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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틸다 Mar 27. 2022

전 직원 7명인 중소기업에서 육아휴직 쟁취하기

육아휴직을 받아내기 위해 고심한 소기업 여성 근로자의 이야기

“현실적으로 육아휴직 쓰기 어려운 거 저도 알아요.
회사에 잘 말해서 꼭 받아내시길 바라요!”


나에게 육아휴직 상담을 해주었던 고용노동부 담당자로부터 받은 응원 메시지였다.

기업에게 육아휴직 사용을 장려하는 고용노동부인데 담당자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대기업에서는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것이 비교적 수월하지만 중소기업에서는 눈치 보느라 못쓰고, 사측에서 거절해서 못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중소기업에 근무하던 나 또한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이라 어떻게 말을 꺼낼지, 어떤 대사로 말을 할지 고민하느라 굉장히 속앓이를 많이 했었다.

이 글에서는 내가 육아휴직을 받아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쟁취했던 스토리에 대해 담아보려고 한다.




왜 중소기업은 육아휴직 사용을 꺼려할까

육아휴직을 받아내기 위해서는 전략이 필요했다. 먼저 중소기업이 육아휴직을 꺼려하는 이유를 생각해봤다.

나는 중소기업보다도 더 작은 전 직원 7명인 소기업 근로자이고 심지어 업력 3년이 안 된 스타트업이었다.

직원들 연령대가 대체로 낮은 이 회사에서 임신한 직원으로는 내가 첫 케이스였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은 나에게 꽤나 간절했지만 선례가 없어서 눈치를 좀 봐야 했다. 더 열악했던 것은 인사담당 직원이 퇴사를 하면서 직무가 전혀 다른 나에게 관련 업무들이 떠넘겨졌고, 나는 육아휴직 제도를 사용하고 싶어 하는 근로자이자 기업 담당자인 셈이 돼버렸다. 고용노동부에 상담을 할 때도 각각 처리하는 부서가 달라서 문의도 따로따로 해야 했다.


그런데 조사를 하면 할수록 중소기업에서 육아휴직을  꺼려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급여는 고용노동부에서 지급하기 때문에 직원에게 급여를 줘야 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기업은 지원금을 받을  있는데도 말이다. 그럼에도 기업의 입장이 되어 육아휴직을 꺼려하는 이유를 리스팅 해봤다.


- 육아휴직 처리하는 업무가 추가되므로 귀찮다.
- 직원을 새로 뽑는 것이 싫다. 근로자가 출산 후 복귀하기를 원한다.
- 대체 직원을 고용했는데 육아휴직자도 복직한다면 같은 포지션에 두 명이 종사할 수도 있다는 것이 부담스럽다. 소규모 회사 입장에서 인건비 낭비다.
- 근로자의 퇴직금 계산 시 육아휴직 중일 때의 기간도 포함해야 한다.


그리고 회사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각 항목마다 대책안을 준비해야 할 것 같았다.


- 육아휴직 관련 처리하는 업무가 추가되므로 귀찮다.

육아휴직 관련 처리 업무는 2가지가 있다.
1) 육아휴직 확인서 작성
2) 지원금 신청.

육아휴직 확인서는 최초 1회에 해당하고 온라인으로 신청하면 간단하다.

지원금 신청 또한 온라인으로 간단하게 신청할 수 있는 일이고 회사가 받는 지원금이기 때문에 귀찮다고 마다하진 않을 것이다.


- 직원을 새로 뽑는 것이 싫다. 근로자가 출산 후 복귀하기를 원한다.


"회사에서 출산휴가까지는 괜찮은데 육아휴직은 곤란하다고 하네요. 아이 맡아줄 사람이 없는데 어떡하죠?"


카페에 고민상담으로 많이 올라오는 케이스다. 보통은 이런 경우에 양가에서도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근로자의 선택은 세 가지다. 1) 아기 2~3개월령에 베이비시터를 고용해서 출근하거나 2) 퇴사하거나 또는 3) 집요하게 설득하여 육아휴직을 받아내는 것.

출산 후 근로자가 복귀할 수도 없고 육아휴직이 허용되지 않아서 결국 퇴사하는 것으로 정해졌다면 퇴사 사유를 육아휴직 불허로 인해 퇴사하는 것이라고 소명하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간혹 회사에서 실업급여받을 수 있게 기타 사유로 권고사직 처리해주겠다고 한다거나, 근로자가 그걸 원해서 먼저 제안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방법은 쓰지 않았으면 한다. 이는 엄연히 부정수급이고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작용될 가능성이 크다. 퇴사를 한다면은 육아휴직 불허로 인해 퇴사한다고 사유를 정직하게 적는 것이 좋다.

