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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킴 Jan 28. 2019

영화 속 후라이드 치킨에서 우리의 슬픈 과거를 보다

후라이드 치킨과 부대찌개 그리고 삼겹살의 우래를 살펴본다

음식 한 그릇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 음식에 영향을 준 역사와 기후, 생존을 위해 몸부림친 사람들의 사연이 담겨 있는 겁니다. 인류는 주어진 상황 속에서 지혜롭게 레시피를 개발하기도 하고, 절대 빈곤 속에서는 먹거리로 적합하지 않은 음식까지 식탁에 올리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음식이 ‘생존’ 또는 ‘식도락’ 이상의 의미를 가질 때도 있습니다. 민족의 아픈 역사가 음식과 결부되면, 국가와 민족 자존감을 건드리기도 하지요. 그래서 때로는 음식으로 인해 원치 않는 정체성과 연결되기도 하고, 영광스럽지 못한 과거가 소환되기도 합니다.


 

흑인과 후라이드 치킨의 굴욕적 역사


영화 <그린북>의 주인공 돈 셜리는 후라이드 치킨 먹기를 거부합니다. 그는 학자에 피아니스트인 데다 막대한 부를 가지고 있지만, 인종차별이 있던 1960년대를 살던 흑인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면 그가 치킨을 보이콧하는 것이 충분히 이해가 갈 정도로, 그는 백인들에게 자신의 신분에 맞지 않는 대우를 받습니다. 그는 후라이드 치킨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을 거부하고 싶었을 겁니다. 영화에서 자세히 다루지는 않았지만, 후라이드 치킨에 담긴 조상님들의 이야기를 그가 모를 리 있나요. 그에게 있어서 후라이드 치킨이란 ‘찌꺼기 닭을 튀겨 먹고살던 노예의 후손'이라는 굴욕스러운 정체성을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던 것입니다.



흑인을 상징하는 음식으로 알려진 후라이드 치킨은 치욕과 고난의 시간 속에서 탄생한 음식입니다. 그들이 백인들의 노예로 살던 시절, 농장주들은 닭을 오븐에 구워 먹었습니다. 그때 손질하고 남은 찌꺼기(날개, 목, 발 등)를 노예들에게 줬는데, 살이 별로 붙어있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튀겨 먹었던 겁니다. 양을 늘리기 위해 닭에 반죽을 입히고 버리는 돼지기름을 사용했는데, 이는 생존을 위해서 개발된 처절한 레시피였습니다. 손질하고 버린 닭이라도 그들에겐 소중한 단백질 공급원이었으니, 어떻게든 먹어야만 했던 것이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튀긴 닭이 맛이 있어서 후일 백인들은 물론 전 세계인들이 즐겨 먹게 됐다는 사실입니다.


굴욕적 치킨, 전 세계인에게 사랑받게 되다


당시엔 계량종 돼지가 널리 분포돼 있던 때라, 흑인들은 돼지기름인 라아드를 쉽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신의 한 수였던 겁니다. 라아드에 음식을 튀기면, 바삭함과 고소한 맛이 더해지니까요. 바로 그런 이유로 일본의 가장 오래된 돈가스 전문점에서는 아직도 식물성 기름과 라아드를 섞어 사용합니다. 게다가 흑인들의 뼈째 튀긴 닭튀김은 살코기만 발라 오븐에 구운 닭보다 더 감칠맛이 났는데, 이는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뼈에 붙은 고기는 골수가 흘러나와 맛을 더하거든요. 갈비나 꼬리 부분의 살이 더 맛있는 이유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래서 뼈를 고아서 탕을 만들거나, 국물 베이스로 사용하기도 하는 것이죠. 이 맛있는 부위를 백인들은 버린 겁니다.



이렇게 가난한 노예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던 후라이드 치킨은 노예 해방 후 여자 흑인들이 백인 가정의 메이드로 일하게 되면서 레시피가 퍼지게 됩니다. 물론 이때부터는 다듬고 남은 닭이 아니라, 뼈에 살이 잔뜩 붙은 닭으로 요리를 하게 됐지요. 영화 <헬프>에서는 흑인 메이드가 여주인에게 맛있는 치킨 만드는 비법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메이드는 그 비결이 '쇼트닝'이라고 합니다.


