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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킴 Sep 25. 2018

내 늙은 강쥐의 열다섯 번째 생일

뼈다귀의 탈을 쓴 닭고기 생일 케이크를 소개합니다

십오 년 전, 작은 털 뭉치 하나가 우리 집에 들어왔습니다. 털 색깔 때문에 아이들이 진저(Ginger)라 이름 붙였지만, 사실 그 녀석 모습은 생강보다는 털 뭉치에 가까웠지요. 보드랍고 풍성한 털 자락에 감싸져 있던 몸뚱이, 거기에 달린 짤막한 다리로 뒤뚱거리며 걷던 모습은 마치 털 뭉치가 마루 바닥을 쓸고 다니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2개월 때의 진저

그 털 뭉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개 모습을 갖추게 됐는데, 그때부터 가족 행세를 톡톡이 했습니다. 먹고 자는 것을 반드시 우리와 같은 시간 대에 했고, 가족의 일원으로 해야 할 일을 스스로 찾아 책임감 있게 수행했어요. 아침에 제 대신 아이들을 깨웠고, 아이들의 등하교에 동참하는 것을 자신의 미션으로 아는지, 하루도 거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딸아이가 대학을 갔고, 기숙사에 지내며 주말마다 집에 오게 됐습니다. 그때도 진저는 즐거움에 들떠서 저와 함께 딸아이를 데리러 갔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진저는 아이들과 더불어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등하교를 함께 한 것이죠.


전저, 다섯 살 때


이것만이 아닙니다. 아들이 공부를 마치고 시애틀에서 일하게 됐을 때도, 진저는 우리가 사는 밴쿠버에서 시애틀까지 수도 없이 국경을 넘나들기도 했습니다. 밴쿠버에서 시애틀은 차로 3시간 정도의 거리지만, 국경이 막힐 때도 있고 오후엔 교통 체증이 심합니다. 이미 늙은 개가 되어버린 녀석은 이 여정을 늘 힘들어했어요. 그렇지만 그 피곤함을 매번 다 잊어버리고, 시애틀 갈 때마다 신이 나서 이리저리 뛰곤 했습니다. 아들에게 가져갈 음식을 넣으려고 아이스박스를 꺼내면 흥분해서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다, 기쁨과 흥분을 감추지 못해 괴성을 질러대곤 했고요. 그 괴성은 목적지인 아들의 아파트에 도착하면 고막이 울릴 정도의 굉음으로 변해 장시간 운전에 지쳐있던 저를 정신나게 했지요.


짐작하시겠지만 진저의 울부짖음은 바로 아들을 향한 애정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녀석이 가장 따르고 좋아하는 사람이 아들이다 보니, 만나러 갈 때마다 기쁜을 참지 못해 울음이 섞인 소음(진저는 얼짱이지만 목소리는 정말 깹니다.)을 낸 것이지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젠 아들이 차로 이동할 수 없는 먼 도시에 살고 있어서, 진저와 눈물의 상봉을 자주 할 수 없게 됐습니다. 그리고 만나더라도 이젠 녀석의 기력이 쇠해져서 예전 같은 괴성은 지르지 못하더군요. 표현 수위가 급격히 줄어든 녀석을 보면, 많이 늙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려옵니다. 캐나다와 미국의 국경을 오갈 때만 해도 나이에 비해서는 짱짱한 체력이었는데, 근래 갑자기 노견이 된 것 같아요. 특히 눈이 급속히 안 좋아지는 것 같아 걱정이네요.


