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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May 27. 2020

결국은, 부부의 문제였다.

"엄마! 쉬! 쉬!"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사랑이가  며칠 부터 다시 화장실에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엄마, 쉬가 안나오는데 또 쉬가 마렵고 또 마렵고 해."

"엄마, 쉬 안 나오게 해줘."

"엄마, 쉬가 계속 나오려고 해."


아이의 목소리에는 때론 짜증이, 때론 불안함이, 때론 간절함이 가득 배어 있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이의 에 크게 동요하지 않고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는 것뿐이었다.


"사랑아, 쉬가 하고 싶으면 언제든 화장실에 갈 수 있어."

"사랑아, 자꾸 쉬가 마려워서 불안해? 기분이 안 좋아?"

"사랑아, 방금 쉬를 하고 나왔으니까 배 안에 쉬가 없을거야."


하지만 사랑이는 내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또다시 화장실로 뛰어가고 있었다.




사랑이가 이런 증상을 처음 보인 건 두 달 전이었다. 아동학을 전공한 사촌동생에게 물어보니 놀이치료 센터에 오는 아이들 중에 놀이 중간에 화장실에 계속 들락날락 하는 아이들이 가끔 있는데, 부모의 통제가 많은 경우에 그런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사랑이가 처음 화장실에 쫓아 다녔을 두 달 전은, 코로나가 급속도로 퍼지면서 외출도 할 수 없고 어린이집에도 갈 수 없게 되어 하루종일 집에서만 시간을 보낸 지 한 달쯤 되던 때였다. 그렇다 보니 아이에게 잔소리를 늘어놓게 되는 순간이 많았다.


 먹기 싫어하는 아이에게 삼  세끼 " 먹어."라는 말도,

먹기 싫으니 돌아다니면서 어떻게든 안 먹으려고 버티는 아이에게 "앉아서 먹어."라는 말도,

먹었고 나면 하루 세  "양치하자."는 말도,

에너지 넘치는 아이에게 "집 안에서는 뛰면 안 ."라는 말도,

잠깐의 외출이라도 하려 하면 "나갈 때는 마스크 쓰고 나가야해, 절대 마스크 벗으면 안돼."라는 말도,


모두 아이에게는 갑갑한 통제상황으로 여겨졌던 것같았다. 나는 기본생활습관이라고 생각하며 지키려던 것들이 아이에게는 과한 통제로 느껴져 소변이 보고 싶은 신체 반응으로 나타났다니, 혼란스러웠다.

또 봄이가 돌이 지나면서 사랑이가 받는 스트레스도 날로 커졌는데, 그 부분도 영향을 주는 듯 다. 나와 유난히 애착이 강했던 아이였는데 아무래도 동생이 있으니 그 전만큼 시간을 함께 보내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사랑이가 화장실에 쫓아 다닌다고 해서 그동안 어렵게 쌓아온 기본생활습관에 대한 원칙을 깰 수는 없었다. 다만 나의 표현 방법에 문제가 있다면 고쳐야 하는 것이었다. 나도 두 아이와 24시간을 함께 하다보니 지친 마음에 분명히 짜증 섞인 잔소리로 사랑이를 다그쳤을 게 뻔했다. 단호하지만 화를 섞지 않은 그 말투와 표정을 찾기 위해 애썼다.


또 신랑이 봄이를 데리고 잠깐이라도 외출을 해주고, 그동안 사랑이와 질높은 시간을 보내려 노력했다. 봄이가 있을 때는 하기 힘들었던 물감놀이나 클레이 만들기를 하기도 하고, 둘이서 욕조에 들어가 물놀이도 했다.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아서 사랑이의 증상은 사라졌다. 우리 부부는 사랑이의 신체반응이 사라지자 마음도 괜찮아졌다고 여겼다. 하지만 아이의 마음은 아이의 몸과 달랐다.


 회복력이 빨라 금세 아무는 아이의 몸과 달리, 마음은 오래도록 상처를 품고 있었다.




그렇게 조금 방심하며 또다시 나는 단호한 표정으로 아이를 다그치는 엄마가 되어갔다. 나와 달리 허용적인 편인 신랑은 엄마에게 혼난 아이가 안쓰러워 무작정 안아주는 아빠가 되어갔다.

