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도 같은 사람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경영학을 공부하며 사회로 나아갈 길을 모색했다.
그러나 곧 이 길이 내 삶과는 맞지 않음을 깨닫고 간호학에 도전했으나, 다시 방황이 찾아왔다.
영문학과로 발걸음을 옮겼지만 끝까지 이어가지 못했고, 결국 시니어 복지를 전공하며 비로소
‘사람을 돌보는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되었다. 졸업 후에는 교육학으로 나아가며 또 다른 가능성을 열기도 했다. 그러나 자유롭고 역마살 같은 기질은 여전히 내 안에 있었다. 결국 학업을 8개월 남기고 휴학을 결심했고, 일본 홍콩 동남아시아를 여행하며 세상을 두 눈으로 경험했다.
그 시간은 내 삶에 ‘해외에 대한 동경’을 더욱 깊게 새겨주었다.
결혼 후 첫 아이를 품에 안았고, 4년 뒤 둘째와 연년생 셋째가 태어났다. 그리고 ADHD 막내 덕분에 우리 가족은 캐나다로 건너오게 되었고, 지금은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나날을 살아가고 있다.
돌이켜보면 내가 태어나 가장 잘한 일은, 무엇보다도 남편 경준 관식이를 만나 결혼한 것이다.
결혼 당시 매번 아버지께서도 늘 말씀하셨다. “이서방 같은 사람은 없다. 네가 더 존중하라고.......”
나 역시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는 언제나 나를 존중하고 사랑하며, 내가 아프다고 하면 누구보다 세심하게 챙겨주는 아주 근면 성실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태어난다 해도 지금의 남편과 또다시 결혼하고 싶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아마 세상에 소박맞은 인생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결혼 이후의 나는 배우고자 하는 탐구를 멈추지 않았다. 장애인 성교육 지도자, 뇌과학, 심리학,코칭, 물상명리학,주식, 코인, 경매까지… 하고 싶은 공부는 무엇이든 열정적으로 탐구했다. 남편은 그런 나를 존중하며 든든히 뒷받침해 주었다. 도우미 이모, 베이비시터, 심지어 시어머니까지 동원해 가며 내가 배우고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었으니, 그때의 배움은 사실 그의 지원 위에서
가능했다. 그래서 현재의 내가 지혜로운 멋진 여자가 된 것이다.
우리 큰아이와 친구들은 늘 “이상형은 관식이 같은 다혜삼촌(제 남편) 같은 사람”이라고 자주 말하곤 한다. 그럼 옆에서 우리 딸이 "" 품절남이라 없을걸.." 하며 웃음을 자아낸다. 이모" 이모는 어떻게
저런 남자를 만났냐며, 심지어는 “남자 고르는 팁을 좀 달라”라고 농담처럼 말하기도 했다.
어느 날 아이들과 함께 우연히 드라마 " 폭삭 속았어요"라는 드라마 속 부부 캐릭터를 접했을 때,
아이들은 하나같이 “이모랑 삼촌 같다”며 깔깔 웃었다. 그때부터 우리 남편의 별명은 ‘런던 관식이’가 되었다. 아이들 친구들이 붙여준 이 애칭은 나에게 더없는 자랑이자 웃음의 씨앗이다.
아이들이 자라날수록 뿌듯함과 함께 아쉬움이 교차한다. 조금만 더 천천히 커주었으면, 이 시간을
오래 즐길 수 있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들 때가 많다. 그러다 문득, 나 역시 세월의 흐름 속에서 나이를 먹어간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시간이 화살처럼 흘러간다는 것이 야속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의 여정을 감사한다. 방황도, 탐구도, 도전도 모두 나의 일부였으며, 그 길 위에서 언제나 나를 지켜주고 함께 걸어준 남편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한다. 그리고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함께하는 현재의 삶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나의 행복을 현재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글을 쓰며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