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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무드 Jul 24. 2023

유일무이

 

 내 세상은 완고했다. 뜨거운 피가 울컥 터지는 듯했던, 아프고 쓰라리다 끝내 아프지 않은 게 어떤 것인지 이미 잊어버려 더 완고했던 내 세상이 꿋꿋하게 내 두 눈을 모두 가리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그 다른 어떤 것도 사랑할 수 없었다. 한때는 틀림없는 사랑이라 믿었던 지난 관계와 내 마음은 ‘사랑’이라고 부르기에 너무 나약했다. 지나온 그것이 사랑이었다면, 그렇게 지나오지 말았어야 했다. 사랑이 아니었기에 그렇게 지나온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렇게 지나가고 싶지 않은, 그렇게 보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생겼다.


 나에게 가장 힘든 관계나 사람을 꼽으라면 고민할 필요도 없이 나 자신이다. 타인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알아봐 주지 못하는 것은 타인이니까. 그럴 수 있다. 그러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알아주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다. 나 조차도 나를 이해할 수 없고 알지 못하겠는 마음은 나를 자꾸만 초라하게 만든다. 이렇게 초라하게 작아질 거라면 너무 작아져서 더 많이 작아져서 아주 영영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런 나를 이해하려 부단히 애쓰는 사람, 그래서 결국은 나도 모르는 내 마음 속 비좁은 틈에서 핀 꽃까지 알아봐 주는 사람이다. 소리 없이 눈물만 쏟아내는 나에게 소리 내어 울어도 된다고 말하며 어김없이 콧물은 꼭 닦아주는 사람. 편하게 숨 쉬지 못할 때, 주먹을 꽉 쥐느라 손바닥에 손톱이 파이면 같이 심호흡 쉬어 보자며 들숨 날숨을 몇 번이고 외치는 사람. 유독 뒤척이고 잠 못 드는 밤에는 자장가를 불러달라면 자장가를 불러주고, 재밌는 얘기를 해달라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주는 사람. 그리고는 내가 토닥여주고 쓰다듬어주면 잠을 잘 잔다면서 쏟아지는 잠을 열심히 쫓아내며 토닥여주는 사람이다. 누구나 해줄 수 있지만 아무도 해주지 못한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는 사람.


 나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을 함부로 나눠 들려고 하지 않으면서도 유쾌함을 세 방울 정도 더한 다정함으로 짐을 가볍게 만들어 주는 그가 좋았다. 아니, 사랑하기 시작했나. 어디서부터 사랑이었는지 모르겠다. 우리 둘은 처음부터 너무 다른 사람들이라 서로에게 끌렸는데 그만큼 맞지 않는 부분들도 함께 감당했어야 했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 늘 아름다웠던 것은 아니다. 여느 연인들과 다름없이 살벌하게 싸우기도 했다. 어쩌면 ‘여느 연인들과 다름없이’라고 하기에는 더 많이 살벌했을 수도 있다.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공존한다는 말이 사실인 것은, 그렇게 살벌하게 싸우고 금방이라도 헤어질 것처럼 굴던 우리는 금세 서로에게 안겨 차근히 얘기하며 마음을 보살펴주면서 이 관계가 나에게 전에는 없던 것이라고 느껴졌다는 것이다. 이게 사랑이구나, 하는 그런 마음 말이다. 최악으로 흘러가는 상황에서 서로의 바닥을 드러냈지만 여전히 관계를 지키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는 것이 내가 하는 사랑이었다. 보통의 나는 애정이 있는 사람과 갈등을 피할 수 있을 때까지 피하다가 결국 갈등과 쌓아왔던 관계를 함께 부숴버리는 편을 택하는 사람이었다. 좋은 방법인지를 떠나 잘못된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 관계를 계속해서 이어가면서 갈등을 함께 풀어나갈 만큼의 감정의 크기에 도달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남보다는 조금 더 의미 있는 관계일 뿐 사랑이 아니었다.


 그리고 분명 쉽지 않은 길인 것을 이미 알지만, 내가 사랑하는 이 사람이라면 그래도 함께하고 싶다. 완고했던 나의 아픔 가득한 세상을 허물고 함께 새로운 세상을 쌓아가고 싶다. 그 세상이 완벽하게 따뜻하고 포근한 세상이 아니라고 해도, 아프고 쓰라린 상처에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이고 서로를 치유하며 세상을 살아내고 싶다. 이게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 사랑일까. 너무 이르지도 않고 늦지도 않게 나에게 유일무이한 사랑이 찾아왔다.


 일부러 더 못된 말을 하고 소리를 치며 싸우다가도 나를 더 걱정하는 마음을 털어놓고 마는, 그래서 투명하게 빛나는 그를 사랑한다. 큰 산인 자신을 내려놓고 나에게는 기꺼이 작은 언덕이 되어주는 그를 사랑한다. 나의 유일무이한 산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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