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며 나는 종종 ‘성장’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 정의하게 된다.
특히 ADHD 성향을 가진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은 정답도, 매뉴얼도, 빠른 해결책도 없는 —
그러나 ADHD 아이는 폭이 좁은 아이가 아니라서 누구보다 빛나는 여정이다.
너무 넓게, 너무 강하게 느끼는 아이일 뿐이다. 그래서 세상은 종종 그 넓음을 “집중 부족”이라
말하고, 그 깊이를 “문제 행동”이라 말한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그 넓음과 깊음이야말로, 이 아이를 더 큰 세계로 이끄는 힘이라는 것을......
단단함은 틀어잡는 힘이 아닌 흔들림을 버티는 힘이다
ADHD 아이는 변동이 심하고 많이 흔들린다.
감정이 요동치고, 생각이 뛰어다니고, 눈앞의 자극에 쉽게 마음이 빼앗긴다.
예전의 나는 흔들림을 “잡아줘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흔들림을 억제하는 것이 단단함이 아니라,흔들릴 때 무너지지 않도록 지지하는 것이 단단함임을.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매뉴얼이 아니라 안전한 울타리, 통제가 아니라 추락하지 않을 신뢰,
지시가 아니라 함께 해보자는 동행이었다.
ADHD 아이는 자기를 미워할 때가 많다.
"왜 나는 다르지?"
"왜 나는 가만히 있는 게 힘들지?" 왜 집중이 어렵지?
그 순간, 내가 해줄 수 있는 가장 단단한 말은 이것이었다.
“너는 고장 난 아이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느끼는 아이야.”
ADHD 아이는 무엇 하나에 오래 머물지 못한다.
그러나 아이의 멈춤 없음은 ‘산만함’이 아니라 아직 완성되지 않은 가능성의 지도다.
이 아이들은 보통 아이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본다.
연결되지 않은 것들을 연결하고, 색깔을 다르게 해석하고, 상상력의 경계가 없다.
그 넓음을 억지로 좁히려 하면 아이의 세계는 갈라지지만, 그 넓음을 잘 펴 준다면
아이의 세계는 날개를 단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의 넓음은 문제가 아니라 재능이야.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누구보다 멀리 갈 수 있어.”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이 아이들은 돌아가면서 배운다.
그러나 돌아가는 길에서 더 많은 것을 본다. 더 많이 느끼고, 더 많이 경험하며,
그래서 한 번 이해하면 누구보다 깊게 이해한다.
나는 이제 아이에게 ‘잘하는 것’을 찾지 않는다.
대신 아이가 숨 쉬듯 자연스럽게 하는 것, 힘들어도 다시 하고 싶은 것,
누가 시키지 않아도 몰입하게 되는 것을 찾는다.
그것이 이 아이의 길이 된다. ADHD 아이는 ‘성적이 드라마틱하게 오르는 순간’보다
‘자기만의 흐름을 찾는 순간’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집 아이는 스피드 스케이트를 즐기며 타고있다
부모가 키우는 것이 아니다. 부모는 단지 꺼내 주는 사람이다.
ADHD 아이는 누군가의 기준에 맞추어 작아질 아이가 아니라 세상과 부딪치며 점점
자기 세계를 확장해 갈 아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이에게 말한다.
“단단해지려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 너의 넓음이 너를 단단하게 만들 거야.”
스케이트 대회를 참가해도 나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을 해준다 이 대회에서 1등을 목표로 하기보다
안전한 완주를 하는 것에 목표를 두는 것을 항상 이야기 한다. 아니도 그렇게 편한 마음을 갖고
1000미터 800미터 400미터 참여하고 전보다 기록이 빨라진 결과에 동기 부여를 받는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룹에서 1등을 모조리 휩쓸어 버리는 날도 있다. 그리고 나 역시 깨닫는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새로운 삶의 철학을 배워 가고 있다는 사실을.
이 깨달음들을 혼자 간직하고 싶지 않았다.
ADHD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모두 다른 고민을 가지고 있지만,
**“아이를 단단하게, 그리고 넓게 성장시키고 싶다”**는 마음만큼은 같다.
그래서 나는 경험을 나누고, 아이들의 강점을 발견하고, 부모들이 지치지 않도록 서로 지지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 마음으로 네이버 카페 사명 연구소 라 칭하고 싶다.
이곳은 아이의 문제를 고치는 공간이 아니라, 아이의 가능성을 깨우는 공간이다.
또한 부모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함께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따뜻한 연구소가
되기를 바란다.
ADHD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아니라,
세상을 더 넓게, 더 깊게 보는 법을 아이로부터 다시 배우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