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 아이와 함께 캐나다에 온 이야기

ADHD 아이와 다시 배운 사랑의 속도

by Mampia

By Maumpia Compass


나는 우리 집 막내아이 이야기를 하려 한다.

처음부터 조금은 남달랐다.

유치원 때부터 한 자리에 오래 앉아 있지 못했고, 수업 시간엔 책상 밑으로 들어가 놀곤 했다.

눈빛은 반짝였지만, 세상의 속도에 맞추지 못하는 아이였다.


원장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검사를 권유하셨다.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어렸고, 너무 여렸기에… 나는 그저 아이가 아이답게 자라길 바랐다.


그러던 어느 날,

의사는 우리에게 ‘거대 세포 종양’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겨우 다섯 살이었다.

그 순간, 세상이 조용히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그날 이후로 다짐했다.

“이 아이에게 공부로 상처 주지 않겠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집중은 여전히 쉽지 않았다.

선생님에게 자주 연락이 왔고, 나는 매번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가 조금 더 숨 쉬기 편한 곳이 있을까?’


그렇게 우리는 캐나다로 떠났다.

초등학교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캐나다의 학교는 달랐다.

선생님은 “이 아이가 어떤 방식으로 배우는지 함께 찾아보자”라고 말했다.

검사를 권유하면서도, “이건 아이를 위한 지원의 시작이에요.”라고 덧붙였다.

누구도 아이를 ‘문제’로 보지 않았다.

그들은 아이의 리듬에 맞춰 걸어가 주었다.


한국에서라면 ‘ADHD’라는 단어가 낙인처럼 느껴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이해’의 언어로 다가왔다.

일대일 교사, 감정 코칭, 개별화 학습(IEP).

아이에게 맞춘 배움의 속도가 있었다.


지금 우리 아이는 한국으로 치면 중학교 1학년.

아침마다 웃으며 친구랑 놀기 위해 학교에 간다.

나와 내 남편은 여전히 캐나다의 삶은 쉽지 않다.

하지만 아이의 웃음은 모든 걸 이긴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혹시 아이가 나에게

“엄마, 나를 믿어줘서 고마워.”

라고 말하는 것 같다고.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렇게 확신한다.

정말 잘 왔다.



Maumpia Compass

아이의 마음을 번역하는 엄마의 나침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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