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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킴 Mar 02. 2019

칼질 좀 하는 언니가 칼과 함께 사는 법

우리 집에는 극진한 대접을 받는 '칼 님’이 몇 분 계십니다. 저는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그분들을 부려먹지만, 미션을 완수한 뒤에는 깨끗이 목욕시켜 칼집에 고이 뉘어드립니다. 그리고 임무수행 중에도 보드라운 행주나 도마 위에 누워계시도록 배려합니다. 칼님들을 아무 데나 방치하는 일은 제 부엌에서는 절대 없습니다.


제가 이렇게 유난을 떠는 이유는, 칼날에 작은 흠집이라도 나거나 몸매의 발라스가 흐트러져서 생기는 불이익을 모두 제가 감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워낙 예민하신 분들이거든요. 그 결과 우리 집 '칼 님'들은 임무 수행 능력이 대단해서, 제 손목의 스냅이 도마 쪽으로 내려올 때마다 음식물을 가차 없이 단박에 베어버립니다. 그리고 용모 또한 단정해서 다들 나이를 가늠하지 못하더군요. 이게 다 제 철저한 관리 덕분입니다.


칼은 무조건 칼집 안에서 잠들어야 합니다.


제가 너무 거창하게 수다를 떨어서 독자분들께서는 절 칼 오타쿠로 오해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실상을 밝히자면, 저는 칼에 유난한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 절대 아닙니다. 진정 칼을 애정 하시는 분들은 어마 무시한 수량의 칼을 수집하고도 배주린 승냥이처럼 계속 칼을 찾아다니시던데, 저는 그런 분들과는 거리가 아주 먼 사람이에요. 단지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까, 자연히 칼의 관리에 신경을 쓰게 된 것뿐입니다. 요리에 있어서 칼질은 기본이고, 칼질을 잘하려면 칼이 잘 들어야 하는데, 이는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니까요. 그래서 오늘은 칼에 관한 제 경험을 편안하게 풀어볼까 합니다. ‘칼에 관한 수다' 정도로 받아들이시면 될 것 같아요.


칼질이 왜 중요하지?


저는 무딘 칼을 못 견뎌합니다. 이런 제 덕분(혹은 때문?)에 남편은 칼 가는 고수가 돼버려서, 일반 칼은 물론 까다로운 다마스커스 칼까지 아주 예리하게 갈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도 부족해서 일 년에 한 번은 전문샵에 가서 칼을 갈아옵니다. 제가 이렇게 까탈을 부리는 이유는, 올바른 칼질을 위해서입니다. 칼의 날이 바로 서있어야 재료를 제대로 썰 수 있거든요.


무딘 칼로 음식을 썰면 아무래도 재료에 압력을 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 채소의 경우엔 비타민이 파괴되고 육류는 즙이 빠져나가 영양소와 맛을 잃게 됩니다. 뱃속으로 들어가면 그만인 음식물에 왜 그리 신경 쓰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썰어진 사이즈에 따라 음식의 식감과 결과물이 달라집니다. 채나물을 머리카락처럼 가늘게 썰면 씹는 맛도 없거니와 무에서 나온 물로 나물이 질척해질 겁니다. 돈가스에 곁들이는 양배추를 큼직하게 썬다면, 비주얼은 둘째치고 씹는 맛이 어떨까요? 그리고 익는 속도나 두께가 다른 음식을 함께 조리할 때는 당연히 크기를 달리 조절해가며 칼질을 해줘야 하겠지요. 이렇게 칼질은 음식의 맛과 영양, 식감에 두루 영향을 끼칩니다.


요리할 때 얼마나 많은 칼이 필요할까?


한때, 유명 브랜드의 칼을 풀세트로 들여놓는 유행이 있었습니다. 인맥을 통한 방문판매로 구매가 이루어지다 보니, 강매를 당하다시피 했다는 분들이 많았어요. 저도 구매를 강요받긴 했지만,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그 칼들을 내가 다 사용할 것 같지도 않았거니와, 무엇보다도 칼은 내 손과 몸에 꼭 맞는 것으로 직접 골라서 하나씩 구매해야 한다는 것이 제 지론이었거든요. 그래서 현재 제가 갖고 있는 칼은 다마스커스 방식으로 만든 산도쿠 나이프와 고기 써는 칼, 생선포 뜨는 칼, 빵칼, 그리고 과일칼이 다입니다. 대신 칼 하나하나가 내 손에 잘 맞고 내가 이겨낼 수 있는 무게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적은 수의 칼을 사용하니까, 관리하기도 수월합니다.


다마스커스 나이프. 성질이 다른 쇠를 섞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물결 무늬가 납니다.
산도쿠 나이프. 끝이 뭉툭하고, 야채가 들어붙지 않도록 칼날에 홈이 패여 있습니다.


빵 써는 칼. 빵 뿐만 아니라 부드러운 식재료 썰 때도 편합니다.


산도쿠 나이프는 한자어로 삼덕, 즉 세 가지 좋은 점을 의미하는데, 이는 다지기, 얇게 썰기 그리고 깍둑썰기를 의미합니다. 즉, 채소 써는 데에 최적화된 칼입니다만, 다목적용 칼로 사용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칼날이 예민하므로 뼈 있는 고기나 언 고기에는 사용 금물입니다. 사실 고기에는 전용 칼을 따로 사용하는 것이 좋아요. 산도쿠는 칼 두께가 얇아서 저미거나 채 칠 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힘을 많이 받지 못합니다. 고기 써는 칼은 두께 감이 있어야 편하게 썰리고, 아무래도 칼 끝이 뾰족해야 손질할 때 편하겠지요.


