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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뮤 Jul 31. 2023

뭐든 '다시' 하는 게 귀찮은 나이

토요일 오전 모처럼 아이가 여름 방학 캠프에 참여하느라 집을 비워 정말 오랜만에 퍼져 앉아 TV를 켰다. 아이가 집에 있을 땐 절대 키지 않는 기계이다 보니 가끔 혼자 게으름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 그렇게 꿀맛일 수가 없다.

사실 TV도 시리즈이어 볼 때나 재미를 느끼지 그렇게 까끔 불쑥 켜서 뭐 재밌는 거 없나 돌려댄다고 갑자기 어떤 프로그램이 재밌어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니 내 취향을 귀신같이 간파하여 알고리즘의 지옥으로 끌어들이는 유튜브가 훨씬 더 흥미로울 수밖에...


정말 볼 게 없구나 생각하며 이리저리 채널을 휘젓고 다니는 중에 여행 상품을 판매 중인 채널과 딱 마주쳤다. 캐나다 여행 상품이었는데 7일간의 기간으로 인당 최소 470만 원부터 시작이란다. 사실 나는 그렇게 여행을 넘치도록 다녀본 사람은 아닌지라, 특정 국가로 여행을 떠나는데 비용이 어느 정도선에 있어야 소위 싼 건지 비싼 건지 아님 적절한 건지 가늠을 잘 못한다. 방에서 취미활동에 빠져있던 남편에게 중계방송을 했다.


"여보야~ 캐나다 7일 가는 게 인당 470만 원부터래... 저거 가면 오로라를 두 번이나 보러 간다네?"

"(대충)아 그래... 근데 겁나 춥겠지..."

"글게... 춥긴 하겠다...."

(잠시 생각)

"근데 여하 간에 여보야... 세 식구가 캐나다 한번 다녀오려면 최소 1500~2000만 원은 들어간단 소리잖아? 와 진짜 여행 한번 제대로 하려면 작정해야 하는 거구나... 한 번에 때려 넣기엔 너무 거금이다.."

"그렇긴 하네.."

"근데 말이야... 그 오로라.. 실제로 보면 되게 경이롭긴 하겠지? 아마 감탄이 나올 거야... 그런데.... 그거 꼭 실제로 봐야 되나?"

".......... 실제로 보면 뭐 TV에서 본 대로 생겼겠지....."


그 순간 남편은 방에서 나는 거실에서 웃음이 빵 터졌다.


"아~ 이래서 우리가 여행을 못 다니는구나~ 깔깔깔~~"


여행을 '못' 다니는 건지 아니면 '안' 다니는 건지, 문제의 핵심은 우리 부부가 정말 놀랍도록 똑같은 인종들이 만나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둘 중 한쪽이 여행을 너무 좋아하는데 다른 한쪽이 그다지 흥미가 없다면 아마도 서로가 맞지 않는 부분을 어느 정도씩 맞춰줘야 하는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성격의 이슈이건 아니면 취향의 이슈이건 간에 이런저런 이유들이 잘 맞물려 우리는 상당히 괜찮은 '합'을 만들어가고 있다.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어떨까에 대해 막연히 멍 때리며 생각을 해봤다. 현재 나의 삶에 대해 어떤 기준에서 보느냐에 따라 결론은 다르기 마련이지만, 여하 간에 세상적 기준으로 바라본다면 뭐 딱히 성공적이지도, 멋지지도 않은 지극히 평범한 인간의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나름의 열정 넘치는 젊은 시절을 살았던 건 분명해서, 만일 나보고 인생을 다시 살아보라고 한다면 난 한사코 거절하고 싶다. 다시 그 시간들을 지내야 한다는 건 정말이지 노땡큐이기 때문이다. 생각만으로도 피곤하다.


사실, 나름 젊은 시절이 열정적이었다고 착각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여행 다니는 걸 이렇게 귀찮아하는 걸 보면, 그냥 다시 사는 게 귀찮은 것일지도..........(뜨끔)

솔직히 현재 내가 만족스럽지 않은 것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본다면, 지금껏 골라온 선택지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저변에는 카펫처럼 깔려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는 즉시 나의 현재를 모두 부정하는 것밖에는 안되기 때문에, 나는 그저 지금껏 내가 해온 모든 선택들을 존중하고 싶다. 좋았으면 추억이고 나빴으면 경험이라 하지 않나. 어느 쪽으로든 수많은 선택을 하며 지금까지의 세월을 그럭저럭 살아온 것만으로도 기특하다고 스스로에게 쓰담쓰담해주고 싶다.


다만 정말 내가 인생을 다시 살아볼 수 있다면, 만일 지금과는 아주 조금 다른 선택으로 살아볼 수 있다면, 지금까지 보다는 여행을 조금 더 많이 다녀보고 싶다. 15년의 세월을 해외에서 살았지만 그저 생활이었지 그것이 본질적으로 여행은 아니었던지라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만큼 여행을 많이 한 것은 아니다. 어찌 보면 짧은 기간의 여행보다는 오랜 호흡으로 다른 문화를 체험했으니 크게 아쉽다 할 것도 아니지만, 여하 간에 '걸어서 세계 속으로'를 다 보기 전에 내 눈으로 먼저 새로운 곳들을 직접 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그 외에는 글쎄, 내가 얼마나 크게 다른 선택들을 하게 될지 잘 모르겠다. 그건 정말 닥쳐서 살아봐야 알지 않겠나. 그 순간에 꽂히는 선택을 할 테고, 내가 완전히 새로운 MBTI로 무장하고 태어나지 않는 이상에야 대체적으로 나의 성향이 가려는 방향은 다 거기서 거기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긴 한다. 그래서 왠지 다시 살아도 지금 같이 사는 남자랑 결혼할 거 같단 생각이 든다.(전적으로 뭔가 새로운 게 다 귀찮아서이다!)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이야기를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로 담아 갑니다. 이번 달 주제는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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