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만 열면 레시피가 쏟아져 나오는 요즘이지만, 과거엔 웃어른들이나 책, 그리고 미디어를 통해서만 요리 배웠습니다. 어찌 보면 이런 환경 덕분에 저는 멋대로 식재료를 가지고 놀곤 했어요. 그 과정에서 대단한 창작물이 나오지 않은 걸 보건대, 저는 결코 요리 천재가 아니었음을 인정합니다. 그렇지만 제 음식에는 동생들을 향한 애정이 담겨있었어요. 편식하는 동생을 위해 야채, 고기, 밥을 섞어 부친 뒤 음식의 실체를 감추기 위한 방편으로 소스를 덮어 “누나가 개발한 양식이야!”라며 준 적이 있습니다. 물론 동생은 감쪽같이 속아 접시를 홀랑 비우곤 했고요. 그리고 수험생인 여동생에게 고열량 음식을 해주려고 크림 슾에 아이스크림을 섞었는데, 그 맛이 제법 괜찮았던 적도 있습니다. 이렇게 맏언니가 식자재를 가지고 노는 덕에 시식의 특혜를 누리던 동생들은 “맛있다, 독특하다, 최고다”라며 한껏 저를 추켜세우곤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과찬에 힘입어 자만심에 물이 오른 저는 결국 작은 사고를 치게 됩니다.
혼자 집에 있던 날이었습니다. 그때 전 감자 크로켓을 만들어서 식구들을 깜짝 놀라게 해 줘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감자를 찌고 으깬 뒤, 갖은 야채와 햄을 야무지게 다지고 섞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감자에 날 야채를 섞지 않았다는 점은 스스로 칭찬해 주고 싶네요. 야채에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고 투명해질 때까지 잘 볶아서 으깬 감자와 섞었거든요. 그러나 자랑스러운 순간은 딱 요기까지!
잘 빚은 크로켓에 빵가루만 덥석 입혀 튀긴 겁니다. 밀가루와 달걀로 속옷을 입힌 뒤에 빵가루 외투를 걸쳐줘야 하는데 말이죠. 이렇게 부실하게 옷을 걸친 크로켓은 끓는 기름으로 들어가자마자 산산이 부서지고 해체됐습니다. 튀김 팬 안에서 몸부림치던 감자 반죽은 결국 공중으로 튀어 올라가기까지 해서 저를 혼비백산하게 했고요.
그때의 허무함과 황당함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어, 감자 크로켓을 만들 때마다 절 미소 짓게 합니다. 감자 기름 죽이 돼버린 크로켓과 화가 잔뜩 나서 이를 노려보던 갓 스물을 넘긴 내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찰나처럼 지나가 버린 많은 세월을 생각하면 코끝이 매워지기도 하고요. 호작질 해놓은 음식에 환호를 보낸 동생들까지 중년이 되었으니 정말 세상에서 가장 빠른 것은 시간이란 녀석이 아닐는지요.
지난 시간, 저는 수없이 많은 크로켓을 만들고 레시피를 변형시켰습니다. 후일엔 연륜이 생겨 레시피 없이 맘대로 요리를 해도 실패가 거의 없더군요. 그러다 심지어 주인공인 감자를 아예 몰아낸 새로운 크로켓을 탄생시켰는데, 맛과 영양 모두 후한 점수를 받은 아이라 레시피를 공유합니다. 치즈와 김치를 끌어안은 돼지 안심 크로켓!
돼지안심 700그램
김치 200그램
치즈 100-120그램
달걀 1개
밀가루 1컵
빵가루 2컵
파, 소금, 후추 약간
식용유
1. 돼지 안심을 1센티 두께로 썰어 살살 두들겨 늘려줍니다. 반드시 안심을 사용하셔야만 합니다. 등심은 잘 늘어나지 않아요. 이렇게 하시면 15~20개 정도의 크로켓이 나옵니다.
2.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합니다.
3. 고기 양 면에 밀가루를 묻힌 뒤 김치(다져서 꼭 짜주세요), 치즈, 파를 얹고, 잘 눌러서 싸주세요. 치즈는 모차렐라, 프로볼리니, 스위스 치즈 다 괜찮아요.
4. 조런 모양이 되도록 해주세요.
5. 위의 고기를 밀가루 —> 치즈—> 달걀 —> 빵가루에 묻혀서 크로켓을 만듭니다.
6. 기름에 튀겨서 반을 자르거나 통째로 서빙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