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잘 사 주는 예쁜 누나>라는 드라마의 제목을 보고, 오래전 제 별명이 생각났습니다. 딸아이는 저를 ‘밥 잘해주는 사나운 엄마’라고 불렀었거든요. 음식 인심이 후한 저를 딸아이는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집에 온 손님들의 끼니를 챙겨 보내고, 자기 친구들이 놀러 와도 저녁을 먹고 가라고 말해주는 엄마는, 부지런하고 요리도 잘하는 데다 정 많은 사람이라 생각했지요. 그렇지만 저를 닮아 짓궂은 면이 있는 아이라, 엄마에게 칭찬만 해 줄 순 없었나 봅니다. 그래서 엄마는 음식은 잘하지만, 너무 사납다며 놀리곤 했었어요. 제가 밥을 잘해주는 것은 빼박 팩트이니 있는 그대로 언급하고, 엄마를 약 올릴 심산으로 사납다고 한 것이죠.
물론 장난 섞인 농담이었지만, 딸아이 눈에 비쳤던 제 모습은 실제와 같다고 봅니다. 성격이란 것을 우리가 사람이나 사건에 대응하는 방식이라고 본다면, 분명 제 성격은 사나운 것이 맞거든요. 저는 억울하거나 부당한 일을 맞닥뜨렸을 때 분노 게이지가 치솟다 못해 터져 버리곤 합니다. 이런 저를 보고 정의감이 있다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사실 그것보다는 다혈질인 데다 참을성이 없어 화를 잘 내는 겁니다. 그래서 ‘새우 같다’는 놀림을 받기도 해요. 낚시를 즐기는 지인의 말에 의하면, 새우는 성격이 못돼먹어서 잡아서 두면 금세 죽어버린다고 하더군요. 스스로 분에 못 이겨 자살하는 것이지요. 게다가 사납기까지 해서 랍스터처럼 서로 공격 또한 잘한다고 합니다. 같은 갑각류인 랍스터의 집개에 고무줄을 채우는 이유가 바로 서로 뜯고 싸우기 때문이라잖아요.
가만히 생각하니, 제가 새우와 랍스터와 비교된다는 사실에 엄청 자존심 구겨지네요. 그렇지만 제 분에 못 이겨 나대는 새우처럼 저 또한 귀엽다고들 말하는 걸 보면, 제가 펄펄 뛰며 화를 낼 때 만들어내는 비주얼이 공포스럽지는 않은가 봐요. 아마 저도 새우처럼 체구가 작아서 그럴 것이라 짐작해봅니다. 그래도 억울한 마음에 변명을 해보자면, 사실 저는 새우보다는 ‘벌집’에 가까운 유형의 사람입니다. 심기를 건드리는 사람들에게 제가 잘하는 말이 “벌집은 건드리는 게 아니다”이거든요. 가만히 두면 평화롭지만 건드리면 사달이 나는 벌집처럼, 저는 공격받았을 때만 인내력을 상실합니다. 그리고 새우야 못된 성질을 동료한테까지 풀어대지만, 벌집 속에 사는 벌들은 동족상잔을 하지 않잖아요. 평화만 보장되면 남에게 해악을 끼치지 않고 자기 소임을 다하며 사는 그들 아닙니까? 성질은 잘 부리지만, 부엌을 지키며 밥 인심을 퍼주는 저처럼 말이에요.
그래서인지 딸아이도, 부당한 일에 화를 낼 때의 엄마는 멋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엄마는 사나운데 음식은 정말 잘해~”라며 다시 놀려대곤 했어요. 심지어 성인이 된 요즘에도 여전히 저를 놀립니다. 엄마가 정말 무서우면 그러지 못할 텐데, 거침없이, 그것도 오랜 기간 동안 저런 말을 합니다. 그런 걸 보면, 저는 ‘사납되 공포스럽진 않은 밥 잘해주는 엄마’인가 봅니다. 그러니 딸아이 친구들도 우리 집에 오면 편안하게 저녁밥을 기대하며 놀다 갔겠지요. 많은 사람들로부터 제 음식이 좋은 카르마가 되어 돌아올 것이라는 덕담을 듣는 것도 그런 연유이겠고요. 그래서 계속 밥 인심을 푸며 살랍니다.