진저의 외출 필수품이었던 선글라스와 안전 벨트


진저는 선글라스를 쓴 지 벌써 여러 해입니다. 맑은 날 눈을 잘 못 뜨길래 견공용 선글라스를 씌웠는데, 의료 목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트렌디한 강쥐로 유명세를 치렀어요.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산책하는 진저를 본 사람들이 ‘쿨하다, 귀엽다, 힙스터 강쥐다’하며 찍어간 사진이 백 장도 넘을 듯합니다. 특히 진저가 선글라스와 안전벨트를 장착하고 차에 앉아 있는 모습은 여러 사람을 쓰러지게 했습니다. 오죽하면 국경에서 웃음을 터트린 오피서가 한 둘이 아니었습니다. 원래 그 사람들은 사무적이고 고압적인 말투로 미국 입국 목적을 따져 묻는 게 일반적인데, 진저 덕분에 부드럽게 넘어가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참 좋은 추억입니다.


어제는 진저옹의 열다섯 번째 생일이었습니다. 생후 2개월 된 녀석을 데려왔으니, 우리 가족과 열다섯 해를 함께 보낸 겁니다. 아직은 나이에 비해 건강한 편이지만, 이젠 귀도 먹었고 시력도 많이 안 좋은 데다 서있을 땐 뒷다리까지 떠네요. 개의 일 년은 사람의 칠 년이라 하니, 녀석이 생일을 또 맞이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육체의 시간이 다한 상태에서의 삶은 고통을 수반하므로, 울 진저 옹은 적당히 무강해서 행복한 시간만을 보내고 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사는 동안에는 그렇게도 좋아하는 산책 실컷하고, 오는 크리스마스엔 다시 또 산타복을 입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들에게 사랑 듬뿍 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바릴뿐이네요.


작년 크리스마스 때 진저의 모습


한 손으로 홀랑 들 수 있을 정도로 작고 가벼웠던 털 뭉치로 날라든 우리의 진저! 그 작은 녀석이 우리 가족에게 남겨준 행복한 추억이 얼마나 많은지요. 제 두 아이는 진저가 없는 자신들의 어린 시절은 상상할 수 조차 없다고 하니, 어쩌면 이 녀석은 우리 부부와 함께 아이들을 키웠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애정 어린 눈으로 진저를 바라보고, 안고, 같이 뛰어놀던 아이들이 성인으로 자라, 사회에서 제 몫을 하며 살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앞으로도 진저가 남겨준 아름다운 시절을 마음에 품고 잘 살아갈 테니까요. 이제 같이 보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진저, 그러나 진저는 우리들의 기억과 마음속에, 그리고 또 수없이 많은 사진으로 남아 늘 함께 할 겁니다.


열다섯 살이 된 극강 동안 진저군


우리 진저 옹의 귀 빠진 날을 축하해야 하는데, 제가 너무 슬픈 글을 쓰고 있네요. 이제 우울감을 떨치고, 강쥐들이 아주 좋아할 케이크 레시피를 공개합니다. 저는 다진 닭가슴 살을 사용했지만, 다진 소고기로 대체 가능합니다.


*뼈다귀의 탈을 쓴 닭고기 케이크


재료

다진 닭가슴살                200 그램

빵가루                            2 큰술

코코넛 오일                    1/2 큰술


조리법

1. 재료를 볼에 넣고 잘 치대 주세요. 코코넛 오일은 다른 오일로 대체하셔도 됩니다. 고기가 차가울 경우 코코넛 오일이 굳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손으로 문질러주면 잘 녹으니 걱정 마시고요.



2. 고기로 뼈다귀 모양을 만드세요. 손에 오일을 묻혀가며 하면 더 쉽게 됩니다. 약간 과장되게 모양을 잡아야 구웠을 때 형태가 잘 나옵니다.



3. 오븐을 브로일에 놓고 10-15분 정도 구워줍니다. 오븐이 없을 경우 프라이 팬에 놓고 뚜껑을 닫고 구우셔도 됩니다.



4. 고기를 식힌 뒤에 초를 꽂아주면 생일 케이크 완성!


*마마 킴의 요리 꿀팁

코코넛 오일은 개의 건강과 피부에 좋습니다. 용량은 작은 개인 경우 1 작은술, 큰 개는 1 큰술 정도이고, 하루 한 번 먹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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