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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킴 Jun 02. 2018

음식에 걸린 민족 자존감에 대한 단상

돈가스를 스토킹하다

요리하길 좋아하는 저는 음식이나 레시피 검색을 자주 하는 편인데, 그러다 보면 결국 음식과 한 국가의 역사를 연결하게 되곤 합니다. 사람이란 존재가 먹지 않고는 살 수 없으니, 역사에서 음식이 차지하는 위치는 중요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즉 인류의 탄생과 함께 음식의 역사도 시작됐고, 인류의 역사는 곧 음식의 역사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인지 외국 친구들과 얘기하다 보면 특정 음식을 두고, 그 국적에 대해 자존심을 세우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음식에는 민족의 자긍심이 달려 있습니다.


한 중국인 친구는 일본인들을 ‘외국에 사는 중국인’이라 비하한 적이 있습니다. 중국 음식이 일본에서 변형, 그들의 상징 처럼 알려져 있는 것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한 것이죠. 친하게 지내는 오스트리안 패밀리는 슈니첼(Schnitzel)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해서, 슈니첼의 최강자는 독일이 아닌 자신들이라고 종종 말하고요. 그리고 제 경우엔, 김치는 먹어 본 적 없고 기무치를 먹어봤다는 한 캐네디언의 말에 자존심이 크게 구겨진 적이 있어요. 더구나 맛이 달달하더라는 말을 듣고, 기무치가 망가뜨린 김치의 참 맛에 화가 나서 김치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했던 기억이 나네요. 이런 경우를 보면 음식이란 단지 배를 채우는 먹거리가 아니라, 한 민족의 자존감 그 자체임이 분명합니다.


이와 반대의 경우가 있는데, 유명 유튜버가 자신의 채널에서 돈가스를 ‘한국의 포크 커틀릿’이라고 소개하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순간 은근 화가 나더군요. 돈가스는 유럽의 슈니첼(Schnitzel)을 일본에서 변형시킨 것인데, 어떻게 기본 팩트도 알아보지 않고 그릇된 정보를 당당히 소개할 수 있나 해서요. 그리고 이런 발언은 차칫 한/일 간의 불화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생각에 걱정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답글을 확인하니, 예상대로 일본인들이 반박하는 내용을 남겼더군요. 이건 단지 하나의 예에 불과하지만, 유튜버들은 좀 더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리 누구나 유튜브에서 채널을 운영할 수 있다지만, 유튜브야 말로 전 세계에 공개되는 미디어 아닙니까


지역에 따라 모습과 이름을 달리 하는 슈니첼(Schnitzel)


호기심이 많은 저는 이 일로 인해 돈가스를 스토킹(?)해 봤습니다. 돈가스가 슈니첼의 일본화된 음식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왜’ 그리고 ‘무엇’ 때문에 일본인들이 돈가스란 음식을 탄생시켰는 지 궁금했던 것이죠. 사실 그 이전엔 돈가스보다 슈니첼에 대해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돈가스는 오랜 시간 가까이 있어 온 음식이고, 슈니첼은 새롭게 알게된 음식이었으니까요. 두툼한 고기를 기름을 듬뿍 담은 팬에 튀겨내는 돈가스와 달리, 최대한 고기를 얇게 두들겨 기름에 지져내는 슈니첼의 레시피가 저의 흥미를 자극한 데다, 사워 크림에 버무린 오이와 함께 먹는 조합이 맘에 꼭 들었기도 했습니다. 부침개 부치듯이 기름에 지져낸 고소한 슈니첼 한 조각에 상큼한 오이 샐러드를 얹는 것은 환상이 콤비 바로 그 자체이거든요.


