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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향 Aug 17. 2022

무언(無言)의 기쁨

경청, 제대로 듣기보다 제대로 느끼는 것


백과사전에 의하면 경청이란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중요한 기법으로, 상대의 말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전달하고자 하는 말의 내용은 물론이며 그 내면에 깔려 있는 동기나 정서에 귀를 기울여 듣고 이해된 바를 상대방에게 피드백하여 주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사전적인 용어를 쭉 읽어보고서 떠오른 생각은 '경청하기 참 어렵겠네'였다.

저리도 어려운 것을 어떻게 하란 말인가?

좀 더 쉬운 해석, 방법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할 무렵, 발아래로 우리 집 고양이 삼월이가 쓱~ 다가와서는 발에 얼굴을 부비부비한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더니, 돌연 책상 위로 훌쩍 뛰어오른다. 내 손에 자신의 볼을 왼쪽 오른쪽 박력 있게 갖다 대며 셀프로 쓰담쓰담한다. 자기가 더 적극적으로 친근함을 과시하는 듯했다. 삼월이는 꽤 만족스러웠는지, 책상 한편에 자리 잡고선 아예 배까지 뒤집는다. 이것은 배를 만져달라는 소리다. 다정한 손길로 몰캉몰캉한 배를 원 없이 만져주자, 졸린지 눈을 끔벅끔벅한다. 반쯤 감긴 눈으로 혀가 닳을락 말락 한 곳까지 열심히 그루밍하고선 스르륵 눈을 감는다. 그렇게 잠든 삼월이의 얼굴을 멍하게 바라보다가 갑자기 번뜻! 머릿속에 전구가 켜졌다. 경청! 바로 이거네!!


삼월이는 우리 가족들에게 까다롭지 않은 고양이다. 모래를 바꿔도 문제없이 잘 쓰고, 고양이 치고는 물도 잘 마셔서 변에 걸린 적도 없으며, 어떤 사료를 가져와도 망설임 없이 곧잘 먹는다. 잠도 꼭 사람 옆에서 자려 하고, 밤마다 함께 잘 사람을 선택하는 편이다. 가족의 침대를 바꿔 가며 몸부림을 적게 치고 얌전하게 자는 사람 옆자리를 주로 선택한다. 몸의 일부가 사람의 살에 닿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업무 스트레스로 머리가 복잡한 날이면, 삼월이의 복슬복슬한 털을 만지며 잠깐 동안 힐링타임을 갖는다. 고양이는 자기의 배를 만지지 못하게 하는 습성이 있는데, 삼월이는 가족에게만 몰캉몰캉한 뱃살을 만질 수 있도록 허락하며 배를 잘 뒤집는다. 어떤 날은 눈빛을 마주 보며 '아, 오늘 우리 집사에게 힘든 일이 있구나.'라고 말하듯 3초간의 정적이 흐른 뒤 의식적으로 배를 까뒤집을 때도 있다. 마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말이다. 배를 실컷 만지고 나면 양쪽 볼도 쓰다듬어 주어야 한다. 그러면 애정 표현이 마무리된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눈빛만 보아도 알아~' 초코파* 광고에서 들리는 노랫말처럼, 말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도 헤아려지는 마음이야말로 경청핵심 기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내면의 소리까지 귀를 기울이다 보면 굳이 말이 필요하지 않은 순간들도 있다. 우리가 귀를 기울이는 상대는 아마도 마음이 가는 사람 혹은 생명체일 것이고, 그 생명체의 반응을 귀 기울여 경청하다 보면 신기하게도 그곳에 나의 즐거움이 있다.


살아있는 생명과 마주 앉아 모든 행위에 귀를 기울이며 경청하다 보니 이곳에 있는 즐거움이 느껴졌다. 무언이 주는 기쁨! 지금 이 장면이 퍽 행복하게 다가온다.


경청이란, 제대로 듣기보다 제대로 느끼는 것. 무언의 기쁨이라고 다시 정의 내리고 싶다.




글쓰기로 우주 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을 담아가고 있습니다. 8월의 주제는 <경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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