퇴사를 결심하기 전에 그래도 한 번 더 회사를 설득해 보자. 그냥 퇴사하게 되면 결국 새로 직원을 뽑아야 하고, 육아휴직을 써도 직원을 뽑아야 하는 건 마찬가진데 육아휴직 기업지원금이라도 받고 고용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회사에 제안해 볼 수 있다.

- 대체 직원을 고용했는데 육아휴직자도 복직한다면 같은 포지션에 두 명이 종사할 수도 있다는 것이 부담스럽다. 소규모 회사 입장에서 인건비 낭비다.

회사에서 나를 놓치고 싶지 않은 인재라고 생각하고 나 또한 복직을 원한다면, 대체 인력을 계약직으로 고용하는 방법이 있다. 계약직이어도 문제없이 지원금 수급이 가능하다.

회사에서 나를 떠나가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나 또한 복직을 원하지 않는 경우, 아기 봐줄 사람이 없어서 아무래도 복직이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되, 상황이 되고 회사도 나를 필요로 한다면 복직하겠다고 말한다. (퇴사를 확정 짓는 것보다는 열린 이슈로 두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 근로자의 퇴직금 계산 시 육아휴직 중일 때의 기간도 포함해야 한다.

이건 명백하게 근로자에게 유리한 사항이고 회사에서 이득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으므로 대안이 없다. 그저 말을 꺼내지 않는 수밖에.




육아휴직 이야기를 꺼내기에 앞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므로 증거는 꼭 남겨두자

회사에서 육아휴직을 아무런 문제 없이 허용해줄지 아닐지는 말을 꺼내기 전까지는 모른다.

중요한 것은 의사를 전달하는 것부터 답변받는 것까지 모든 과정을 증거로 남겨놓는 것이다. 말이 잘 안 통해서 실업급여를 받는다거나 노동청에 진정할 때 거부당했다는 증거를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서를 주고받을 때는 메일이나 메신저로 전달하는 것이 좋고, 구두로 이야기한다면 녹취하는 것이 좋다.



“육아휴직 쓰고 싶어요” 어떻게 말해야 할까?

육아휴직은 근로자의 당연한 권리이고 기업이 이를 거부할 시 회사는 500만 원의 벌금을 물게 된다.

이처럼 당연한 권리이지만 뉘앙스에 대해서는 여러 번 고민을 했다.


1) 법적 근거 내세우며 당당하게 요구하기

2) 기업에서 이득 볼 수 있는 내용을 안내하고 부탁하는 자세로 요구하기


"대표님! 육아휴직은 의무이니 저희도 쓸 수 있는 거죠? 육아휴직 신청서 제출했습니다! 확인 부탁드려요."

마음 같아서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아주 심플하고 이것 때문에 마음 끙끙 앓지도 않았을 테다.


사업주는 임신 중인 여성 근로자가 모성을 보호하거나 근로자가 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를 양육하기 위하여 휴직을 신청하는 경우에 이를 허용하여야 한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제19조 제1항)


이 같은 법률이 있는데도 왜 우리는 "육아휴직 사용하겠습니다"가 아니라 "육아휴직 사용해도 될까요?"로 물어야 할까. 현실이 답답했지만 1) 번으로 하면 얼굴을 붉힐 것 같아서 나는 2) 번으로 선택했다.



우선 육아휴직 신청서를 메일로 보내 놓는다.

앞서 말했듯이 노동청에 진정 제기할 상황이 생길 수도 있으므로 증거자료를 남기는 것은 중요한데, "육아휴직 신청서"를 서면으로 제출하면서 의사를 밝혔냐 하는 것은 중요한 사안이므로 메일로 제출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회사는 10인 미만 기업이라 취업규칙이 따로 없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혹시 저희 출산휴가, 육아휴직 진행할 수 있나요? 저희가 취업규칙이 없다 보니 여쭤봐요. 관련해서 육아휴직 신청서 메일로 보내드렸는데 확인 부탁드립니다!”


만약 취업규칙이 있는 회사라면 취업규칙을 먼저 들여다보면 좋을 것 같다.


예상은 했지만, 내가 의사를 밝혔을 때 대표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회사 사정 아시겠지만 스타트업이라 직원들 편의를 다 봐주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이럴 줄 알고 지원금에 대한 이야기도 덧붙이려고 준비해 뒀다.

