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딸의 이야기
어느날은 정신이 아주 맑습니다. 오늘이 그런 날입니다. 하지만 또 그렇지 않은 날도 있어요. 언젠가부터 내 앞자리와 옆자리에 나란히 침대가 하나씩 놓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라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르지만 그런 티를 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가만히 앉아 막내가 보이기를 기다렸습니다.
머리를 하나로 가지런히 묶은 한 아줌마가 나에게로 와서 할머니, 이제 기저귀 갈게요. 라는데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내 이불을 들추고 거침없이 내 바지를 내리는 것이 아니겠어요. 나는 또 얼마나 놀랐던지 소리를 지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누구에게도 내가 당황한 모습을 절대 보이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수가 없었어요.
급하게 핸드폰을 찾아 덜덜 떨리는 손으로 막내의 전화번호를 눌렀습니다. 이제 막 잠에서 깬 듯한 막내는 엄마, 왜. 라고 했고 나는 큰일이 났다고 했어요. 태어나서 이런 일은 처음이었으니까요.
그리고는 나는 아마도 잠이 들었었나 봅니다. 막내가 가만가만 깨우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 한참동안 눈을 깜빡이다가 물었어요. 여기가 어데고?
나는 큰딸을 데리고 남편이 바람을 피는 현장을 잡으러 갔습니다. 왜 거기에 다 큰 딸을 데리고 갔냐고 사람들이 나를 나무랐을 때 나는 마음 속으로 중얼거렸더랬습니다. 자식 앞에서 창피를 주고 싶었어. 겉으로는 인텔리라는 소리를 듣는 아버지라는 사람이 실상은 어떤 모습인지 보여주고 싶었어. 자식한테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나면 다시는 엉뚱한 짓 하지 않을거라 생각했어.
문이 벌컥 열리고 뽀글뽀글 파마 머리를 한 여자가 대뜸 나에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줌마, 뭐예요. 뭔데 남의 집 문을 이렇게 두들기로 난리예요. 처음에는 나도 그럴 작정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 년이. 쥐구멍에라도 숨어야 마땅할 그 년이 오히려 나에게 소리를 지르는데 방안에서 내 쪽으로 고개 한 번 돌리지 않는 남편을 보니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랐습니다.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그 년의 머리칼을 쥐어 뜯었어요.
나는 지금 작은 요양원 침대에 누워 있습니다. 이제는 화장실도 혼자 갈 수 없을 정도가 되었고요. 기저귀가 없이는 살 수 없는 처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나는 아직 어떻게 이 모든 일을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기만 합니다. 아침이면 여전히 나는 일어나 머리를 빗고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려고 하지만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은 너무 낯설어요.
일주일에 한 번은 찾아오던 막내는 이제 한 달에 한 번 올까말까인 것 같아 원망이 쌓여가기도 하는데 엄마, 나 어제도 왔었잖아. 엄마 기억 안나? 라는 아이의 말에 또 한 번 가슴이 내려앉습니다. 내가 기억을 하지 못하는걸까, 아니면 막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걸까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습니다. 우리 엄마의 착한 딸이었던 나의 꿈은 좋은 엄마였습니다. 매번 회초리를 들고 꾸짖는 나의 엄마같은 엄마가 아니라 영화에서 보는 그런 엄마 말입니다. 거실에는 소파가 있고 아이들은 방에 앉아 책을 읽고 나는 음악을 들으며 빨래를 개거나 식사 준비를 하는 그런 엄마 말입니다.
그 년이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자 그제서야 남편은 방에서 슬슬 기어나왔어요. 그리고는 동네 시끄럽게 이게 뭐하는 짓이고. 하더니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당황스럽기는 나도 그 년도 마찬가지였을텝니다. 어쩌면 그 년이 더 당황스러웠겠지요. 무조건 자기 편을 들어줄거라 생각했는데 모른척 휙 나가 버리는 남자를 보고 얼마나 어처구니 없었을지, 그 순간만큼은 마치 내가 이기기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 때 큰 딸이 갑자기 아버지의 팔을 낚아챘습니다. 아버지. 이게 다 뭐라예. 아버지 이게 다 뭐하는 짓이라예. 그라고도 아버지가 공무원이라고요? 이라고 가면 엄마는 우짜고 저 여자는 우짜라고예. 아버지가 일을 이래 만들어놨으니 아버지가 책임져야 할 거 아니라예
큰 딸은 참 무던한 아이였습니다. 말도 별로 없었고 웃음도 별로 없었고 화도 잘 낼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반응을 보이다니요. 그 년의 머리칼을 잡은 손을 놓고 큰 딸에게로 가서 아버지를 잡은 손을 떼어놓으려 했지요. 그런데 그 때만큼은 얼마나 앙칼스럽던지. 저를 냅다 밀어붙이지 않았겠어요.
놔라 엄마도, 엄마가 나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을 때는 다 이유가 있을거 아니가. 이랄라고 나를 데리고 온 거 아니가. 그라믄 나도 내 할 일을 해야재. 아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보고 악다구니를 쓰는 큰 딸에게 갑자기 남편이 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고. 누가 아버지한테 이래 달라들라 카드노. 니는 이랄라고 다 큰 아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나.
그리고 남편이 나를 향해 손을 쳐드는 순간 큰 딸이 비명을 지르면서 내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섬찟 놀란 남편이 어쩔줄 몰라하는 모습과 어깨가 부들부들 떨리는 큰 딸의 뒷모습이 교차하면서 나는 멍하니 자리에 주저앉아 옴짝달싹도 하지 못했고 머리칼이 산발이 된 그 년은 냅다 문을 잠그고 들어가 버렸습니다.
와 때리는데요. 아버지가 뭔데 엄마를 때리는데요. 사람이 사람을 왜 때리는데요. 그것도 엄마를. 아버지가 뭔데요
당황한 남편은 일단 자리를 떠야겠다 싶었는지 급하게 뒤돌아섰고 누구보다 빠른 걸음으로 뛰다시피 걸어갔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가 아버지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어요. 아버지. 아버지 부르면서요
나는 아이를 잡으려고 했어요. 정말 잡으려고 했답니다. 나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거든요. 누구보다 좋은 엄마가 되는 것이 나의 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