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랑의 총량

馬主授業: 경주마 다프네

by 마마남녀



외동. 나누어야 했던 적 없는 두 사람이 산다.

내 것을 덜어 남에게 주는 일은 내가 원할 때만. 남으로 인해 내 몫이 줄어드는 경험도, 내 것이라고 믿었던 것을 내어 놓아야 하는 상황도 없었던 삶. 나와 남편에게 "공유" 혹은 "나눔"은 "포기" 혹은 "양보"로 느껴졌고, 심지어 그 경험조차 별로 없었다. 우리는 원하는 만큼 받았고, 우리만이 받았으므로.


​"저래서 외동은 못 쓴다"라며 손가락질받을까, 내 새끼 행여나 밖에 나가 욕먹을까, 아니면 사실 자식 잘 못 키웠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르겠으나 누구보다 엄격했던 부모. 아이의 마음에 벽이 서는 것을 감수하고라도 단념하지 않았던 매서운 훈육 덕분인지 많이 들었던 말이라면 "장녀예요?" 남편 역시 비슷하다. 말 안 되는 응석, 과보호의 흔적은 없을지 모르나 그래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왜 그게 티가 나지 않았겠으랴. 결정적으로 우리는 나눔에 익숙하지 않으므로. 다행히 이 둘이 같이 잘 살고 있는 이유라면 서로에게 주는 건 어디까지나 "내가 원해서"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델피니라는 못난이 망아지 하나를 그리 끌어안고 살며 참 편했다. 보러 가는 것도 피니만, 간식도 피니만, 예뻐하는 것도 피니만, 심지어 걱정도 피니만. 내가 가진 사랑의 전부를 피니에게만 주는 것은 매우 쉬웠다. 그러다가 다프네가 온 것이다.


델피니와 다프네를 대하며, 외동으로 살다가 어느 날 동생이 생기게 된 시나리오가 떠올랐다. 또옥같이 사랑하겠다는 마음이었지만 자잘하게 둘의 우열을 나누는, 혹은 그렇게 "보이는" 일들은 넘쳤다. 동생의 존재만으로도 박탈감을 느낄 언니에게 더 많은 사랑을 부어야 해, 아냐, 분명 가족이 되었음에도 항상 뒷전인듯한 서운함을 느끼지 않도록 동생에게 더 많은 사랑을 부어야 해, 두 주장 모두 일리가 있었겠으나 저울질 끝에 택하는 것은 항상 언니였다.

피니는 너무나 아픈 손가락이었기 때문에. 마음을 바싹바싹 태우며 휴양과 복귀, 희망과 절망을 반복하던 지난날들의 결과 피니는 독보적인 존재가 되어버렸다. 의사표시는 또 왜 이렇게 확실한 건지, 무시하고 싶어도 무시하도록 놔두지 않는 "외강내유"의 응석받이에게 사랑을 더 줄 수밖에 없었다.


반면 다프네는 참 손 가는 것 없는 아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모든 걸 알아서 잘했다. 뛰라면 뛰고 쉬라면 쉬고 타고나길 순한 성격에 언니가 옆에서 자신에게 화를 내건 말건 큰 눈망울에 시샘 한 번 서리지 않았던 프네를 보며 나는 신기하고 고맙고 대견했지만, 동시에 불안했다. 그런 아이에게 확실히 마음이 덜 간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이 그리 맞을 수가 없었다. 울지를 않으니, 심지어 옆에서 고래고래 울고불고하는 애 옆에 그리 조용히 있으면 그 아이는 절대 봐지지가 않는다.

숨만 쉬어도 뭉클한 델피니와, 아무 말 없이 알아서 잘하는 게 점점 일상처럼 느껴지려고 하는 다프네 사이에서 나는 스스로에 대해 경각심이 들기 시작했다. 경주마로서의 능력에 대한 기대까지 한 몸에 받는 다프네를 보며 나는 델피니의 예를 떠올리며 프네의 모든 것이 절대 당연한 게 아니고 정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잘 키워 나가야 할 어린 말이라는 사실을 끝없이 상기했다. 지금까지 프네 덕에 우리가 운이 너무 좋았던 거라고, 정말 그 꼬맹이한테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고.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이 마음은 델피니에게 더 쓰이는 식이었다.





