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아이는 24개월 때부터 제 아빠가 다니는 회사에 소속된 어린이집을 다니는 중이다. 워낙에 인프라가 뛰어나고 매년 평가가 우수한 곳이라 사실 뱃속에 아이가 생긴 순간부터 남편 회사 어린이집에 다닐 수 있게 되면 좋겠단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고, 심지어 말도 안 되는 노래까지 만들어 흥얼대곤 했다. (**** 갈 거야~ 가 무한 반복되는 어디 만화에선가 나왔던 어이없는 멜로디이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 하지 않던가. 두 돌을 목전에 앞두었던 2016년 늦은 가을, 소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어렵다는 '추첨'으로 아이가 회사 어린이집에 등원 패스를 획득했다는 전화 한 통에, 당시 사무실에서 나는 순간 꺅~이라는 환호가 삐져나왔다가 급 입을 틀어막고 구석에 가 방방 뛰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이담에 이 아이가 좋은 대학에 합격을 한다 해도 이보다 더 기쁘진 않을 것 같다면서 말이다. 그렇게 운발이 좋은 사람인지 전혀 몰랐던 우리 남편은 그날 이후 어깨에 힘주신 '미다스의 금손'으로 등극하게 됐다. 본인이 태어나 가장 잘한 일이 어린이집 추첨에서 성공한 것이라며....
이토록 신뢰할만한 기관에 아이 맡기기를 무슨 백년대계 숙원사업처럼 노래하고 소원하던 이유는 딱 하나뿐이다. 일반 어린이집을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기관을 일반화시켜서 바라보면 안 되지만, 잊을만하면 어린이집 학대 사건이 세상을 들쑤셔놓는 마당에, 그 어디를 믿고 보낼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다른 아이들에게 일어난 일이 내 아이에게는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나는 아이를 낳고 출산휴가 3개월에 육아휴직 6개월까지 도합 9개월을 독박 육아로 씨름하다 회사로 복귀했었다. 그 어느 곳에도 손을 벌릴 구석이 없는 나는 회사로 돌아가기 위해 아이를 돌봐주실 이모님을 구해야 했는데, 그 모든 과정은 그야말로 극도의 스트레스와 전쟁 그 자체였다. 무작정 누군가를 믿을 수도 없고, 그러나 또 믿을만한 사람을 선택하여 믿고 맡겨야 했기 때문이다.
'처음'이라는 가장 큰 리스크를 안고 그만치 또 사람 보는 눈도 되게 없었기에 첫 번째 이모님과는 악연으로 마무리가 됐었다. 그야말로 남에게 아이를 맡겨놓고 맘 놓고 있을 수가 없어 집안 구석구석에 CCTV를 설치해놨지만, 사실 사무실에 앉아 하루 종일 그걸 들여다보고 있지는 않기에 감시 카메라라는 존재 자체만으로 경각심을 일깨워 주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퇴근 후 아이 다리에 상처가 나있는 걸 발견하고, 아이를 돌보다 보면 사실 아무리 눈앞에 잘 보고 있어도 다치는 경우도 있기에,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말자 생각으로 조금 더 신경 써주실 것을 당부드리며 지나쳤다. 그런데 대략 2주쯤 후 반대편 다리에 또 다른 상처가 크게 난 것을 발견하고는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 남편은 그간의 CCTV 파일을 모두 돌려 보았다. 몇 가지 찾아낸 것들은 그야말로 경악 그 자체였다. 아이를 방치해두고 하루 종일 잠을 자는 것은 기본이고, 기저귀를 갈아준다며 앉아 있는 아이의 이마를 툭 쳐서 뒤로 넘어가게 하거나 누워있는 아이의 두 다리를 잡아 짐짝처럼 잡아당기는 일이 여러 차례 잡힌 것이다. 보는 내내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물론 뉴스에 등장하는 아이들이 당한 수준만큼의 학대라고 볼 수는 없겠으나, 화면에서 잡아내지 못했을 뿐 아이 다리의 상처는 무엇으로 설명할 것이란 말인가. 내가 일터에 가 있는 동안 그 누구보다 소중한 내 자식을 내 대신 소중하게 돌봐줄 것을 기대하며 마땅한 대가를 지불해온 나에게 그 모습들은 그저 충격일 뿐이었다.
다음날 바로 휴가를 내고 출근한 이모님과 담판을 지었다. 화가 나면 극도로 침착해지는 남편이 목소리 깔고 조목조목 따지는 바람에 나는 애써 진정하고 앉아 있었으나, 정말 머리채라도 붙잡고 온갖 험한 말을 퍼붓고 싶은 심정이었다. (실제 왜 그렇게 안 했는지 후회가 막급이다 솔직히는) 내가 그런 사람한테 아이를 다섯 달이나 맡겨 놨었다는 게 심장이 터지도록 화가 났고, 아이한테 너무 미안했다. 그나마 그보다 더 심한 수준이 아니었음을 감사하며 가슴 쓸어내려야 했다.
그날부터 남편과 하루 걸러 씩 교차로 휴가를 쓰고 사무실 앞 카페에서까지 이모님 면접을 보며 사태 해결을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다. 지금도 돌이켜보면 이를 악물고 울컥하게 하는 사건이었지만, 그래도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는지 두 번째 소개받아 와 주셨던 이모님이 어찌나 아이를 예뻐해 주시고 내게도 따뜻하게 잘 대해주셨던지, 지금까지도 매년 김장김치를 가져다주시며 마치 내게는 친정어머니처럼 좋은 인연을 이어가는 중이다.
