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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뮤 Jan 27. 2023

나는 방학이 싫어요!

오래전 시카고라는 그룹이 불렀던 'Hard to say I'm sorry'라는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다.


"Everybody needs a little time away"

(모두에게는 각자시간이 필요합니다)


사실 젊었던 시절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일단 사랑하는 사이라면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사랑하는데, 좋아 죽겠는데 어떻게 서로 떨어져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지? 좋아하는 사이에는 싸워서 감정이 상했을 때만 떨어져 있고 싶은 거 아닌가? 당시 나의 상식에선 있을 수 없는 일처럼 여겨졌었다. 게다가 늘 연애가 고픈 외로운 청춘에게는 더더구나 이해가 갈 리 없을 수밖에.


그러나 지금은?


미치도록 혼자이고 싶다고 외친다면 그 누군가는 요즘 브런치를 휩쓸고 있는 이혼의 물결에 편승한다고 말하려나. 나는 헤어짐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그저 아주 건강한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절규하는 거다. 나는 남편과 딸을 넘치도록 사랑하고 내 가족이 있어 너무 행복하다. 다만, 사람은 누구나 개인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매일매일 온몸으로 느끼다 보니 가끔은 정말 대책 없이 벗어나고 싶단 생각이 드는 때가 있다.


이번 설 연휴는 유독 길다고 느껴졌다. 양가 찾아뵙고 인사드리고도 가족끼리 비비대며 보낸 시간이 어쩜 그렇게 길었던 느낌인 건지. 명절 준비한다며 음식 장만하고 집에서 뒹굴며 그 음식들을 '소진'하기에 바쁘다 보니 뭔가 상당히 지치고 지루했다. 연휴가 끝나 다시금 출근을 맞이하는 남편은 곡소리가 나왔지만, 아이는 여전히 방학일 뿐이고 나는 오늘도 삼시세끼 가족들 먹일 궁리에 괜스레 생각만 분주하다.




어린 시절 방학처럼 신나는 때가 있었나 싶다. 다만 늘어지게 게으름을 만끽하다 개학날이 다가오면 한꺼번에 방학숙제를 쳐내느라 정신이 홀딱 빠지곤 했다.

당시엔 '탐구생활'이라는 방학용 교제가 있었는데, 단 한 번도 매일 날짜에 맞춰 해본일은 없었다. 무조건 개학 3일 전부터 벼락치기로 해대느라 내용은 당연히 엉망이었고, 무엇보다 밀린 일기를 써내는 일은 그야말로 뼛속까지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때 몇 월 몇 일 날씨가 어땠냐며 오빠와 서로 물어보고 기억을 쥐어 짜내며 있는 일 없는 일 지어내기에 바빴으니, 아마도 나의 창작 능력이란 개학 전 불시에 급작스럽게 훈련이 되었던 게 아닌가 싶다.

출처: 구글


그땐 만들기 숙제도 있었고, 곤충채집도 해가야 했고, 하여간 개학날엔 바리바리 한 보따리를 학교에 챙겨 고 가야만 했었는데, 우리 집 초등학생의 방학숙제를 보니 이건 숙제도 아니다. 일주일에 한 번 일기를 쓰면 되고, 책 많이 읽고 독서 기록장을 하라는데 이건 전적으로 자율에 맡겨진 상태이며, 매일 건강하게 먹고 운동 많이 하란다. 세상에! 어차피 방학 내내 꾸준히 해낼 과제도 아니지만 이렇게 헐렁해서야... 지금 침대에 벌렁 누워 뻥튀기를 먹고 있는 딸아이를 보니 이유 없이 한숨이 나오는 건 왜인지..


아이가 학교에 들어간 이후로 겨우 오전에 서너 시간 자유시간이 주어지는 것에 경악을 했었다. 차라리 오후 늦게까지 맡겨둘 수 있는 어린이집 시절이 좋았다며. 그런데, 지금은 딱 두 시간만 혼자 있는 시간이 주어져도 너무 행복할 것 같다. 세상에 방학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면 전국의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화내시겠지. 선생님이 미칠 때쯤 방학을 하고 엄마가 미칠 때쯤 개학을 한다는 명언이 있는데, 나는 방학 시작부터 이미 미쳐있었지 싶다.


사랑하는 딸아, 우리도 거리 좀 두면 안될까..

나도 누가 차려주는 밥 먹고 뒹굴거리고 싶다. 혼자인 건 싫고, 함께인 건 힘들고, 이것이 인생의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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