영화에서 흑인 메이드가 열을 올리며 극찬하는 쇼트닝은 돼지기름 대용품으로 개발된 고형 지방입니다. 잘 상하지 않는 데다, 튀김을 바삭하게 만들어주니까 맛있는 후라이드 치킨을 만들고 싶은 그녀에겐 사랑스러운 비밀병기였겠지요. 그렇지만 쇼트닝에는 트랜스 지방이 많이 함유돼있어서, 건강과 미용에 최악임을 알려드립니다. 그래서인지 후라이드 치킨은 아직도 흑인들을 비하할 때 자주 사용됩니다. 노예들의 음식이었다는 역사적 배경, 게다가 살찌는 정크 푸드라는 인식을 더해 인종차별을 위한 소재로 악용하는 것이지요. 흑인을 후라이드 치킨에 열광하는 한심한 종족으로 묘사해놓은 장난질이 인터넷에서 너무도 쉽게 발견됩니다. 오바마조차도 이런 도마에 오른 걸 보면, 흑인들에게 있어서 후라이드 치킨이란 억울하게 달고 있는 주홍글씨 같은 것인가 봅니다.


흑인들의 치킨에서 우리의 아픈 과거를 보다


흑인과 치킨에 대한 글을 쓰다 보나, 아픈 과거사를 통해 탄생한 우리의 음식이 떠오릅니다. 수없이 전쟁을 치르고 다른 나라에 수탈을 당하는 과정에서, 우리도 흑인들처럼 '재활용 음식'을 발전시킨 사례가 있죠. 타민족이 버린 음식을 먹으며 생존해야 했던, 지지리도 가난했던 우리의 아픈 과거가 담겨 있는 먹거리가 있습니다. 이젠 우리 민족의 애장 메뉴가 돼버린 음식들이지만, 그 재료가 우리 식탁에 흘러든 과정은 처절하기만 합니다.


삼겹살 데이가 생겨날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사랑받는 삼겹살은 일본인들이 돼지 사육을 한국에서 한 데에 유래합니다. 그들은 냄새나고 오수를 많이 내는 돼지 사육장을 만만한 한국에 차려놓고 도축까지 해간 겁니다. 당시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에 돈가스를 많이 소비했기 때문에, 등심과 안심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필요 없는 껍데기는 버리고 간 것이지요. 그 껍데기가 바로 삼겹살의 형태로 한국인의 사랑을 받게 됐습니다.



또 다른 예로, 전쟁의 아픔이 담긴 음식인 부대찌개를 살펴봅니다. 잘 알려진 데로 부대찌개는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소시지와 햄에 의해 탄생한 음식입니다. 그런데 어떤 경로로 군부대의 음식이 민가로 흘러나왔을까요? 이는 불법으로 유통되기도 했고, 유통기한이 지나 버린 것과 먹다 남은 잔반 등을 주워다 만들었다고 하네요. 전쟁 중이라 식량이 부족해서 미군의 쓰레기통까지 뒤져 죽을 끓여먹을 때였으니, 유통기한 지난 소시지는 소중한 먹거리였을 겁니다. 거기에 고추장과 김치를 추가해 찌개로 만든 것은 우리 입맛에 맞게 먹기 위함이었다고 하는데, 사실 양을 늘리기 위해서였다는 설도 있습니다. 저는 후자의 설이 더 설득력 있다고 보는데, 이는 '탕반 민족'이라는 우리의 정체성 내지는 식문화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유난히 국물 요리가 발달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로, 워낙 가난했기 때문에 적은 양의 재료로 가족을 먹이기 위한 궁여지책이었고, 둘째로는 외침을 많이 받다 보니 피난 다니며 간단하게 국밥 형태의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고도 합니다. 이런 고난의 시간 속에서 국물과 함께 살아온 우리 민족이 소시지와 햄을 찌개의 재료로 사용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겠죠. 그 과정에서 건강에 전혀 도움 안 되는 햄과 소시지로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낸 것이고요. 발효식품인 김치와 고추장, 그리고 다른 야채들을 넣었으니 정크 푸드로 분류되는 식재료를 최대치로 신분 상승시킨 예가 아닐는지요


곰곰이 생각하니 삼겹살의 경우에도 삶거나 굽는 과정을 통해 지방질은 제거하고 콜라겐이 있는 껍질은 남겨서, 너무도 잘 활용해 먹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삼겹 수육을 새우젓과 곁들여 먹은 것은 조상님들의 지혜가 빛나는 부분입니다. 고기 거의 먹지 못했던 시절, 단백질과 지방질을 분해하는 새우젓과 음식 궁합을 맞춘 삼겹살 수육은 민초들의 배탈을 막아줬을 테니까요. 그래서 모진 세월 속에서 살아남은 우리의 먹거리에 의미 부여를 해봅니다. 영광스러운 순간만이 역사는 아니기에 아픈 과거 또한 끌어안아야 하니까요.


*이 글이 흥미 있으셨다면, 제가 전에 썼던 <음식에 걸린 민족 자존감에 대한 단상>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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