정말 잊을만하면 어린이집 문제가 불거져 나온다. 뉴스에서 CCTV 영상을 자료로 보여줄 때면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잠재우기가 힘들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그게 내 자식이라도 너무도 힘든 일이다. 그러니 남의 아이를 돌보는 일에는 웬만큼의 사랑과 웬만큼의 각오 정도로는 사실 쉽사리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학대하는 교사가 애초에 어린이집 교사를 하겠다고 나선 이유는 도대체 뭘까? 뭔가 사회에 적응하기 힘든 인성의 소유자들이 아이들은 만만하니 자기보다 약자 앞에서 우월함이라도 느끼기 위한 것일까. 아님 그저 단순히 본인도 그렇게 힘들 줄을 몰랐던 걸까. 설사 몰랐다한들 아이들을 향한 그러한 폭력적 행동들은 가당키나 하냔 말이다.
요즘 한창 너무도 뜨거운 이슈인 정인이를 떠올리게 된다. 사실 내용이 너무 끔찍해서 나는 그 프로를 굳이 찾아보지는 않았다. 이미 너무 많은 뉴스와 기사에서 상세한 이야기들을 쏟아 놓았고, 그걸 읽는 자체만으로도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아직 아무런 힘이 없는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그런 말도 안 되는 끔찍한 행위를 범한 자들은 과연 뭐란 말인가. 감히 인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조차 그들에게는 과분할 따름이다.
16개월 당시 내 딸아이를 떠올려본다. 아직 모든 것이 본능에 충실하고, 그저 보이는 세상은 엄마가 전부인 아가였던 시절, 아직 자기표현을 제대로 못하고 그저 웃거나 울거나 떼쓰는 게 표현의 전부인데... 정인이는 울지도 못했단다. 그 아이는 양모의 말처럼 잘 안 우는 아이가 아니라, 그저 아파서 울 수 조차 없는 상태였다고 한다. 요즘은 웃고 있는 사진 속 정인이 얼굴이 떠올라 자꾸 가슴이 먹먹해진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끔찍한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우리는 왜 그들을 마땅히 처벌하지 않는가에 분노하게 된다. 매번 분노하고 욕하고 시간이 지나면 잊히고 그래서 또 사건은 일어나고, 언제까지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할 것인지 한숨만 나올 뿐이다. 단순히 내 분풀이가 될 만큼 형량을 내려 치면 이게 모두 해결되는 일인 건가? 좀 더 문제의 본질을 들여다보자면, 아이를 돌보는 이모님이나, 어린이집 교사나, 입양을 원하는 부모들이나 그 자격과 자질을 냉철하게 평가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한 일인 것이다. 그보다 더 나아가 교육으로부터 비롯해 우리 사회의 여러 요소 가운에 쓰레기 인성을 양산해내고 있는 근본 문제는 어디에 있는 건지 찾아내고 바꿔야 할게 아니던가. 모든 것이 아직도 '과도기'라는 미명하게 적당히 얼버무려지는 현실이 그저 답답하다.
시댁이든 친정이든 급할 때 손 내밀 곳 없는 수많은 워킹맘들은 예측 불가한 다양한 변수들에 조마조마함을 느끼고, 누군가에게 아이를 맡기는 문제는 그렇게 늘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과제가 돼버린다. 나에게도 좀 더 믿을만한 비빌 언덕이 있었더라면, 일을 놓아야 할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을 때 그때의 나처럼 선뜻 전업맘의 길을 선택했었을까. 전적으로 아이를 돌보는 일이 사회에서 하는 그 어떤 일보다 중요하지 않거나 가벼운 일이 절대 아니지만, 언제나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오던 나에게 있어서는 사실상 아이만 바라보며 지내온 지난 몇 년이 절벽 앞에서의 멈춤과도 같은 기분이었다. 엄마가 옆에 있음으로써 아이가 느꼈을 정서적 안정은 차치하고, 경단녀라는 타이틀을 마지못해 떠안은 나 하나만을 생각할 때 느껴지는 아쉬움이 언제나 가슴 한편에서 이런 문제들이 불거질 때마다 근본적인 화가 들끓게 만드는 듯하다.
왜 우리 사회는 내가 믿고 내 아이를 맡겨도 되게끔 구조적으로 도와주지 않았던가 원망스러운 맘을 떨칠 수가 없다. 믿어도 될지 말지 불안하기만 한 그 기관들조차도 충분치가 않아 아이를 임신한 순간부터 어린이집 대기 순번에 등록을 해야 하고, 보낼 수 있는 유치원을 찾느라 엄마들은 항상 전쟁을 치르는 중인데, 도대체 어떤 무엇이 나아지고 있다고 저출산을 운운하며 도대체 무엇으로 출산을 장려하고 있다는 건지, 도무지 내 상식에서는 이해할 길이 없다. 어째서 아이를 돌봐주겠노라 나서는 사람들의 자질과 수준이 미달되는지에 대해서는 그 원인을 짚어내지 않는 건지, 왜 나아지는 건 하나도 없는 거 같은지.. 오늘은 답답함을 글 위로 쏟아내어 본다.
이 모든 것들의 개선과 발전을 위해서는 사실 우리 모두가 눈을 더 크게 뜨고 세상에 관심을 던져야 할 때인 것 같다. 더는 무지한 어른들 때문에 작은 영혼들이 상처 받거나 사그라져 가지 않게 되기 만을 간절히 바라며... 내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사회, 우리 아이들이 어디서나 보호받는 그런 세상이 빨리 와주기만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