어떤 칼을 구매해야 할까?


칼은 매일 사용하는 도구이기 때문에 내 몸의 일부처럼 손에 잡았을 때 편안해야 합니다. 나와 맞지 않는 칼을 쓰게 되면 아무래도 팔과 어깨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칼을 살 때는, 직접 잡아보고 써는 시늉도 해본 뒤에 내 몸과 칼이 잘 맞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인터넷으로 가격과 모양만 확인한 뒤 구입하는 것은 비추여요.


제 경우를 예로 들자면, 원래 전 명품 칼을 원했었습니다. 장인의 손길과 혼이 들어간 칼을 점찍어놓고 있었지요. 그런데 직접 칼을 들어보니, 고가의 칼들은 무게감이 있더군요. 특히 다마스커스 칼은 두 가지의 성질이 다른 쇠를 섞어 만든 칼이라 대체로 무거웠습니다. 게다가 고급 칼들은 손잡이까지 무거워서 체구가 작은 제가 들기엔 무리가 있었어요. 그래서 결국 고가 라인의 칼들에 대한 미련을 깡그리 버리고, 제 손과 몸에 맞으면서도 퀄리티가 웬만한 다마스커스 칼로 타협을 봤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데려온 아이를 잘 관리해준 결과, 지금은 칼이 제 손에 잡히는 순간 내 몸의 일부인 것처럼 자유자재로 편안하게 사용합니다.


칼은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요리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좋은 칼에 대한 욕심이 있게 마련이지요. 그런데, 저는 비싼 칼을 사놓고 홀대하는 경우를 너무나 많이 봤습니다. 그럴 때마다 칼도 지 팔자가 있다는 생각을 해요. 가정에서도 칼은 적절한 관리가 필요한데 말이죠. 그래서 칼을 집에서 손쉽게 할 수 있는 관리법 몇 가지 소개합니다.


첫째, 칼은 지 몸뚱이가 날카롭기 때문에 쇠를 아주 싫어합니다. 그러니 사용 후 즉시 칼집에 보관해주세요. 싱크에 다른 설거짓거리와 함께 섞여 있으면 칼날이 손상받기 쉽습니다. 특히 여러 칼을 함께 서랍에 보관하는 것은 절대 피해 주세요.

둘째, 칼은 절대 식기세척기에 넣지 마세요. 칼날을 무디게 만드는 지름길입니다.

셋째, 칼은 갈아줌과 동시에 발란스도 잡아줘야 합니다. 도마에 칼이 닿을 때마다 주어지는 압력으로 인해, 칼날이 한쪽으로 휘게 되거든요. 셰프들이 샤프닝 스틸(sharpening steel)이라고 불리는 봉을 들고 칼을 가는 이유는 기울어진 칼날을 바로잡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을 영어로는 Honing이라 하는데, 사전을 찾아보니 '호우닝'이라고만 돼 있네요. 아직 적절한 우리말이 없는 것 같습니다.


왼쪽은 칼날이 한쪽으로 휜 상태, 오른쪽은 호우닝을 한 뒤의 모습



칼날의 중심을 잡아주는 도구인 샤프닝 스틸(sharpening steel)


칼날의 중심을 잡아주는 샤프닝 스틸의 사용법은, 사진에서처럼 봉을 직각으로 세워놓고 칼날을 양쪽으로 스쳐주면 됩니다.


넷째, 앞서 말했다시피 호우닝은 칼날을 바로 잡아주는 것이 주목적이기 때문에, 무뎌진 칼날에는 별도의 관리가 필요합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전동 칼갈이를 쓸 수도 있고 숫돌을 써도 되겠지요. 그런데, 칼 가는 방법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숫돌을 사용하게 되면 오히려 칼을 망가뜨리게 됩니다. 고루 힘을 분산해서 갈아야 칼날이 고르게 되는데, 그게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저는 차라리 전문가의 손길을 빌리시라 권합니다. 샤프닝 스틸을 사용하면 칼을 자주 갈지 않아도 되니, 일 년에 한 번 정도 전문샵에 가져가시면 될 겁니다.


제게는 1991년에 데려와 아직도 매일같이 현역으로 뛰게 하는 칼이 있습니다. 대단한 명품이 아닌 평범한 독일제 칼이지만, 제가 잘 아껴준 결과 상태가 아주 좋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 사용했기 때문에 제 손에 아주 편해요. 한 삼 년 전 데려온 다른 아이가 있는데, 그 칼과 비교해도 성능이 뒤지질 않습니다. 이처럼 칼을 잘 보듬어주면 요리를 편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칼의 수명 또한 길어집니다. 그리고 칼질 실력은 덤으로 향상되는 것이고요. 제가 칼질 좀 한다는 소릴 듣는데, 그 비결을 묻는 사람들에게 저는 늘 칼을 잘 보살펴주라는 대답을 합니다. 요리의 기본이 칼질이라면, 칼질의 기본은 칼을 잘 관리하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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