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작년 8월, 나는 밈 속 고양이가 됐다.
인스타에서 제법 인기를 끈 두 마리의 고양이가 있다. 한 마리는 의사이고, 다른 한 마리는 환자다. 두 고양이는 몇 마디의 말로 이곳의 의료 현실을 적나라하게 비꼬는데, 캐나다에 살면 어느 누구라도 ㅋㅋ거리며 “맞아. 맞아.”를 외쳤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그게 내 얘기가 될 줄 모르고.
환자 고양이 - 팔이 부러진 거 같아요.
의사 고양이 - 타이레놀 드세요.
환자 고양이 - 엑스레이 찍어야 해요.
의사 고양이 - 대기자 명단에 올렸습니다. 내년에 봐요~
지난여름, 오른쪽 허리와 힙이 너무 아팠다. 틀어진 골반을 오랜 기간 관리해 왔는데, 이번엔 증상이 심상치 않았다. 주치의를 찾았다. 다행히 엑스레이를 찍으라는 윤허(?)가 떨어졌고, 결과는 오른쪽 힙에 관절염이 있단다. 의사는 초기 단계라며 물리치료받고 애드빌을 먹으라고 했다. 역시 캐나다 의사의 처방은 기, 승, 전, 진통제이다. 나는 성실하게 의사의 처방을 따랐다. 물리 치료사에게 운동법을 받고, 약도 먹고. 하지만 통증은 비웃기라도 하듯 더 심해졌다.
결국, 내 필살기를 써보기로 했다. 증세를 부풀리고 엄살떠는 거.
“너무 아파서 걸을 수가 없어요. 산책을 전혀 못하니, 요즘 우울감이 밀려와요. 이러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길 것 같아요. “ 절망감에 젖은 표정으로 호소하니 의사가 말한다. “전문의에게 보내줄게요.” 얏호! 성공! 그런데 두 달 후에 연락이 왔다. 주변에선 축하한다고 했다. 빠른 거라고. 이게 빠른 거라니.
스포츠 의학 전문의를 만났다. 팸플릿 두 개를 달랑 들고 와 내 앞에 앉는다. 환자 차트도 챙겨 오지 않은 그를 보니 신뢰가 스멀스멀 떨어지는데, 더불어 정까지 확 떨어지는 멘트를 날린다. “NO Cure.”
그는 관절염이 불치병임을 못을 박더니, 6개월마다 스테로이드와 연골 주사를 맞고, 종국에는 힙을 갈아 끼우란다. 그리고 주사약이 본인 부담이라, 맞고 안 맞는 건 내 선택이니 원하면 예약을 하란다. 그는 제약 회사 직원인양 주사 관련 팸플릿을 보여줬다. 연골 주사가 550불이었다. 순간, 나는 비싼 주사를 맞는 잠재 고객이 된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의료가 공짜인 나라에서 약값은 왜 이렇게 비싼 건지. 스테로이드 주사는 47불이라 고마웠네.
주사를 맞기 위해 또, 두 달을 기다렸다. 병원에 가니 빤스만 입고 누우란다. 몸 누일 곳이 문 옆에 떡~하니 붙어있었다. 복도를 오가는 사람들이 반 누드로 누워있는 내 모습을 볼 수 있는, 그런 위치였다. 프라이버시보다는 효율, 환자의 수치심보다는 의료진의 동선을 우선으로 설계한 구조가 분명했다. 그렇지만 놀라지 않았다. 지인의 문병을 갔을 때, 남 녀 환자가 같은 병실 쓰는 걸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부디 복도에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다니지 않길 바랐을 뿐.
정말 놀랄 일은 의사의 등장과 함께 벌어졌다.
의사가 멈칫하더니, 연골 주사를 환불하라는 것이다. 힙이 아니라 넓적 다리 윗 쪽이 문제라며. “전 힙 외측이 아파서 걷기 힘든데요”라며 항변했지만, 그건 연관통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가 아픈 건데 귀가 아픈 줄 아는 상태라는 거. 그런데…. 그렇다면…. 평생 주사를 맞다가, 힙을 갈아 끼우게 될 거라는 진단은 뭐였지? 오른쪽 힙에 관절염이 있다는 엑스레이 결과는 또 뭐지?
이 상황에서 환자인 내가 뭘 할 수 있었을까? “슨상님~ 믿쑵니다!”를 외칠 수밖에. 어쨌거나 연골 주사를 환불받았기에 기분이 살짝 좋아져 병원을 떠났다. 넓적 다리 윗 쪽에 맞은 스테로이드 주사가 고통을 날려주길 바라며.
한 달이 지났다. 아무런 변화가 없다. 왜 주사를 맞은 건지 모르겠고, 내 몸의 문제가 뭔지 몰라 갑갑하기만 하다.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결과가 원점이라니!
강아지 별에 있는 진저가 생각났다. 그 아이에겐 기다림이란 게 없었다. 개들은 비싼 진료비를 내기 때문에 속전속결로 치료받는다. 심지어 과잉 진료 하려는 수의사를 저지해야 할 때도 있다. 그래서 나도 한의원 플렉스를 해봤다. 비싼 침을 맞으러 가니 나도 진저와 같은 대우를 해준다. 예약도 빨리 잡히고, 얘기도 잘 들어주고, 내 몸을 삽초간에 스캔한 전문의와 달리, 다리 길이며, 골반, 척추 등을 세심하게 살펴봐줬다. 그렇지만, 결과는 허리 통증만 조금 나아졌을 뿐.
솔직히 의사보다 도움이 된 건 AI들이었다. Gemini, Grok, Chat GPT, Perplexity를 모두 사용했는데, 특히 Gemini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나의 증세를 자주 말해주고, 몸 상태에 따라 운동법을 달리 받았다. 꾸준하게 따라 하니, 걷는 게 좀 수월해져 그나마 살만하다. 그렇지만, 아직도 힙 외측이 아프고 오래 걷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다. AI가 치료를 해줄 순 없으니까.
전문의를 바꿔야겠다. 그러려면 주치의 예약 2주와 전문의에게서 올 연락을 2-3달 기다려야 한다. 치료를 받게 되면 거기서 또 두 달을 기다려야 하고. 이곳에선 흔한 일이라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캐나다에서 환자로 산다는 게 이런 거다. 기다리고, 기다리다, 원점으로 와도 또 기다림의 줄에 서는 것.
오늘도 나는 끝이 안 보이는 줄에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