레몬만 살짝 뿌려 먹는 오스트리아의 슈니첼


여기서 슈니첼에 대해 간단 요약을 하자면,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방식에는 각기 특색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고기를 얇게 두들겨 밀가루, 달걀과 빵가루를 입혀 기름에 지져(돈가스처럼 기름에 튀기는 방식이 아님)내는 방식은 같지만, 이를 어떻게 서빙하느냐가 다릅니다. 독일은 예거 슈니첼(Jagerschnitzel)이라 해서, 기본 슈니첼에 버섯이 들어간 그래비 소스를 얹어 냅니다. 같은 레시피이지만 오스트리아에서는 소스 없이 레몬즙만 곁들이고요. 그리고 두 나라 다 기본적으로 돼지고기를 사용하지만 닭고기, 송아지 고기도 슈니첼의 재료가 될 수 있습니다. 단, 송아지 고기로 만든 뷔너 슈니첼(Wiener Schnitzel)은 오스트리아 스타일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독일이 반박 못하도록 오스트리아가 아예 못 박아 버린 바 있기 때문인데, 음식을 두고 벌이는 두 나라 간 자존심 싸움의 한 예라 볼 수 있겠어요. 그리고 프랑스의 코틀렛(Cotelette), 이태리의 스켈로피니(Scallopini) 라는 요리가 슈니쯜과 매우 유사한데 설명이 너무 길어지므로 이 선에서 그치도록 하겠습니다.


버섯 그래비를 끼얹어 먹는 독일의 슈니첼


이렇게 지역마다 다른 슈니첼이 메이지 유신 때 일본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당시는 서양 문물을 개방한 때로 음식 뿐 아니라 일본 사회 전반에 변화가 오게 돼죠. 그 중 하나가 중앙집권 체제로 바뀌면서 상류 계급인 사무라이가 몰락한 것이었는데, 이로 인해 특권과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사무라이들은 체면을 내팽기치고 생존을 위해 장사나 노동에 까지 뛰어들어야 했습니다. 그들 중 요리를 좋아하던 기타 모토지로라는 사무라이가 요코하마에서 우연히 본 서양의 돼지고기 커틀릿을 일본 덴뿌라 처럼 기름에 튀겨서, 일본인의 주식인 밥과 함께 먹도록 고안해 낸 것이 오늘날의 돈가스가 됐습니다. 간지에 죽고 살기 때문에 할복자살 이라는 컬쳐까지 만들어 낸 사무라이께서, 오늘날 남녀노소가 다 좋아하는 돈가스를 개발하셨다니, 참 아이러니하지요.


왜 우리는 돈가스가 일본의 음식이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할까?


일본의 역사와 행동 양식을 지배해 온 가치 중, ‘화혼양재’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일본의 전통 정신에 서양의 문명을 받아들여, 자신들의 고유 문화로 재탄생시킨다는 것이죠. 음식에서는 카레, 돈가스, 함박스테이크, 오무라이스 등이 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즉, 화혼양재는 앞서가는(또는 다른) 문명을 받아 들이겠다는 일본인들의 오픈 마인드와 진취적 정신을 보여주는 예로, 일본인들에겐 자긍심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음식에 있어서의 화혼양재는 그 근원이 어디서 왔든, 재탄생된 새로운 음식은 자신들의 창작물이며 역사의 일부가 되는 겁니다.


어쩌면 이는 김치를 향한 우리의 마인드와 같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김치가 기무치와 동일시, 또는 혼돈될 때  분노합니다. 일본 발음으로는 한국의 김치와 일본의 기무치 모두 기무치로 표기될 수 밖에 없으나, 김치는 명백한 우리의 음식이니까요. 그리고 단순하게 절인 기무치와 달리, 시간과 정성을 들여 발효시킨 김치는 기무치와 다른 카테고리에 속하는 음식이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우리는 오랜 역사를 통해 각종 장류와 김치 등의 발효식품을 발전시켜왔기 때문에 이는 우리 민족의 자존감이 걸린 문제가 됩니다. 즉, 김치가 기무치로 오인받는다는 것은, 우리나라 음식의 기본 특성과 역사를 무시 당하는 것이죠. 그래서 메이지 유신이라는 역사의 일부를 차지했음은 물론, 화혼양재라는 일본의 핵심적 정신이 깃든 돈가스 또한 일본에겐 중요한 음식일 수 밖에 없는 것이라 봅니다.



다음 주 게시물에서는 ‘마마킴의 아주 특별한 돈가스’ 레시피를 공개합니다. 밀가루, 달걀, 빵가루를 입히는 흔히 쓰이는 방법이 아닌, 마마킴만의 비밀 레시피를 기대하세요! 일단 돈가스의 모습만 살짝 공개해 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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