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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뮤 Aug 15. 2022

너의 대나무 숲이 되어 줄게

나는 남편과의 대화를 상당히 즐기는 편이다. 애초 만남을 시작할 당시 결정적인 선택의 이유도 사실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가치관에 있어 만남을 이어갈 수 있는 상대방의 가장 중요한 요건이란 바로 '대화 가능 여부'에 있었다.


실상 잘 되는 대화란 어느 한쪽 편의 일방적인 수다 방출이 아니라 그야말로 주거니 받거니 합이 잘 맞는다는 의미이니, 입 밖으로 내어 규칙을 정한 것은 아닐지라도 어쨌거나 양자 간에 만족할만한 대화량이 적절히 할당되고 있다는 뜻일 게다. 즉, 우리는 서로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하고 있으며 또 동시에 상대방의 말을 충분히 잘 들어주고 있다.


이런 조화로운 부부간의 대화에 잡음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바로 미워할 수 없는 작은 악당의 등장부터다. 잡음이란 말 그대로 아주 대단한 '지방방송'이었다. 쉬지 않고 떠들어대는 채소 장수 아저씨의 확성기 방송과도 같다고나 할까.


대략 아이가 다섯 살 즈음 그것은 온전한 훼방이었다. 단순히 '무조건 나만 바라봐'라는 아이의 유아기적 사고에 따라 아빠 엄마가 둘이 마주 보고 대화하는 순간을 가만 놔두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자연히 대화라는 게 거의 불가했던 것 같다. 수시로 말은 끊기고 아이를 돌아보며 얼르고 달래며 수도 없이 끊어지는 대화의 맥을 이어가기란 참으로 고된 일이었다.


그런 상황이 상당히 오래 이어졌는데, 아이가 이제 제법 나름의 사고思考를 하고 대화를 할 수 있게 된 현재에는 또 다른 양상으로 이어진다. 바로 대화에 선수가 한 명 더 등장한 것이다. 그 선수에게 있어 대화중 '경청'이란 없다. 이 선수는 자신의 발언권이 가장 우선시 되며, 잠시 기다려달라는 심판의 제제에 상당히 불쾌함을 표출한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한다.

"왜 맨날 내 얘기는 안 들어줘~~!"




왜 맨날 내 얘기는 안 들어주냐는 아이의 말 조차도 사실은 한 귀로 흘릴 때가 많았다. 그만큼 아이의 말은 솔직한 표현으로 '시답지 않다'라고 여겼기 때문이리라. 아이는 그야말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하고 시시각각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 생길 때마다 치고 들어온다. 엄마가 전화통화를 하고 있을 때도, 어떤 다른 중요한 일에 집중해야 할 때도, 그것은 아이에게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그저 머릿속에는 엄마에게 지금 당장 이 말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처음엔 그런 상황에 짜증이 몰려올 때도 많았다. 도대체 왜 기다렸다 말하는 게 그렇게 힘들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기다리라며 나무란 적도 있다. 그러나 달라지는 점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새삼 그 상황들을 다시금 떠올려보니 앗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여덟 살 아이에게 무엇을 기대 중이었던 걸까. 아이는 아직 그런 사리분별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성인'이 아닌 것을 망각했을 뿐만 아니라, 아이가 '지금 당장' 엄마에게 해야 하는 이야기들은 아이의 입장에서는 실로 다급하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이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티니핑들 중 공주핑이 제일 예쁘다는 말일지언정, 아이는 그것에 진심을 다하는 중이었고 너무도 중요한 내용이었던 것이다. 그 중요한 이야기를 엄마가 귀 기울여 들어주지 않으니 얼마나 속이 터졌을까.




나는 그렇게 잘 들어주지 않는 엄마였다.

다른 사람의 입장은 배려한답시고 이런저런 상황은 잘도 살피면서, 정작 내게 가장 중요한 우리 아이의 입장은 전혀 배려하지 않은 것이다. 아이에게 있어 바지보다는 예쁜 치마를 입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그 치마에 잘 어울리는 머리핀을 고르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는지, 그래서 친구들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내 여덟 살 시절의 생각을 전혀 기억하지 못해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정말 말 그대로 아이의 시답잖은 이야기로 치부했다.


방송에서 쉬이 접할 수 있는 오은영 박사의 솔루션 프로그램들을 보면, 실상 아이의 많은 문제들은 대부분 부모로부터 비롯된다. 그렇기에 어른이 달라지면 아이도 달라진다. 시답잖다고 생각됐던 아이의 이야기에 좀 더 귀 기울여주고 맞장구를 쳐줘본다. 정말 별 얘기 아니지만 대단하다고 하는 아이의 말에 진짜 멋지다고 오버도 해줘 본다. 그렇게 반응을 해주니 아이가 너무도 신나 하는 게 보인다. 그렇게도 기다리라 말로 할 땐 조절이 안되던 아이가, 자신의 말을 엄마가 잘 들어준다는 '만족감'을 느끼니 알아서 기다려주기도 하고, 심지어는 엄마 말을 끊어서 미안하다는 말까지 할 때도 있다.


그러게 다 부족한 엄마가 원흉이었구나 싶다. 아이를 내가 키우는 것 같지만, 키워가는 그 모든 과정은 결국 나의 성장인 것이다. 나는 힘들게 힘들게 나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성장은 진즉에 끝나고 그저 늙어 가는 줄로만 알았건만, 여전히 아이를 통해 끝없이 새로움을 마주하며 그렇게 함께 자라고 있다.

좀 더 잘 들어주는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면서, 어제보다는 오늘이 낫고 오늘보다는 내일이 좀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언젠가 인생의 무게가 느껴질 때 아이가 잘 들어주는 엄마를 찾을 수 있도록 지금부터 열심히 듣는 연습을 해보련다.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이야기를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로 담아 갑니다. 이번 달 주제는 '경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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