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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킴 Jul 15. 2020

이제부터 책을 듣기로 했다

요즘 나는 책을 읽지 않고 듣는다. 종이에서 형체 없는 소리로 매체가 바뀌다 보니, 효율성이 떨어지긴 하나 그래도 오디오 북과 친해지려 노력 중이다.


내용을 전달하고 이해시키는 능력에 있어서 눈과 귀는 확실히 차이가 난다. 시각을 통해 입력된 정보가 두뇌에 더 잘 새겨지는 것은 물론, 소리에 의존하는 독서는 집중력이 떨어지기 쉽다. 귀로는 책을 듣고 있어도 시선은 딴청을 부리려 하고, 이어폰을 끼고 누우면 오디오 북이 ASMR이 돼버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나는 책을 다시 돌려 들으며 줄거리를 따라잡고, 등장인물이 많은 소설인 경우엔 메모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나이가 들수록 변화에 적응하기 어려운 법인데,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솔직히 종이책이 몹시 그립다. 책장에 줄을 긋고 내 생각을 끄적이는 맛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종이를 넘길 때 나는 기분 좋은 소리와 손가락에 닿는 감촉, 읽은 페이지가 쌓여갈 때의 충족감 등은 오디오 북으로 절대 대체될 수 없는 매력이다. 그렇지만 나는 귀로 책을 듣는 동안 눈에게 휴식을 줌으로써, 눈의 노화를 늦춰보려 한다.  그렇게 하면 내가 좋아하는, 보고 읽는 일들을 노년에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앙리 마티스 <착 읽는 여인>


딱히 이 증세를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난 늘 뭔가를 보는 데에 중독돼 있다. 아침 식사 후 웹툰 보는 것을 시작으로, 구독하는 유튜브 채널을 보고, 책을 읽고, 밤에는 영화를 자주 본다. 덕분에 나의 눈은 늘 중노동에 시달리며 산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에 애써 관리를 해주기는 한다. 정기적으로 안과 검진을 받는 것은 물론, 흐린 날에도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UV코팅이 된 안경을 쓰며, 어두운 곳에서는 핸드폰 사용을 자제한다. 뿐만 아니라 10시에 잠자리에 들며, 녹황색 채소와 비타민도 잘 챙겨 먹는다. 그렇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 요즘 들어 컴퓨터를 볼 때 시야가 불편해졌다. 노안이 시작된 것이다.


역시 나이는 어쩔 수 없구나 했다. 근시라서 먼 곳을 볼 때만 안경이 필요했는데, 또 다른 안경을 맞춰야 했다. 컴퓨터를 보는 거리에만 최적화된 이 안경은 블루 스크린 차단 기능이 있어 눈 건강에 신경 쓰는 내게 위안을 준다. 요즘은 컴퓨터 볼 일이 많지 않아 아이패드용 보안경으로 자주 사용하는 중이다. 그러다 어느 날, 여기에 독서용 안경까지 보태진다면 사는 게 복잡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돋보기와의 동거는 최대한 늦추고 싶은데 말이다.



돋보기란 정말이지 귀찮은 물건이다. 사실 원인은 돋보기가 아니라 노안인데, 일단 돋보기를 써야 될 정도로 눈이 노화되면 작은 글자들을 읽을 수가 없게 된다. 지인들의 말에 의하면 책은 물론, 식당의 메뉴판, 장을 볼 때 패키징에 있는 글자들이 잘 안 보인다고 한다. 그러니 물건을 살 때, 성분과 원산지를 따지는 나의 경우엔 그 불편이 배가 될 것이다. 성격 상 대충 집어 장바구니에 넣을 수 없을 테니까.


훗날 내가 장 보러 가는 장면을 연상해 본다. 운전할 때는 선글라스를 쓸 것이고, 실내에서 근시용 안경을 쓰다가 상품을 볼 때에는 돋보기로 바꿔줘야 할 것이다. 생각만 해도 성가시다. 근시용 안경이야 늘 쓰고 다니는 것이지만, 돋보기는 몸에 지니고 다니되 필요할 때만 꺼내 쓰는 물건 아닌가. 그러다 보니 잃어버리기도 쉬운데, 꼼꼼한 남편이 안경을 찾아 헤매는 것을 볼 때마다, 덜렁거리는 난 후일 얼마나 자주 그런 장면을 연출할지 걱정스럽다. 그래서 돋보기와의 만남을 최대한 미루기 위해 오늘도 나는 두 눈 보존에 안간힘을 쓴다.


지금까지 눈의 노화를 시력에만 집중해서 말했는데, 사실 정말 무서운 것은 나이가 들면 백내장과 비문증, 황반변성 같은 달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오게 된다는 것이다. 백내장이야 수술을 하면 된다 쳐도 여타의 노안에서 오는 병들은 삶의 질을 바닥으로 끌어내릴 수 있다. 나도 예전에 없던 비문증이 생기기 시작해서 책을 읽을 때 거슬리는데, 그럴 때면 노안이 오며 책 읽기를 포기한 사람들이 생각난다. 눈이 침침하고 불편해서 책과의 인연을 끊었다는 그들의 증언(?)이 떠오르면, 내게도 그런 일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이 드는 것이다. 나는 인생의 말년까지 책과 영화, 공연, 전시 등을 가까이 두고 살고 싶은 데 말이다.


앙리 마티스 <파라솔과 책 읽는 여인>


그렇다면 오디오 북 독서가 내 작은 소망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내 대답은 "그렇다"이다. 독서, 특히 중년의 독서는 눈 건강에 좋지 못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책을 볼 때 우리의 시선은 30-40센티에 고정돼 있기 때문에 안구 근육에 무리가 간다. 그리고 핸드폰을 볼 때처럼 책을 읽을 때도 눈을 덜 깜박이기 때문에, 안구건조를 가져오기도 한다. 책이나 바느질, 컴퓨터 작업 등의 가까운 거리에 시선이 고정되는 일을 할 때, 매 시간 휴식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렇지만 독서에 집중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기 마련이고, 눈이 피곤하고 건조해진 후에야 책장을 덮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눈이 아닌 귀로 하는 독서는 현명한 선택이었다.


요즘 나는 책을 들으며 창문 너머에 있는 풍경을 바라보기도 하고, 눈을 감고 다리를 높이 올려 쉬기도 한다. 문제는 오디오북이 나를 잠재울 때가 있다는 것인데, 그럴 때면 맛난 쪽잠을  것으로 만족해한다. 그리고 가끔은 귀부인이 되어 하녀가 읽어주는 책을 듣는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한다. 사실 책이 귀했던 시절, 사람들은 모여 앉아 남이 읽어주는 책을 들었으니, 과거로 돌아가 살고 있다 치면 그만이다. 그래서 귀부인 코스프레를 하며 독서를 즐긴다. 이왕이면 책을 들을 수밖에 없었던 문맹의 촌부보다는, 노안이  지적인 귀부인이 되는   기분 좋으니까. 그리고 여전히 오디오북과 웹툰, 영화를 즐기고, 발레 공연이나 미술 전시를 위한 나들이를 하는 노년의  모습을 그리며 흐뭇해한다.


나의 소망은 실현될 듯하다. 책을 들은 뒤로 눈의 피로가 한결  해진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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