 안 자려고 하는 거야?”

“모르겠어요. 자기 싫은 마음이 계속 들었어요.”

“그럼 사랑이는 지금 뭘 하면 짜증이 나지 않겠어?”

“음... 어... 음...”

“천천히 생각해보고 얘기해도 돼.”

“음.. 어.. 어... 다이소 가서 바다생물 클레이 사도 돼요?”

“그게 하고 싶어?”

“네네네!!!”

“그래, 그럼 나가보자.”          



눕히면 1분도 채 되지 않아 잠이 들 것 같은 아이를 자전거에 태워 다이소로 갔다. 하고 싶다던 클레이를 하나 사고는 돌아오는 길, 아이는 바깥바람을 쐬더니 잠이 좀 깼는지 노래도 부르고 조잘조잘 이야기도 했다. 나도 바깥바람을 쐬고 나니 마음이 조금 진정되는 듯했다.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 생활하다 보면 늘 웃는 얼굴, 늘 좋은 말투로만 아이를 대하지 못하게 된다. 특히나 사랑이처럼 예민하고 고집이 센 아이를 키우는, 완벽주의 성향에 가까운 나에게 늘 웃는 얼굴, 늘 좋은 말투는 거의 불가능한 미션이다. 사랑이가 조금 순하거나, 내가 조금 무던하다면 좀 덜할 텐데 나도 사랑이도 보통은 넘는 엄마와 아들이다 보니 끊임없이 부딪히는 지점이 생긴다. 그럴 때마다 아이와 함께 화내지 않는, 아이보다는 조금 더 참을 수 있는 엄마라면 좋을 텐데 그렇지 못한, 미숙한 내가 참 부끄럽다. 그래도 오늘은 늦지 않게 아이를 안아주고 미안하다 사과할 수 있어서 그나마 참 다행이었다.      


엄마라는 역할은 해도 해도 참 어렵기만 하다. 잘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어긋나는 느낌이다. 주변에서는 나의 그 '잘하려는' 노력이 나와 사랑이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그냥 내려놓고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하라는데 그러기엔 나는 그게 정말 잘 안 되는 사람이고, 사랑이도 이미 그럴 수 없는 아이가 된 것 같아서 조금은 걱정이 된다.


1만 시간의 법칙이라고 해서 어떤 일이든 하루 3시간씩 10년이면 그 일에 능숙해진다는 법칙이 있다. 아직 엄마가 된 지 10년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하루 24시간을 오로지 엄마라는 역할로 살아온 것을 생각하면 1만 시간이 되고도 1만 시간 이상이 더 남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허둥거리고, 헤매느라 정신없는 엄마라니.          




어쩌면 앞으로 나는 지금보다 더 자주 허둥거리고 헤맬지도 모른다. 아이는 점점 더 자랄 것이고, 훈육을 넘어서 교육의 문제까지 미션으로 주어지는 날이 오면 지금보다 더 자주 당황하고 더 자주 실수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자꾸만 생각해야 한다. 다른 무엇보다 아이의 마음을, 적어도 아이가 나로 인해 상처 받고 눈물 흘리는 일은 없어야 함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계속해서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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