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불과 일주일 정도 남짓한 이 시점에 돌이켜 생각해보니, 한 해가 이렇게 어이없이 지날 수도 있구나 하는 허탈함만이 가득할 따름이다. 코로나가 막 대유행으로 접어들기 직전 2월까지만 해도 우리의 시간이 이렇게 속절없이 약탈을 당하리란 걸 상상도 할 수 없었는데 말이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이다. 나이가 들어가며 성탄절의 흥겨움은 다소 무뎌져 가긴 했어도, 매년 크리스마스에는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고, 미리 예쁜 케이크도 주문을 해두곤 했었다. 그리고 가족들이 모여 음식도 나누고 담소도 나누며 그렇게 웃음꽃을 피우는 날이었다. 무엇보다 아직은 산타 매직이 통하는 우리 집 꼬마에게 서프라이즈 선물을 주며 느끼는 재미도 꽤나 쏠쏠했다.
"올해는 엄마 아빠 말씀 잘 듣고 착한 일을 많이 해서 산타할아버지가 밤에 선물을 놓고 가셨어~"
이게 언제까지 통할는지는 모르겠으나 매년 이렇게 식상한 멘트를 날려도 아이가 즐거워하니 아직까지는 다행이지 싶다.
며칠 전 정말 집콕이 너무 힘들어서 잠시 동네 산책을 했다. 문득 빵집 앞을 지나다가 크리스마스 케이크 예약을 깜빡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예년 같았으면 크리스마스가 오기 2주 전쯤부터 챙겼을 텐데 말이다. 남편이 풀타임으로 재택근무를 한지가 벌써 한 달이 되어가고, 아이도 사실상 올해 등원은 종료가 된 상태이다 보니, 세 식구가 매일같이 집에서 부대끼는 중이라 이게 평일인지 주말인지 분간이 안 되는 날들의 연속이다. 당연히 날짜가 가는 줄도 몰랐고, 막상 크리스마스가 코앞에 다가온 지금은 뭐 이렇게까지 감흥이 없나 싶게 허탈하기 짝이 없다. 설마 이렇게 아무것도 못하고 집에서만 지내는 날이 일 년의 거의 다인 상태로 한 해가 끝나겠어!?라고 생각했던 그 설마는 실제 일어났다.
현관문을 열고 집을 나섰는데 왠지 콧속이 상쾌하고 숨쉬기가 편안하다면 바로 집으로 돌아가세요.
마스크를 안 쓰고 나왔기 때문이다. 올해는 숨쉬기가 편안하면 안 되는 한 해였다. 내년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 너무 좌절스럽지만, 어쨌든 매일 쓰는 덕에 마스크에 대해 재발견하는 계기가 된 건 사실이다.
계절 바뀔 때 찾아오는 약간의 비염 증세와, 추워지는 날씨엔 어김없이 찾아오는 콧물 폭탄으로 성가신 날들이 많았는데, 마스크를 계속 쓰고 다니니 그런 증세가 전혀 찾아오지 않았다. 게다가 환절기 행사인 감기를 한 번도 앓지 않고 지나갔다. 이젠 그냥 내 얼굴의 일부인 양 마스크 쓰는 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시대가 왔지만, 예전엔 의사 선생님이 (비염 때문에) 마스크를 상시 착용하고 다니라고 아무리 잔소리를 하셔도 안 써야 할 이유가 너무나도 많았더랬다. 그래도 억지로 쓰고 다닌 게 득이 됐으니 이 시국에 대한 나름의 긍정적 측면이라 생각해본다.
올해는 얼굴에 화장을 해본 게 딱 두 번이다. 그 덕분인지 아님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 바깥 먼지를 덮어쓸 일이 줄어들어 그랬는지 피부가 세상 좋아졌다. 세수하고 보습만 열심히 했을 뿐인데 중년 아줌마 치고 이런 피부 상태인 건 나름 뿌듯하다. 어차피 마스크로 반절을 가리고 다니는 얼굴 공들여 색칠해봐야 화장 묻어나 지저분해지는 마스크만 아까울 따름... 예전엔 화장 안 하면 현관 밖을 못 나가던 시절도 있건만, 이제는 쌩얼이 기본 세팅이 되었다. 그게 더 자연스럽고 마음에 든다. 이렇게 생활 속에서 전에는 부자연스럽던 것들이 하나둘씩 자연스러움으로 둔갑해 가고 있다.
크리스마스 트리에 마스크가 잔뜩 걸려있는 사진들을 심심찮게 발견했다. 지금은 정말 미소 한번 짓기조차 힘겹게 느껴지는 분들도 많을 테고, 안 그래도 숨쉬기 편치 않은 마스크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뱉는 분들도 정말 많을 것이다. 지금은 사방에 마스크가 데코레이션으로 등장하는 웃지 못할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그 언젠가 영화에 나왔던 말대로,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인터스텔라 2014 中)
코로나는 지구의 자정작용이라 하지 않던가. 우리가 오염시킨 지구가 몸부림을 치는 중이라는데, 인간이 멈추자 공기가 맑아지는 기적을 우리는 모두 목격했다. 이 시국이 너무나 괴롭지만, 이제는 좀 '자연'으로 되돌리라는 '지구의 경고'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우리 모두 각성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환경 이슈가 특정 누군가에 의해서만 논의되는 그 어떤 세상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다 같이 힘을 모아 '집콕'에 좀 더 힘써주면 좋겠다. 지금은 나 하나쯤이란 생각에서 벗어나 온 우주가 힘을 모아야만 그나마 겨우 극복할 수 있는 상황이니까... 이건 정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것이다. 여전히 국내 숙박시설 예약이 다 찼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나는 여행 갈 줄 몰라서 안 가는 거 아닌데 지금 꼭 이 상황에 그렇게 반드시 이기적이어야만 했던 건지.. 정부의 초강수로 이제 더 많은 것들이 제한되게 됐지만, 좀 더 자발적인 선에서 미리 예방이 됐었더라면 정말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코로나 끝나면 제일 하고 싶은 것들을 상상해보며 조금은 침체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되살려 봐야겠다. 모두가 각자의 장소에서 행복한 날 되시길....
메리 마스크 크리스마스!
요즘 배우고 있는 캘리그래피가 유일한 힐링이다. 아직 서툴지만 마음을 담아본 크리스마스 카드 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