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작가인 데다, 화가, 문화심리학자, 그리고 전직 교수인 김정운 씨의 직함을 뭐라 해야 할까? 그에 관한 글을 쓰기로 한 뒤 가장 먼저 떠오른 고민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그를 교수 내지는 전직 교수로 부르지만, 나는 그를 교수로 부르고 싶지 않다. 가르치는 일이 행복하지 않았다는 사람에게 굳이 그 직함을 붙여주고 싶지 않거니와, 전직 교수라는 명칭은 현재 보다 과거의 지위에 우위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직업을 '작가'로 규정하려는데, 본인의 정체성을 문인이자 화가로 내세우고 있는 그에게 적절한 듯하다.
그는 최근 두 권의 저서에 수록된 글과 그림이 모두 본인 것임을 굳이 밝혔다.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에서는 '김정운 그리고 쓰다’. 그리고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에서는 '김정운 쓰고 그리다'라는 문구를 책 표지에 콕 박아 두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작가임을 강조한 것이다. 공부로 성공한 뒤, 글로 히트를 치고, 이제 미술까지 영역을 넓혀가다니 실로 놀라운 능력이다.
그는 줄곧 우리 사회의 문제를 지적함과 동시에 개선책을 제시해왔다. 우리가 스스로 꺼낼 수 없었던 치부를 얄미울 정도로 직설적으로 집어내곤 했는데, 그중 내가 처음으로 공감했던 것은 '독수리 5형제 증후군’에 걸린 한국인이었다. 술만 먹으면 정치인 욕에 나라 걱정을 하며, 한국은 물론 지구까지 지킬 듯이 흥분하지만, 술이 깸과 동시에 자기의 자리로 돌아가는 대한민국 남자들을 비판했던 것이다. 그의 날 선 눈썰미에 포착된 뒤, 빵빵 터지는 유머를 통해 전달된 우리의 민낯은, 페이소스로 가득 찬 블랙 코미디를 봤을 때와 같은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켰다. 남에 의해 구현된 자학 개그를 즐기는 상황이었다고나 할까?
그의 지적에 의하면 독수리 오 형제의 정체는 독수리 오 형제가 아니었다. 구성원이 제비, 독수리, 부엉이, 백조, 콘도르였던 데다, 한 명은 여자였던 관계로 조류 오 남매로 불려야 마땅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한국 남자들은 본질도 제대로 파악 못한 채 엉뚱한 전사들로 변신해왔던 셈이다. 이 허를 찌르는 지적에 나는 새 다섯 마리의 구성을 굳이 확인하기 위해서 인터넷에서 독수리 오 형제를 검색해본 적이 있다. 남자도 아니고, 술 먹고 애국자로 돌변해 본 적도 없는 내가 말이다.
이후에도 김정운 작가의 문제 제기는 계속됐다. 리추얼이 있는 삶을 살아야 행복해진다든지, 잘 놀아야 성공한다는 논리, 우리 사회의 쏠림 현상 등을 그만의 화법(지적이지만 몹시 수다스러운)으로 전해왔다. 그중 특히 그가 강조해온 것이 있는데, 바로 감탄하라는 것이다. 이는 오랜 외국 생활을 해 오고 있는 내가 매우 공감하고 동의하는 부분이다. ’ 감탄은 상대를 존중(respect)하는 것인데 아직 한국 사회에서 매너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는 그의 지적에, 나는 당장 이곳 사람들의 대화 습관을 떠올렸다. 대부분의 북미인은 "Really?" "Great~"등의 추임새를 대화 중 적절하게 던진다. 그러면 화자는 상대가 자신의 말을 경청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또, 듣는 이는 감탄사를 말하는 과정에서 상대의 말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는 말이 있잖은가.
그의 최근 저서인 <바닷가 작업실에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를 읽었다. 슈필라움이라는 낯선 단어를 들고 온 그는 '자신만의 공간'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유로운 공간이자 물리적 + 심리적 공간을 뜻하는 슈필라움이 있어야 사람들은 마음의 여유와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란다. 슈필라움을 경험한 나는 그 개념을 단박에 이해했고, 공감했다. 나는 오랜 시간 슈필라움을 사수하려 애썼는데 그 결과, 내 삶은 더 입체적이고 행복해졌기 때문이다.
형제, 심지어 남매 조차도 한방을 쓰는 일이 허다했던 시대에 성장했지만, 나는 혼자 쓰는 방이 있었다. FM 라디오를 듣거나 소설책 읽기를 좋아하던 내게 천국이자 안식처였던 곳이다. 옥죄는 학교생활에서 피신해 자유와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그 공간을 난 정말 사랑했다. 그렇지만 결혼 후 슈필라움을 갖는 것은 불가능한 사치였다. 아이들을 키울 땐 나의 24시간과 온 집이 두 아이 것이었고, 그 후엔 각 방을 내줘야만 했으니까.
이민을 온 후 한국에서보다 훨씬 더 큰 집에 살게 됐지만, 그래도 나를 위한 공간은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부엌 한구석에 컴퓨터와 작은 책상을 놓았다. 손바닥만 한 책상일지라도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었던 열망이 컸기 때문이었다. 그 책상에서 내가 좋아하는 보고, 듣고, 읽는 일들을 즐겼는데, 아이들도 엄마가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을 존중해줬다. 나만의 공간을 만드니 '프라이버시'라는 보너스가 절로 따라온 것이다. 아이들이 독립한 지금, 나는 번듯한 책상과 방을 갖고 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그 작디작았던 책상 또한 나의 슈필라움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가사에 지친 몸을 달래던 그곳에서 가족을 위해 일할 힘을 얻곤 했으니까. 역시 김정운 작가는 예리하다!
성공의 정점에서 여수로 떠난 김정운 작가는 그 연유를 슈필라움을 찾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왠지 외설스러움이 풍기는 오리 가슴 호라는 이름의 코딱지만 한 배와 미역 창고를 개조한 미역 창고(美力創考)라는 이름의 작업실이 바로 그의 슈필라움이다. 그는 그곳에서 휴식하고, 읽고,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산다. 외로움이라는 불청객을 끼고 살아야 하는 불편함이 있긴 하나, 교수로 살 때 보다 현재가 훨씬 더 행복하단다. 때문에 그는 '슈필라움의 중요성'이라는 화두를 우리에게 던졌다.
혹자는 방송을 통해 보이는 김정운 작가의 매너가 지나치게 코믹하고 글 또한 가볍다고 평한다. 그러나 가볍다고 해서 깊이까지 얄팍했던가? 그의 글은 유쾌하며 술술 읽히지만, 삶과 우리 사회에 대한 통찰이 담겨있다. 그것을 특유의 위트와 농담, 때로는 짓궂은 장난에 담아내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김정운만의 색깔이요, 능력이다. 그래서 인정한다. 꿰진 자루에서 새 나오는 쌀알처럼 끝이 안 보이는 그의 자뻑을. 그는 자신은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며, 지적이고, 재주가 많은 데다, 외모까지 우월하다고 자화자찬을 한다. 나는 그의 모든 잘난 척에 동의한다. 단 한 가지, 외모만 빼고.
그는 자신이 잘생겼다는, 진담을 가장한 농담을 꽤 자주 한다. 예컨대 최근에도 그는 “신은 내게 잘생긴 얼굴을 주었으나 탈모 또한 줬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것이 자학개그라고 믿는 나는, 그를 계속 응원하고 싶다. 그의 지적질을 통해 우리가 삶을 성찰할 기회를 갖는 한, 그는 자뻑할 자격이 있다. 그것도 충분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