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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킴 Dec 22. 2018

예기치 못한 사고는 새로운 레시피를 낳는다

깔끔하고 손끝 야무지다는 평을 듣는 저의 반전 매력(?)은 조심성 없고 덜렁거린다는 겁니다. 게다가 성질까지 급하다 보니 자잘한 사고를 잘 치는 편입니다. 손도 잘 베고, 여기저기 부딪치기도 잘하지요. 우리 집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 부엌에서 터져 나오는 제 비명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이 평정심을 잃지 않고 각자 자기 할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남달리 큰 목청으로 질러대는 소리에도 불구하고, 워낙 자주 듣다보니 무뎌져 버렸지요. 사실 제 남편은 덜렁이 마눌님을 위해서 침대 모서리를 천으로 감싸 놓을 정도로 자상한 사람입니다. 추위 타는 저를 위해 밤마다 팥 주머니를 데워서 침대에 넣어줄 정도로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죠. 그러나 이런 남편도 시도 때도 없이 들려오는 비명에 일일이 반응하기는 버거운가 봅니다. 그릇 깨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한, 반응을 안 하는 걸 보니 말이에요. 그릇을 깼을 때는 남편이 초속으로 달려와 제게 저리 가라 손사래를 칩니다. 깨진 그릇을 치우다가 제가 저지를 수 있는 2차 사고를 막으려는 것이지요.


남편은 늘 말합니다. ‘우리 집은 가구를 모두 없애고 그릇은 플라스틱으로 하는 게 나을 것 같다’라고요. 그렇지만, 저는 유용한 실수도 곧잘 저지른다는 사실을 이 자리를 빌려 밝히고 싶네요. 그 증거물로 저는 실수로 얻어진 레시피들을 공개하려 합니다. 제가 사고뭉치인 건 맞지만, 저는 그 사고를 수습해서 다른 창조물을 만드는 능력 또한 있거든요. 거창하게 말을 하자면 팝시클(Popsicle)이 실수로 탄생한 것과 같은 일화가 저도 있다는 것입니다.


말이 나온 김에 팝시클 탄생 일화에 대해 설명하자면, 때는 1905년 미국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열한 살짜리 소년이 가루 주스를 컵에 넣고 나무 스틱으로 저은 뒤 차갑게 먹으려고 밖에 내놓았다가 깜빡 잊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날이 추워서 밤새 나무 스틱이 꽂힌 채 주스가 얼어버렸고, 맛을 보니 오히려 더 좋았던 겁니다. 이 사소한 실수로 인해 팝시클은 상품화되었고, 오늘날 전 세계 사람들이 즐겨 먹는 간식이 되었습니다. 생산적인 실수였죠.



저도 이런 실수를 곧잘 저지릅니다. 한 번은 고기 전 재료에 실수로 파르메산 치즈를 갈아버린 적이 있습니다. 미트볼을 만드는 것으로 잠시 착각했던 겁니다. 그때 치즈를 걷어내려다, 퓨전으로 가보자는 생각에 그냥 버무려서 전을 부쳐봤습니다. 그런데 결과물이 고소하고 촉촉하니 더 맛있더군요. 게다가 치즈 향이 풍미를 더 해서 밥반찬은 물론 와인 안주로도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그 사고 이후 우리 집에선 고기 전에 반드시 파르메산 치즈를 추가합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제가 얼린 브로콜리에 심한 상해를 입혔는데, 이 사건 또한 긍정적인 결과로 잘 마무리 지은 바 있습니다.



사건인즉, 브로콜리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얌전하게 지퍼백에 넣어 냉동시킨 데서 시작됩니다. 채소를 얼리면 영양소가 응축돼서 더 좋다는 기사를 보고 얼른 실행에 옮긴 것이지요. 그런데 잘 부서지는 브로콜리를 저 같은 덜렁이가 냉동실에 넣어 두었으니, 어떻게 됐겠습니까? 서랍식으로 돼 있는 냉동실 문을 여닫을 때 제대로 살펴보지 않고 그냥 밀어버려, 브로콜리의 꽃 부분이 산산이 조각나버렸습니다. 버리자니 아깝고 그냥 쓰자니 모양새가 처참하고.... 해서 궁리 끝에 브로콜리를 아예 다져버렸어요. 거기에다 새우를 넣고 부쳐봤는데, 그 결과 모양도 맛도 있는 전이 탄생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저는 브로콜리를 사면 식초 넣은 물에 깨끗이 씻어서, 아예 다져 보관합니다. 그걸로 전도 부치고, 달걀찜에도 넣고 볶음밥에도 활용해요. 물론 신선한 브로콜리도 먹습니다만, 다져서 음식에 넣을 때 더 많은 양을 먹을 수 있더군요. 그래서 요즘은 제 생산적인 실수를 잘난 척도 할 겸 해서 다진 브로콜리를 음식에 많이 활용합니다. 이런 제 모습을 볼 때마다, 남편은 부지런하고 깔끔한 대다 요리까지 잘하는 부인을 둔 자신은 로또 맞은 인생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사고뭉치 마눌님이라는 팩트는 잠시 깨끗하게 잊어버리고는 말이죠. “남자를 이기려면 잘 먹여라”라는 서양 속담이 생각나네요.



*브로콜리 전


재료

브로콜리                   200 그램

새우                         120 그램

후추, 소금                 한 꼬집

쌀가루                      2 큰술

달걀                         2개

매운 고추                 넣고 싶으면 조금


조리법

1. 브로콜리를 푸드 프로세서에 넣고 다진 뒤, 쓰기 편리하게 지퍼백에 보관해둡니다.



2. 재료를 모두 섞어 주세요. 에고... 사진에 달걀이 빠졌네요.



3. 한 수저씩 떠내서 프라이팬에 지져주면 영양 많고 맛있는 전이 완성됩니다. 사진의 왼쪽 세 개는 빨간 고추 다져 넣은 아이들.



*마마 킴의 요리 꿀팁

1. 브로콜리에는 비타민 C와 칼슘이 많이 포함된 대다, 비타민K가 많아 칼슘 배출을 막아줍니다.

2. 전을 부칠 때, 밀가루 대신 쌀가루를 넣으면 더 바삭한 식감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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