 엄마껌딱지가 되어버린 봄이가 아빠와 둘만의 시간은 필사적으로 거부하면서 나와 사랑이 둘만의 시간 또한 사라졌다. 그래도 사랑이가 내 말을 잘 따라주니까, 또 아빠랑 잘 노니까 괜찮은 줄 알았다. 겨우 두 달만에, 전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심하게 화장실에 쫓아다니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소아 빈뇨'라고 검색을 해보니 신체적 질환일 경우도 있지만 과한 스트레스나 긴장감으로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주로 3~8세 아이들에게 나타나며, 어린이집에 갑자기 가게 되었거나, 동생이 태어났을 때 등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런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사랑이를 면밀히 관찰해보니, 자기 뜻대로 뭔가가 안되거나,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할 때 "쉬!"라며 화장실에 쫓아다녔다. 그리고 그런 순간에는 절대 나를 찾지 않고 아빠를 찾으며 꼭 아빠에게 안겨서 화장실에 가려했다. 또 잘 놀다가도 봄이가 울거나 나에게 안기면 바로 "쉬!"라며 화장실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밖에서 놀때는 주의가 분산되어서인지, 자신의 에너지가 충분히 발산되어서인지 그러지 않는데 집안에만 들어오면 바로 다시 증상이 나타났다.


결국 사랑이의 빈뇨증상에는 엄마의 통제로 인한 답답함, 엄마와 아빠의 훈육방식의 차이로 인한 혼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해야하는데서 오는 불만, 애착 대상과 자꾸만 분리되면서 겪은 불안,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할 기회가 부족했던 환경까지 여러 원인들이 영향을 미친 것이었다.


신랑과 나는 수시로 화장실에 들락거리는 아이를 보며 며칠 간 복잡한 마음에 시달렸다. 그리고 아이의 증상이 극에 달했던 날, 아이가 잠든 후 처음으로 아주 긴 시간동안 아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동안의 훈육방식에 대한 반성과 사랑이의 필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순간들에 대해 곱씹었다. 

돌아보니 구석구석에서 사랑이의 애처로운 눈빛이 보였고 간절한 목소리가 들렸다. 스트레스 상황을 어떻게 해소할지 몰라 헤매는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엄마에게 자신도 봐달라고, 안아달라고 애처롭게  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그 아이 곁에 낯익은 두 사람이 보였다. 함께 있지만 함께 있는 것같지 않은 외로운 모습이었다. 두 사람 모두 오로지 육아에만 매달려 모든 에너지를 쏟아내고 있는, 오로지 부모의 모습이었다.


우리 두 사람이었다.

 

우리 부부는 오랜만에 함께 울었다. 우리의 눈물에는 아이에 대한 안쓰러움과 더불어 곧 나가 떨어질 것 같이 위태롭게 버티고 서있던 서로에 대한 연민이 뒤섞여 있었다.


우리는 아이의 마음보다 서로의 마음을 먼저 다독여야했다. 아주 오랜만에 우리는 서로를 꼭 안아주었다.




신랑과의 대화 이후, 마법처럼 사랑이의 빈뇨 증상이 많이 나아졌다. 여전히 "쉬쉬!!"를 외치며 화장실에 뛰어다니지만 그 횟수가 확연히 줄었다. 엄마와 아빠가 정서적으로 전보다 안정되어서인지 아이도 확실히 조금은 안정을 찾아가는 듯하다. 하지만 지난 경험으로 봤을 때, 마음의 상처는 그리 쉽게 아물지 않을 것이다. 당장 드러나는 신체 반응이 조금은 나아졌더라도, 마음이 모두 나아진 것은 아닐 것이다.  마음의 상처가 흔적없이 아물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전보다 덜 두려운 건, 내곁에는 남의  아닌 내편이 있다는 사실 덕분이다. 여전히 가끔은 남의 편처럼 행동을 해서  속을 뒤집는 묘한 재주를 가진 신랑이지만, 그래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내편이 되어줄 사람임을 안다.


아이의 아픔을 함께 겪으며, 오히려 우리 부부는 전보다 조금 더 단단한 부부가 되어가고 있다. 그 안에서 우리 사랑이도 반드시 정서적인 안정을 찾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둘이 만나 넷이 된 기적의 순간을 잊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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