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사과는 보통 9월에 시작해 10월 하순에 수확하는데, 시기마다 종류도 다르다. 설 10월 하순부터 11월 중순까지 수확하는 만생종 부사다. 추운 겨울이라 보관도 오랫동안 가능한데다가 보통 설 명절 선물로 들어오기도 하기 때문일지도, 그렇게 들어오면 집 한쪽을 떡 하니 차지하고는 한동안 머문다. 2월까지는 어떻게든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번에도 설 명절에 들어온 사과를 어머니가 많다며 떠넘기셨다. 손 가득 챙겨온 사과는 고대로 상자에 담겨서 한쪽에 놓여 있다. 먹어야지 하는 생각을 해야 하는데 뭔가 귀찮음이랄까. 눈여겨보지 않는다. 신경 쓰지 않는 탓도 있지만 말이다. 겨울엔 늘 사과가 많다. 딸기도 있지만 더 자주 보는 건 사과인듯하다.
무슨 바람인지 집 한쪽에 있는 박스를 들여다봤다. 뭐가 들었는지 알고 싶어서 봤는데 그게 사과 상자였다. 손을 넣어 하나하나 만져봤다. 아직 날이 추워 생생하니 잘 있다. 그렇구나 하고 돌아서려다 하나를 집어 든다. 단맛이 생각나서 일지도. 머릿속에서 냉장고에 있는 요구르트도 생각났다. 오! 주스! 이내 관두고 껍질만 깎아낸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과도를 움직일 때마다 들렸다. 빨간 껍질을 벗겨내면 노르스름한 속살이 드러난다. 시간이 지나긴 했나보다 껍질에는 표가 나지 않는데 멍이 들고, 뭉개진 곳이 있다. 서둘러 먹어야 할 듯하다. 껍질을 다 벗기고, 조각조각 잘라서 접시에 담는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입안에서도 들린다. 시원함과 새콤하고 달달한 맛이 입안에서 즙과 함께 떠진다. 으~. 하면서도 맛있다.
접시를 비우고서는 껍질을 정리한다. 그러다 이렇게 맛있는데 왜 안 먹을까 생각했다. 아마도, 귀찮음이 맛있는 것을 이기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사과를 씻어야 하고, 껍질을 벗겨야 하고, 먹기 좋게 조각내야 하고, 다 먹고 나면 껍질을 비워야 하고, 담았던 접시와, 과도를 씻어야 한다. 막상 하면 금방인데 그 과정이 그렇게 귀찮을 수가 없다. 누가 대신해주면 잘 먹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귀찮음을 이겨야 좋은 걸 얻을 수 있는데 늘 그 귀찮음 앞에서 무너진다. 한 발짝만, 그 한 발짝만 넘어서면 될 일인데 말이다. 아닌가? 좀 많은 발걸음이 필요한가…. 그래서 사과를 잘 먹지 않는 건가. 아무튼 사과는 맛있었다. 그 귀찮음은 조금 미뤄두고, 오늘 하나를 먹었으니 내일도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조금은 귀찮은 것도 좋지 않을까. 조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