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참 많이 흘렀다. 지금에야 지나간 오래전 이야기들을 하나둘씩 꺼내봐야겠다 생각하니 새삼스레 그때의 기억과 감흥들이 안개 낀 듯 뿌옇게 느껴져 아주 오랫동안 주머니 속에 넣어두고 만지작만지작했다. 그래도 한번 돌이켜 보자 싶어 노트를 꺼내 두고 한국땅을 떠나던 날부터 차례차례 내 기억에 굵직하게 남아 있는 흔적들을 끄적여봤다. 얼마나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올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12년의 세월 동안 내가 겪은 많은 스토리들을 그저 기록하는 마음으로 한번 써내려 볼까 한다.
1992년 1월 8일. 그 날 저녁 우리 가족은 호주 시드니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당시 나는 갓 중학교 과정을 다 마치고 졸업식만을 목전에 앞둔 사춘기 소녀였다. 부모님께서 호주로 이주 결정을 내리시기까지 많은 고민과 여러 가지 절차들이 있었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그야말로 가야 가는 것이기에 괜히 마음만 들떠 공부 안 한다고 할까 봐 부모님은 오빠와 내게는 그 문제에 관해선 오랫동안 쉬쉬 하셨던 터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지금 내 나이가 그때 우리 아버지 나이 즈음이다. 중년의 한 복판에서 가족을 모두 이끌고 뒤늦은 '공부'를 결심하시기까지 아버지 나름의 고뇌가 얼마나 컸을까 짐작은 가지만, 난 해외에 나가 살면 세상의 모든 '자유'를 얻을 것처럼, 마치 공부와는 담을 쌓아도 될 것처럼 허무맹랑한 꿈을 꾸었고, 주변의 친구들도 그런 나를 너무나 부러워하는 상황이었다.
당시엔 비행기가 저녁 늦게 출발해 밤새 10시간을 날아가 시드니의 이른 새벽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한국 생활 정리에 내가 한 일이 뭐가 있다고 피곤에 잔뜩 절어 올라탄 비행기에서 나는 설렘을 만끽할 겨를도 없이 밤새 푹~ 잘도 자며 갔던 것 같다. 가족이 모두 함께 가는 상황에 부모님이 어떻게든 상황을 리드하실 테니 내가 걱정할게 뭐가 있었겠나. 아무 생각 없는 막내의 특권이었다.
곧 비행기가 내린다는 안내와 함께 창 밖을 보니 구름은 잔뜩 끼었고 심지어 번개까지 옆에서 치고 있었다. 새로운 곳에 간다는 설렘은 순식간에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가기도 전에 비행기가 벼락이라도 맞으면 어떻게 하나, 비구름 사이를 뚫고 흔들리며 내려가는 비행기가 그저 불안불안 좌불안석이었다. 사실 막연히 돼먹잖은 '유토피아'를 상상하며 비행기에 올랐지만, 앞으로 내가 맞이하게 될 '현실'의 프리뷰를 그렇게 비행기 착륙과 함께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먹구름이 잔뜩 끼고 번개가 번쩍번쩍하는 거친 날씨와 같은 현실..
공항에는 사촌오빠가 마중을 나왔었다. 태어남과 동시에 아기 때 호주로 이민을 나가 거의 현지인으로 성장한 사촌오빠였다. 사실 살면서 한 번인가밖에 본 적이 없었던 터라 말이 사촌이지 생판 낯선 사람과 다를 바 없었다. 공항을 빠져나오자 시드니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고, 한 겨울에 한국을 떠났건만 계절이 반대인 시드니는 여름의 한 복판이라 어찌나 후텁지근하고 습하던지, 뭔가가 다 어색하고 이상한 것 투성이었다. 나중에 살면서 보니 시드니의 여름은 습기와 끈적함과는 거리가 있는 곳이었지만, 나를 맞이해주던 그 날의 비는 그렇게 축축하고 무거웠다.
가뜩이나 어색함으로 포장된 모든 것에 한층 이상함을 더해주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자동차 운전대가 오른쪽에 있다는 점이었다. 누군가 호주는 모든 게 한국과는 반대라고 말하는 걸 들었었는데, 그 말이 실로 딱이구나 싶었다.
한참을 달려 주택가로 접어들자 그야말로 영화에서만 보던 집들이 줄지어 있었다. 제각각 개성을 지닌 단독 주택들이 깔끔하게 나열된 동네 길, 그 앞에 펼쳐진 잔디밭 마당들, 거기에 담장도 하나 없는 자유로움이 이곳은 정말 안전한 곳이라고 대변해주고 있었다. 처음으로 그렇게 아버지 형님댁인 큰집에 도착해 어안이 벙벙해 들어가 앉았고, 부모님은 잠시 앉을 틈도 없이 사촌오빠, 큰엄마와 함께 바로 외출을 하셨더랬다.
우리가 임시로 지내게 될 작은 유닛 하우스를 미리 구해놔 주셔서 저녁에는 그쪽으로 옮길 터였는데, 우선 우리가 당장 그곳에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가장 기본적인 살림살이와 가구 등을 구입하러 나가신 것이었다. 뭐 크게 바랄 것도 없지만, 바로 막 도착한 동생네 가족을 첫날부터 텅 빈 집에서 생활하도록 큰 배려(?)를 해주시느라 오자마자 쉬지도 못하게 바로 쇼핑센터로 끌고 나가신 큰집 어르신들의 사려 깊음을 그 당시에는 미처 알 수가 없었다. 으레 새로운 곳에 정착하기 위한 통과의례라 생각했으니.. (큰엄마는 시동생 가족들이 하룻밤이라도 뭉개는 게 그렇게도 달갑잖았던 게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정말 시간을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로 오빠와 나는 큰집 거실 소파에 널브러져 잠에 빠져 들었다. 얼핏 점심을 먹겠냐는 사촌 여동생의 물음에도 손사래를 치며 잤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 것을 보면, 아마도 진짜 하루 종일 잠을 잤던 모양이다. 잠에 취해 정신없이 자다 잠시 깨어나도 마치 무슨 수면제라도 투약받은 양 스르르 다시 잠에 빠져들길 반복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호주는 산소가 부족한 나라라고 한다. 그래서 몸이 미처 적응을 하지 못한 첫날이었으니 그렇게도 잠에 취해 비실댔던 것이다.
그날 저녁엔 그 텅 빈 유닛 하우스에 우리 가족만 있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 유닛 하우스란 약간 한국의 다세대 주택 같은 구조라고 생각하면 된다. 텅 빈 집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우리 가족끼리 함께 있으니 마음만은 든든하고 오히려 편안했던 것 같다. 이부자리는 그날 새로 샀었는지 어쨌는지, 그래도 뭔가를 깔고 덥고 그렇게 궁상스럽게 첫날을 보냈으리라... 가뜩이나 깔끔하셨던 우리 엄마였는데, 카펫이 깔린 그 바닥을 제대로 청소도 못하고 얼마나 불편한 마음으로 그 밤을 보내셨을까 이제야 막연히 짐작해본다.
뭔가 새로운 도전을 위해 감행한 타향살이였는데, 막상 그 엄청나게 새로움을 맞닥뜨린 부모님의 심정이 어땠을지 철없던 그 시절의 나는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우리에게는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을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던 그 첫날밤.. 내 기억은 흐리멍덩 그날 밤이 살짝 지워져 버렸다. 그래도 비가 그친 후 깨끗한 호주 하늘엔 별이 가득 반짝였을 테고, 그렇게 또 새로운 날이 밝아오고 있었을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