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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킴 Nov 27. 2019

화장품은 나의 주름을 지워 주지 못한다.

나는 고가의 화장품을 구매해 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그건 단지 형편에 맞게 살려 노력했을 뿐, 생각이 깨여서는 아니었다. 과거의 나는 명품 화장품을 풀 세트로 구매하는 친구들을 보며 침을 흘렸었고, 투자의 흔적이 보이지 않던 그들의 피부를 보며 치사스러운 위안을 삼기도 했다. 그러다 폴라비 가운(Paula Begoun)을 알게 됐다. 저서 <나 없이 화장품 사러 가지 마라>로 화장품 업계를 발칵 뒤집어 놓고, 오프라 윈프리 쇼에 열 번도 넘게 출연했다는 그녀를 우연히 유튜브에서 발견한 것이다.



그녀는 돈으로 마법을 사고 싶어 하던 사람들의 환상을 무참히 깨버렸다. 피부의 구조상 화장품이 흡수되는 양은 미미하다고 못 박았으며,  백화점의 스킨케어를 대체할 수 있는 중저가 제품을 까놓고 공개했다. 즉, 비싼 기능성 제품을 바른다 해도 기미와 주름살을 지울 수 없다는 불편한 진실과 화장품이 다 거기서 거기라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화장품 매장의 직원이었던 그녀는, "고객들이 듣고 싶은 말만 하라"는 매니저의 말에 열을 받아 그 허상을 밝히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고객들이 듣고 싶지 않은 말만 골라 들려줌으로써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다. 돈과 피부를 맞바꾸길 원하던 여인네들을 그녀의 추종자로 만든 것이다. 역발상도 이런 역발상이 없다.


한때 나는 그녀의 신선한 도발에 이끌려 동영상을 열심히 찾아보았다. 고가의 스킨케어는 마케팅에 의한 허구이며, 일부 명품 화장품엔 유해물질까지 들어있다는 그녀의 폭로는 나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던 기분 좋은 충격이었다. 그러나 내가 폴라를 신뢰한 것은 아주 잠시!


폴라 초이스(Paula's Choice)의 홈페이지에서 그녀의 이중성을 본 것이다. 본인이 지적질하던 안티 에이징 제품을 팔고 있었으며, 뚜껑을 열고 쓰는 용기(열고 닫는 과정에서 세균이 생긴다고 비방했었음) 또한 제품에 사용하고 있었다. 더 황당했던 것은 <Beautypedia>라는 화장품 리뷰였다. 타사의 것은 꼼꼼한 분석과 함께 냉정하게 점수를 매기면서, 폴라 초이스엔 무조건 만점을 주었다. 역시 화장품 업계는 믿을만한 곳이 못 되나 보다.


고가의 외국 제품을 대체 할 수 있는 한국의 중저가 화장품


오래전, 주부들의 지갑을 열게 했던 외판원들이 생각난다. 아파트를 돌던 방판 직원들은 세라마이드니 콜라겐이니 하는 낯선 용어를 써서 주부들의 기선을 제압한 뒤, 첨단(?) 장비를 동원한 무료 피부 진단을 해주곤 했다. 속이 빤히 보이게도 결과는 한결같이 '피부 노화가 급속히 진행 중'이었는데, 판매원은 여인네들의 공포를 잠재워줄 해결책으로 화장품을 구매를 강권했었다. 그것을 얼굴에 바르면 피부 진피까지 침투해 주름살을 다려주고 기미를 빼준다는 것이었다.


인터넷과 유 튜브가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마케팅이었다. 정보가 귀했던 데다, 의약품인지 화장품인지 모를 과장된 광고가 허용되던 시절이었으니까. 아마도 폴라 비가운은 바로 이런 상황을 역으로 이용, 성공을 이루었을 것이다. 덕분에 나는 화장품을 냉정히 바라볼 수 있게 됐고, 언젠가는 내 얼굴에 명품을 듬뿍 발라주려 했던 다짐 또한 내려놓았다.


이젠 로션 한 개를 사도 성분을 살펴보는 깐깐한 소비자가 된 나는, 되찾고 싶은 젊음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았다. 어차피 지우지 못할 주름인데, 편하게 끌어안고 살기로 한 것이다. 더구나 나의 주름은 웃음으로 만든 흔적이라 굳이 거부할 이유 또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워낙 잘 웃어서 눈가와 입매에 주름이 많다. 대신, 심술 볼이라 불리는 처짐 현상은 없다. 얼굴에 살이 많지 않은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남보다 많이 웃으며 살다 보니 저절로 리프팅이 된 듯하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래서 내 삶이 만들어 준 주름을 쿨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주름살에 자신의 역사가 담겨 있다며 사진 보정을 거부하던, 잔느 모로처럼 말이다.


그녀는 자신의 주름을 일컬어 세월이 만들어 준 훈장이라 불렀다. 프랑스인들이 그녀를 영화계의 여신이자 대모, 거장이라고까지 하는 것은 그녀가 평생 영화계에 바친 열정 외에도 이런 당당함 때문이 아닐까?


프렌치 시크가 뭔지를 보여줬던 배우, 잔느 모로


벽돌과 같은 구조로 되어 있어서 화장품이 뚫고 들어가기 힘들다는 우리의 피부. 그러나 연일 기능성 제품은 쏟아져 나오고, 그 효능에 대해서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사실 표피라는 것이 완전히 막힌 구조는 아니니, 비싼 안티 에이징 제품을 오랜 세월 죽어라 바르면 어느 정도 스며들긴 할 것 같다. 그렇지만 그 효과를 광고가 아닌 현실에서 본 적이 없기에, 나는 회의적인 시선을 거두지 않기로 했다. 대신 계속 웃으며 예쁜 주름살을  만들려고 노력할 것이다. 많이 웃고 사는 사람은 행복할 수밖에 없고, 행복한 얼굴은 어떤 화장품으로도 만들 수 없는 것일 테니까.


* 글은 <화장품을 향한 나의 까칠한 시선>으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mamakim/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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