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남는 경기(feat. 흑백요리사 2)

by 마마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흑백 요리사 2'가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이미 수많은 기사에서 참지 못하고 스포를 날렸기 때문에 결과는 미리 알고 봤지만, 재도전을 통해 승리를 얻어낸 최강록 셰프가, 요리 경연을 보다가 눈물이 그렁대는 순간을 경험하게 만들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


그가 시즌 1의 3라운드에서 고배를 마셨단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있던 시점에 '히든 백수저'라는 타이틀을 달고 다시 등장했을 때, 보기에는 그저 순하고 조용한 사람 같더니 내심 강단 있는 모양이다 싶었다. 재도전의 이유를 묻는 인터뷰 질문에 그저 '도파민 충전을 위해서'란 짧고 담백한 답변을 내놓는 그의 다소 엉뚱한(?)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그러나, 최종회까지 보고 나니 도파민 충전이란, 단순히 자극을 추구하는 상태를 의미하는 요즘말이라기보다, 아마도 초심을 돌아보겠다는 그만의 랭귀지였구나 싶다.


'나를 위한 요리'라는 마지막 미션이, 소위 요즘 말로 '킥'이었다. 감히 맛으로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쟁쟁한 셰프들을 100명이나 모아두고, 그중 최고를 골라내는 게 어디 보통일일까. 역시나 그 간발의 차이를 넘어서게 만든 것은 한 개인의 이야기, 음식에 한 겹을 덧입힌 스토리였다. '조림인간', '연쇄 조림마', '조림핑'이란 다양한 별명으로 그는 멋지게 포장되었지만, 그 안에서 그가 느꼈을 가장 인간적이고 나약한 마음을 '척'이라는 진실한 이야기로 요리와 함께 곁들여 낸 것이다. 어수룩해 보이는 순한 표정과 말투로 '조림을 잘하는 척'했다는 고백이 나오는 순간, 내 마음속에서 뭔가 덜컥 내려앉은 듯 놀라움과 공감이 고개를 들었다.


실력을 인정받은 사람이, 심지어 최후의 승자가 될 수도 있는 자리에서 내어놓는 솔직한 고백이란 그 어떤 말보다 울림이 상당했다. 살면서 한 번쯤, 또는 그 이상, 나의 능력을 잘 포장하기 위해 '척'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남들이 나의 어떤 부분을 능력으로 봐준다 해도, 아무도 모르게 그 안에서 혼자 느끼는 '불안'이란 감정을 남몰래 만나본 경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솔직하게 남들 앞에서 내어 놓는 행위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듯하다. 그래서 이 사람이 정말 달리 보였다. 요리 실력과는 별개로 최강록 셰프란 사람이 너무 대단해 보였다.


요리괴물 이하성 셰프 역시 범접하기 어려운 창의적인 능력자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그는 아직 어리고 높이 올라가고픈 열정만 부각되어 언뜻 보기엔 한국인의 미덕이라는 '겸양'의 모습을 찾아보긴 힘들었다. 이것을 절대 나쁘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 나름 젊은 패기와 자신감으로 채워진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는 실력은 갖추고 있지만, 깊이 우려낸 사골 국물처럼 진정성이 우러나는 인생의 스토리를 채우려면, 그래서 자연스럽게 '잘 익은 벼'의 이치를 깨달으려면, 좀 더 세월을 담아가야 하지 않겠나.


최근 읽고 있는 트렌드 관련 책마다 죄다 'AI' 이야기에 정신이 없다. 아직 딱히 그 누구도 정확한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현재에 너도 나도 한 마디씩 이 인공지능 잔치에 숟가락을 얹고 있는 것이 때로는 마뜩잖다. 그러한 대중의 거대 움직임이 때로는 현실을 왜곡시킬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무리 기계가 인간의 많은 부분을 '대체'하게 될지라도, 절대 변하지 않을 핵심은 바로, '가장 인간적인 인간의 능력'이라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던 '흑백요리사 2'의 마지막 라운드, 최강록 셰프의 우승이 중요한 의미로 겹쳐 보인다. 결국 모든 것을 이기는 것은 '진정성'이라는 생각에 오래 머무르게 된다.


전 특출난 음식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전국에 숨어서 열심히 일하고 계시는 요리사분들, 음식 만드시는 일을 하시는 분들과 같은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주신 말씀 잘 가슴속에 담아서, 그리고 이곳에서 만난 인연들 소중히 여기면서 열심히 음식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살겠습니다. -최강록 셰프-


요즘 세상에 가장 필요한 미덕이 바로 이거 아니었나 싶다. 겸손. 뛰어나지만 나를 낮추는 모습, 상대를 배려하는 모습, 어떻게 보면 가장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은 경연이란 판 위에서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하는 가장 인간적인 모습으로 따뜻한 마무리를 해준 '흑백요리사 2'에 박수를 보낸다. 수고하셨습니다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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