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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콩 Jul 26. 2022

목적지를 향해 앞으로만 달리는 기차처럼 <인간짐승>

에밀 졸라 <인간 짐승> (문학동네, 2014) 이철의 옮김  

미들마치(1871)- 여자의 일생(1881) - 인간짐승(1890) 작품이 각 10여년 차이를 두고 발표되었는데 셋 다 느낌이 정말 다르네요. 조지앨리엇 작품에서는 심리소설을 맛보기로 보았다가 모파상 작품에서는 마치 현대소설을 읽는듯한 잔느의 심리가 탁월해서 극중 인물에 빠져드는 흡인력이 대단했다면 에밀졸라에 와서야 제대로 터트려진 느낌입니다.


파리 - 루앙 - 르아브르로 이어지는 파리 서쪽 철로를 주 무대삼아 기차역과 증기기관차, 거기에 근무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범죄가 가득한 소설입니다.  책을 펼치면 멈추었던 기차가 굉음을 내며 빠르게 도시를 지나가는 광경이 리얼하게 매번 펼쳐지는데... 마치 그런 속도로 책을 읽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어요. 그리고 소설속 인물 하나하나가 욕망에 너무나도 충실합니다. 정욕, 물욕, 탐욕, 명예욕이라는 기차에 거침없이 탑승하는 인물들의 욕망이 멀미날 속도로 저를 몰아붙입니다. 그런데 이게 과장한것 같지가 않고 너무 리얼해요. 마치 목적만 있고 속도가 중요한 기차와 역이라는 환경에서는 그럴수밖에 없다는 듯이... 내가 그상황이라면 그걸 거부할 수 있었을까 장담을 못할정도로요.


(p.72)객차 구르는 소리, 기관차 기적 소리, 전신 장치 소리, 신호기 타종 소리 등이 얽힌 와중에 군중, 또 군중, 끊임없는 군중!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몸뚱어리 같았다. 머리는 파리에 두고 등뼈는 선로 위에 죽 늘어뜨렸으며 다리와 팔들은 르아브르와 여타의 정거장이 있는 도시들에 둔 상태로 지선들을 따라 사지를 활짝 벌린 채 대지를 가로 질러 누워 있는 하나의 거인. 그것이 지나간다. 그것이 지나간다. 기계가, 의기양양하게, 수학적인 정밀성으로 무장하고서, 선로 양옆에 감춰져 있지만 항상 생생하게 꿈틀거리는 인간적인 것들은 불멸의 정념과 불멸의 범죄는 의도적으로 무시하고서, 미래를 향해 달려간다


(당시의 기차역 그림을 많이 남긴 클로드 모네의 작품)


 특히 기억에 남는 인물이 미자르라는 가난한 노동자인데 재혼한 부인이 목돈을 숨겨놓은 걸 알고 나서는 부인이 숨겨놓은 돈을 찾는데 제 하루를 바치지요. 그것만이 그에게 각성이고 움직이는 동기이자 의미가 됩니다. 20대때 생각나면서 남이야기 같지 않네요. 돈을 '꿈'이나 '진급'으로 바꾸어보아도 전혀 과하지 않아요.

(p.486) 그는 돈 찾을 궁리를 하느라 자기 두뇌에 단일 분의 휴식 시간도 줄 수 없었다. 그의 두뇌는 문제의 돈이 묻혔을 법한 곳을 찾느라 작동하고 또 작동했다. 가능성이 높은 장소들은 재차 확인하고 이미 뒤졌던 장소들은 하나하나 지워나갔으며, 새로운 장소가 떠오르면 즉시 후끈 흥분이 되고 조급증에 몸이 달아 만사를 제쳐두고 황급히 달려가지만 다시 한번 허탕 치는 일이 되풀이되었다. 시계의 초침 소리처럼 압박해오는 강박에 사로잡혀 본의 아니게 아둔한 머리를 굴려야해서 두뇌가 잠들지 못하고 늘 각성상태인 것은 그에게 가혹한 형벌, 응징의 고문이었다.


겉보기엔 의존적이고 평범한데 남편의 살인계획에 동조하고 계속해서 쾌락을 원하고 범죄를 부추기는 여성 세브린의 심리 또한 현대인의 자화상같아요.    


(p.490) "떠난다는 우리의 꿈, 저멀리 미국에 가서 부자가 되고 행복해지겠다는 그 희망, 온전히 자기한테 달려 있는 그 지극한 행복이 이젠 불가능해졌잖아, 자기가 하지 못했으니까……… 오! 자기를 탓 하는 게 아냐. 일이 벌어지지 않은 게 차라리 더 잘된 건지도 몰라. 하지만 자기한테 이 사실만큼은 알려주고 싶어, 자기와 함께 있으면 이제 기대할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 말이야. 내일도 어제와 같을 거야,늘 똑같은 권태, 늘 똑같은 고통......”


그런면에서 인간이 어떻게 욕망의 노예가 되는지 사람의 힘으로는 멈출 수 없는 증기기차의 발명이 당시에 어떤 느낌이었는지 너무 실감이 났어요. 이미 그런 거대한 기계들 사이에서 태어나 그것들 사이에서 별다른 감흥없이 욕망을 분출하며 사는 현대인들이 불안증과 공황에 빠지는지 이런 리얼리즘이 아니고서는 느낄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해설에 인상깊은 이런 말이 있어요.

(p.579) 이 시기에 범죄에 대한 작가와 독자 대중의 뜨거운 관심은 새로운 불안감, 다시 말해 부르주아 사회가 해결하지 못했고 실제로 해결할 수도 없는, 생물학적인 충동과 사회적인 제약 간의 모순에서 비롯된 불안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범죄에 대한 이전의 관심이 자연과 비이성적인 사회질서 사이의 모순에서 사회질서 쪽에 책임을 묻는 양상으로 표명되었다면, 이제 범죄는 자연과 이성을 표방하는 부르주아 사회질서 간의 모순에서 순치해야 할 자연과 수호해야 할 사회질서라는 관점에서 다루어진다.

..아 쉽게 말해주면 좋겠는데...그러니까 에밀졸라는...인간 이성에 기대지 말고 짐승같은 본성을 잘 길들이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고 어떤 사회질서를 지켜야하는지 함께 고민해보자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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