“제가 알아봤는데 육아휴직 급여는 고용노동부에서 다 챙겨주는 거고 회사에서 나가는 돈은 없더라고요. 오히려 지원금이 나와요."


회사에게 가장 중요한 건 돈이다. 돈 얘기를 강조하는 것이 효과적일 거라고 생각했다.

대표는 나에게 더 자세히 알아보고 회사에서 처리해야 하는 노무 내용, 지원금 신청 방법 등을 알려달라고 했다.


다행히 얘기가 잘 통해서 순조롭게 흘러갈 것 같았다.




만약 말이 잘 안 통했다면

말이 잘 안 통할 경우는 상당히 복잡해진다. 그때는 이렇게 해야지 하고 두 가지 방안을 생각해 두었다.


1) 퇴사 사유를 “육아휴직 거부로 인한 퇴사”라고 하고 퇴사한 뒤 실업급여받기

권고사직이 아니라 자진퇴사라 하더라도 퇴사 사유가 '육아휴직 거부로 인한 퇴사'라면 실업급여 수급이 가능하다. (사직서에 퇴사 사유 명시 필요)

육아휴직을 신청하였으나 회사에서 허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메일, 메신저, 녹취 등)

실업급여는 구직 활동을 돕기 위해 지급하는 급여이므로 구직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집에서 육아하는 것을 돕는 급여가 아니라는 점)


2) 노동청에 진정 신청하기

마찬가지로 육아휴직을 신청하였으나 거부되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메일, 메신저, 녹취 등)

노동청에서는 정당한 사유가 있는지 조사를 하고 없으면 육아휴직을 사용하도록 시정하려는 조치를 취한다고 한다.

법 위반 사항이 있는 경우 회사는 500만 원의 벌금을 물게 된다. (겨우 500만 원이냐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노동청에 진정, 벌금 부과에도 불구하고 육아휴직을 허용하지 않으면 근로자는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나는 최대한 원만하게 처리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으므로 2번으로 가는 상황만은 없길 바랐다. 다행히 말이 잘 통해서 위 두 상황은 패스할 수 있었다.




기업지원금 시뮬레이션 하기.

육아휴직 안 줄 이유가 없지 않나요?

회사 입장에서는 기업지원금을 어떤 과정을 통해 받을 수 있는지, 얼마를 받을 수 있는지 시뮬레이션을 돌리기 전까지는 불안할 것이다. 대개 지원금은 수급하기 까다로운 경우가 많고 제출해야 하는 서류, 조건 등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는 말만 전달하면 ‘진짜로 받을 수 있는 거 맞아?’ 하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계산해보니 기업이 받을 수 있는 지원금은 1,920만 원이었다. 이걸 표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3개월마다 지원금을 신청할 수 있는데 신청 가능 날짜, 지원금 항목, 계산법, 수령액, 필요서류 등을 기입했다.

* 이 표는 2021년 기준이며 2022년 1월 이후로는 대체인력지원금은 폐지되었다.


뿐만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부지급될 수 있기 때문에 기업에서 주의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조사하여 알려주었다. 기업 인사과에서 직접 해야 할 일을 내가 대신 해준 셈이라 한편으론 내가 왜 이런 것까지 알아봐야 하냐며 억울한 기분도 들었지만, 인력이 부족한 소기업이니 이럴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했다.


나는 육아휴직을 쓸 테니 나머지는 알아서 하세요 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를 위해서 나도 많이 애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표를 만들 때는 고용노동부 담당 주무관과 더블 체크하여 정확한 내용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당시에 고용센터에 방문하여 오프라인으로도 상담받고, 전화통화도 세 차례나 했다. 그만큼 물어볼 것도 많았고 지급조건, 부지급 케이스 등도 구체적으로 파악했다. 담당 주무관이 이렇게까지 하는 근로자는 처음 본다고 하셨다. 그래서 꼭 받아내었으면 좋겠다고 응원해주셨나 보다.



결과적으로 육아휴직 사용은 원만히 해결되어 잘 사용하고 있다. 육아휴직제도가 워낙 자주 바뀌고 확확 바뀌어서 해마다 사정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저출산 시대이니만큼 기업지원금이 없어지진 않을 것 같으니 때에 맞게 기업지원금을 잘 알아보고 회사와 딜을 해보면 좋을 것 같다.


눈치 안 보고 맘 편히 육아휴직을 쓸 수 있어서 이런 글을 읽을 필요가 없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커버 이미지 출처: Sarah Chai 님의 사진, 출처: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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