지지난 주말 다프네가 3등으로 선전을 하며 경주를 마친 뒤 우리는 여느 때처럼 프네의 진료기록을 확인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경주 직후에 별 이상이 없어도 일주일 동안은 매일 진료기록을 체크한다. 부상이 꼭 직후에만 드러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마음을 쉬이 놓을 수가 없어서다. 그러나 괜찮은 것 같았다. 별다른 업데이트도 없었다. 그래서 안도하던 중 전화를 받았다.


​프네의 앞다리 무릎에서 골편이 발견되었다. 다리에 부종과 열감이 생겨 엑스레이를 찍어본 결과 발견한 사실이다. 골편이라니. 골편이라니? 현 상황상 수술만이 유일한 답이었고, 수술 후 장기간 휴양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현실적으로 와닿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가장 처음 든 궁금증은 "꼭 수술을 해야 하는 것인가"였으나 프네의 경우 다른 선택지가 없는 것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수술을 기정사실로 놓고 정신을 가다듬어야 하는데, 끝없이 막막해지는 것이었다. 그 어린 망아지가 수술이라는 큰 일을 겪어야 한다는 점이 가장 마음이 아팠다. 행여나 잘 못 되면 어떡하지, 반짝반짝 빛날 준비를 하며 예쁘게 커가던 작은 망아지가 꽃도 한 번 펴보지 못하고 이렇게 경주 세 번만에 꺾여버리는 게 말이 되나. 기가 막혔다.


​남편의 심란함, 아버님의 황당함, 우리의 머릿속에 끝없이 반복된 말이라면 아마도 "대체 왜" 혹은 "어떡해".




사랑의 총량은 정해져 있는가 보다. 어느 망아지든 받아 마땅한 사랑의 양이 있다. 다프네라고 그 그릇이 작을 리 없다. 언니에게는 콸콸 넘치게 부어댔으나 동생의 그릇은 항상 조금 비어있었다. 이제 프네가 받을 차례다. 프네는 이번 주 금요일 수술을 받고, 약 2주간 회복기를 거친 뒤 장수목장으로 내려가 휴양을 할 예정이다. 천만다행인 것은 골편이 발견된 부위가 비교적 수술이 용이하고 예후도 좋은 곳이라는 점. 골편제거술 자체가 수술 치고는 아주 어렵거나 심각한 것은 아니라는 점도 위로가 된다. 단지 이 모든 과정이 프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만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복이 올 수도 있다고 믿어보지만 부정할 수는 없다, 이것이 "화"라는 것을.


​주말 내내 아이들을 보러 갔다. 프네가 어쩌고 있을지 마음을 졸이며 다가갔는데, 항상 그렇듯이 발소리에 고개를 내밀고 쳐다보는 모습이 의외로 괜찮아 보이는 것이었다. 다리도 퉁퉁 붓거나 아파서 절뚝일 줄 알았는데 외견상으로는 멀쩡해 보였다. 아마 일단은 염증 치료가 있어서 그런 것일 테지만. 자신이 크리스마스이브에 전신마취를 하고 큰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꿈에도 못 하겠지. 갑자기 차에 실려 생전 처음 보는 목장으로 이사를 간다는 것도 모를 거다.


​장수를 또 가게 생겼네, 둘이 웃어버렸다. 그래도 언니는 옷차림 가볍고 날씨 견딜만한 여름을 골라 내려가곤 했는데 동생은 한 겨울 내내 가 계시겠다니 우리 이제 큰 일 났다. "무진장(무주, 진안, 장수)" 추운 그곳에 열심히 들락거리려면 옷을 단단히 껴 입어야 할 판이다. 누구 말 따나 세상에서 가장 추운 곳이 마구간이라 하니.


​이제 우리 둘째에게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을 해 줄 기회가 왔다.

사랑. 듬뿍, 사랑.






힘내 프네









2021. 12. 20.

keyword
작가의 이전글경주마를 구매하는 가장 황당한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