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캐나다 홈스테이맘

홈맘

by Mampia

어쩌다 보니, 나는 또 하나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처음 홈스테이 엄마가 되어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나는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단순히 ‘숙식 제공’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명리학과 컬러 심리학 그리고 아로마 테라피까지 공부하며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쉽게

상처받고, 또 얼마나 천천히 회복되는지를 가까이에서

지켜봐 왔다.


그래서 더 잘 알고 있었다.

아이 한 명이 어떤 환경에서 지내는지,

누구의 말 한마디를 듣고 하루를 마무리하는지,

그 모든 것이 그 아이의 마음과 삶에 오래 남는다는 것을 말이다.

나에게도 아이들이 있었기에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쉽게 “네”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한 아이의 이야기가 내 마음을 깊이 울렸다.


홈스테이 가족이 여행을 가면서 같이 가고 싶다면 터무니없는 돈을 내야 했다는 이야기.

처음 한 달은 잘해주다가, 그 이후엔 완전히 무관심해졌다는 이야기.

화장실 휴지를 두 달에 한 번씩 번갈아 사 오라고 했다는 이야기.

부엌에서 개인적으로 뭐 하나 해 먹는 것조차 눈치가 보여 힘들었다는 이야기까지.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마음이 무너졌다.


‘절대 내 집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

그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저 아이가 만약 내 아이라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답은 너무도 분명했다.

나는 그 아이를 돈벌이 수단으로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따뜻하게, 안전하게, 그리고 진심으로 보듬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홈스테이 맘이라는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 캐나다에서 친해진 친구가 영주권을 준비하며 밴쿠버로 떠나게 되었고, 12학년이던 딸을 다른 집에 맡기고 갔다. 그때 나는 그저 잠시 돌봐주는 정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연이라는 건 참 이상하다.

1년이 지나자, 그 아이는 더 이상 ‘홈스테이 학생’이 아니라 우리 집의 큰딸이 되어 있었다.


13학년을 우리 집에서 보내며 미대 입시를 준비했다.

밤늦게까지 실기 준비를 하고, 포트폴리오를 펼쳐 놓고 고민하던 시간들.

나는 특별한 걸 해준 건 없었다.


그저 밥을 챙겨주고,

피곤해 보이면 따뜻한 차를 내주고,

“괜찮아, 잘하고 있어”라고 말해줬을 뿐이다.


그런데 그 아이는 쉐리던, OCAD, 에밀리카 미술대학 세 곳에서 모두 합격 통보를 받았다.

2025년 9월, 꿈꾸던 미대에 입학했다.


합격 소식을 듣던 날, 아이보다 내가 더 벅차올랐다.


아, 이 아이가 여기서 잘 버텨냈구나.

혼자가 아니어서 여기까지 왔구나.


그 순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보람이 밀려왔다.


반년쯤 지난 어느 날, 그 아이에게서 연락이 왔다.

파트타임 일을 시작했다며 리딩 위크에 우리 집에 내려오고 싶다고 했다.


“이모 집이 그리워요. 맛있는 것도 사드리고 싶어요.”


그 말 한마디에 마음이 조용히 따뜻해졌다.

이 아이에게 이곳은 아직도 ‘집’이구나 싶어서.


하지만 내가 홈스테이를 계속하게 된 계기는, 사실 또 다른 한 아이 때문이었다.


우연히 지인의 소개로, 마음에 깊은 상처를 안고 있는 아이 한 명이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낯선 환경에서 지내며 많이 지쳐 있었고, 누구에게도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하는 아이였다.

처음 집에 왔을 때는 말도 거의 하지 않았고, 눈을 마주치는 것도 힘들어했다.


나는 그 아이를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따뜻한 밥을 함께 먹고, 말을 걸어주고, 조용히 곁에 있어 주었다.


시간이 조금씩 흐르자, 아이는 아주 천천히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식탁에서 한 마디씩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고,

웃음이 생기고, 눈빛이 달라졌다.

그 모습을 보면서 처음으로 느꼈다.

아, 이 아이가 지금 회복하고 있구나.


그때부터였다.

이상하게도 우리 집에는 마음에 상처 하나쯤 안고 있는 아이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외로움을 오래 견딘 아이,

누군가에게 마음을 닫아버린 아이,

스스로를 믿지 못해 늘 불안해하던 아이.


그런 아이들이 이곳에 머무르다 보면, 조금씩 변한다.


처음엔 말수가 적고 방에만 머물던 아이가

어느 날은 먼저 다가와 이야기를 꺼내고,

조용히 눈물만 흘리던 아이가

어느 순간 환하게 웃는다.


그리고 그렇게, 서서히 자기 삶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단단해지고,

결국은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해 나간다.


나는 그 과정을 몇 번이나 지켜봤다.

그래서 더 확신하게 되었다.


이 집은 단순히 잠시 머무는 공간이 아니라,

누군가가 다시 자기 자신을 회복해 가는 시간의 공간이라는 것을.


우리 집 막내는 동생이 있는 게 소원인 아이다.

새로운 아이가 올 때마다 누구보다 먼저 다가가 말을 걸고, 작은 것 하나라도 챙겨 주려고 애쓴다.


어느 날은 이렇게 말했다.


“엄마, 동생이 있고 언니가 없는 아이가 우리 집에 왔으면 좋겠어.

그럼 내가 정말 잘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그 말을 듣는데 괜히 마음이 찡했다.

아이도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이 집이 누군가에게는 ‘잠깐 머무는 곳’이 아니라

‘마음이 쉬어가는 곳’이라는 걸.


아이를 키운다는 건 참 이상하다.

내 아이가 아닌데도 마음이 간다.

떠나보낼 때마다 마음 한쪽이 비어버린다.


하지만 그 아이들이 웃음을 되찾고,

다시 자기 삶으로 걸어 나가는 모습을 보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특별히 잘난 것도 없다.


하지만 작은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

아이 한 명의 인생에 따뜻한 발자국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아이도 잘 키우고,

남의 집 아이도 함께 잘 돌보며,

모두가 함께 잘 살아가는 세상.


아이들의 미래가 조금 더 밝아지는 세상을 꿈꾸면서.


혼자서는 버티기 힘든 시간도

누군가 곁에 있어 주면 견딜 수 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이곳이 낯선 땅에서 작은 ‘쉼’이 되어 줄 수 있도록,

다시 일어설 힘을 얻어 자기 삶으로 걸어갈 수 있도록,

나는 오늘도 이 자리에서 조용히 아이들을 기다린다.


다음에 우리 집에 오게 될 아이가

이곳에서 또 하나의 가족을 만나고,

다시 웃을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면서


by 맘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