이 나이에 성격 개조는 불가능할 테니, 아예 사나움을 콘셉트로 잡아 ‘밥 잘해주는 사나운 엄마, 친구, 언니, 또는 동생’으로 이미지를 굳히는 게 현명할 것 같아서요. ‘밥 앞에서는 한없이 무너진다’고 말한 제 밥 자주 먹는 지인의 말이 갑자기 떠오르네요.
딸아이 친구들이 유난히 좋아했던, 미트볼 파스타 레시피를 공유합니다. 아이들은 다 미트볼을 다 좋아하지만, 지금 공개하는 미트볼은 빵가루 대신 리코타 치즈를 사용하는 독특한 레시피예요. 음식 안 하는 엄마들이 많은 캐나다에서, 파는 미트볼과 소스에 길들여진 아이들도 감탄을 하면서 먹던 것이라 자신 있게 공개합니다.
-미트 볼
다진 소고기 600 그램
리코타 치즈 300 그램
달걀 1개
소금 1 작은술
마늘 2 큰술
선 드라이드 토마토 4 큰술
와인(또는 청주) 약간
파마산 치즈, 바질, 후추 넣고 싶은 만큼
-토마토소스
홀 토마토 캔 또는 토마토소스 1.5 ~1.8 리터
양파 반 개
소금 1 작은술
바질, 파마산 치즈 넣고 싶은 만큼
1. 미트볼에 들어가는 재료를 다 섞으세요. 한국에서도 온라인으로 선드라이드 토마토를 살 수 있길래 재료에 추가했는데, 구하기 힘들면 생략하셔도 됩니다. 그렇지만, 리코타 치즈는 꼭 넣어주세요. 이 레시피의 비밀 병기이니까요. 리코타 치즈를 넣었다 해도 파마산 치즈도 듬뿍 갈아주세요.
2. 미트볼을 빚습니다. 굳이 동그랗게 하지 않고, 전 만들 듯이 해도, 끓이면 고기가 수축해서 동그랗게 됩니다. 사실 반죽이 너무 부드럽기 때문에 공처럼 동그랗게 모양이 잡히지 않아요. 그러니 편하게 만드시기 바랍니다.
3. 홀 토마토 캔을 갈아주세요. 대신 토마토소스를 쓰셔도 되고요. 팁을 드리자면, 어떤 류의 토마토 캔을 구하시든, 이태리에서 수입된 것을 추천합니다. 같은 토마토라도 이태리의 토양과 햇살에서 자란 것이 훨씬 맛이 깊거든요.
4. 다진 양파를 팬에 볶아 주세요. 노릇할 정도로.
5. 팬에 토마토소스를 투하하십시오.
6. 소스가 끓으면 미트볼을 넣습니다. 모양이 망가지지 않도록 조심~ 조심~
7. 미트볼이 익었으면 바질을 넣어 줍니다. 생바질 구하기 힘드시면 마른 걸로 쓰셔도 돼요.
8. 소스에 파마산 치즈를 갈아 넣은 뒤, 간을 보고 소금을 추가합니다. 낮은 온도에서 뭉근히 끓이세요. 가끔 저으면서 한두 시간 정도 끓여야 깊은 맛이 납니다.
9. 먹을 때 소스 위에 리코타 치즈를 한 수저 정도 얹고, 취향에 따라 후추, 페페론치노(이태리 고추 말려 부순 것) 등을 얹어 드세요. 그리고 올리브 오일을 꼭 뿌려 주시기 바랍니다. 소스 조리할 때 오일을 조금만 넣었으니까요.
1. 미트볼 소스는 하룻밤 두었다가 먹는 것이 풍미가 더욱 좋습니다.
2. 올리브 오일은 발연점이 낮고, 열을 가하면 향도 죽기 때문에, 요리할 때는 소량만 넣고 먹기 직전에 음식에 뿌리는 것이 좋아요.
3. 위의 레시피에 리코타 치즈를 얹어 먹는다고 썼는데, 원하시면 파마산 치즈를 뿌려 드셔도 잘 어울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