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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스피디아 Oct 01. 2023

<키르케>, 매들린 밀러 책리뷰

책 <키르케>를 읽고

이 책을 읽게 된 이유


유명한 북튜버 <겨울서점>이 활짝 웃으며 정말 너무 재미있다고 추천한 책이었다. 이토록 추천을 하니 나도 너무 궁금했었다.


그런데 워낙 인기도서라 도서관에서 도저히 빌릴 수가 없었다. 북튜버의 추천 이후 약 2년이 흘러 드디어 빌릴 수 있게 되어 본 책이다.


<키르케>에 대해서는 사실 할 말이 너무 많다. 목, 금, 토 3일 연속으로 그리고 자그마치 13~14시간이나 되는 긴 시간을 그것도 순수하게 뒷내용이 궁금해서 읽은, 그것도 500쪽이 넘는 소설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 정도로 재미있었고 흥미진진했고 좋았다. 지금부터 <키르케>를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부분을 몇몇 꼭지로 나눠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회귀물로 인기를 끌었던 유명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인상 깊은 부분들

왜 하필 신을 소재로 삼았을까?
나는 아이가 팔을 날개처럼 구부리고, 자기 동작과 사랑에 빠진 어리고 튼튼한 다리를 움직이며 춤을 추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인간들은 이런 식으로 명성을 쌓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력과 끈기를 통해, 태양 아래에서 빛날 때까지 정원을 가꾸듯 기술을 연마해가며.

하지만 신들은 이코르와 넥타르의 산물이라 탁월함이 이미 손끝에서 터져 나왔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을 파괴할 수 있는지를 입증하며 명성을 쌓았다. 도시를 무너뜨리고 전쟁을 일으키고 역병과 괴물을 낳고. 우리의 재단에서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그 모든 연기와 향기. 남는 건 재 가루뿐이었다.
<키르케>, 매들린 밀러, 176쪽


이 부분에 핵심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소설에서는 신의 선천적인 탁월함, 오만함과 영생이라는 특징이 그를 얼마나 추악하고 고여있고 폐쇄적이게 만드는지를 보여준다.


반면 인간은 타고날 때부터 탁월하지는 않지만, 그렇기에 겸손하며 노력할 줄 안다. 노력과 끈기를 통해 기술을 연마해 가며 명성을 쌓을 수 있다. 또한 인간이 죽는다는 것, 즉 유한하다는 것이 얼마나 인간의 삶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지 알려주기 위해 그렇지 않은 신을 소재로 삼은 듯하다.


요즘 우리는 선천적으로 탁월하고 완벽하기를 바란다. 회귀물이 유행한다거나, 사랑받고 자란 결핍 없는 부잣집 딸내미의 콘셉트를 좋아하는 것도 이러한 바람과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작가는 오히려 이렇게 처음부터 신처럼 너무 모든 걸 갖추고 있다면, 오만하고 의미 없는 삶을 살 가능성이 높다는 걸 이야기한다.


반면에 완벽하지 않고 탁월하지 않은 결핍 많은 인간은 그렇기에 노력을 통해 의미도, 명성도, 기술도 쌓아 나갈 수 있다. 그리고 유한하기에 삶이 허무하지 않고 가치 있어진다.


줄리오 로마노 <파시파에와 황소>
'남성주의적 세계에서 여성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 질문을 던지는 소설
“맞아,” 그녀(파시파에)가 말했다.
“너는 나랑 달라. 너는 아버지를 닮아서 어리석은 주제에 고고한 척하고 뭐든 이해가 안 되는 게 있으면 눈을 감아버리지. 대답해 봐, 내가 괴물과 독약을 만들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미노스는 왕비를 원하지 않아. 병 안에 갇혀서 죽을 때까지 헤벌쭉 헤벌쭉 새끼를 낳아대는 해파리라면 모를까. 나를 영원히 쇠사슬에 묶으면 속이 후련할 테고 자기 아버지한테 말만 하면 그럴 수 있어. 하지만 그러지 않지. 그전에 내가 자기한테 어떻게 할지 알거든.”
<키르케>, 매들린 밀러, 192쪽

지금보다도 훨씬 예전, 여성은 그저 아이를 낳고, 집안일을 하는 기계와 도구에 불과했던 고대 그리스 신화시대는 당연히 철저하게 남성주의적인 세계였다. 그리고 그러한 세계관 속에서 여성이 주체적으로 사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일찌감치 그걸 알아차린 파시파에는 자신이 괴물을 낳고, 남성들을 두려워하게 하는 <힘>과 잔인성을 숭배함으로써 주체적인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힘이 없는 나머지 여성들은 그저 남성의 비위를 맞추며 살아간다.


작가는 여기에서 질문을 던진다. '남성중심적인 세계에서 여성이 살아남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두 가지 길이 있다. 파시파에처럼 '남성과 똑같이 힘으로 굴복시키거나', 혹은 다른 님프들처럼 '남성에게 철저히 복종하고 맞추며 살아가거나' 양 극단으로.


키르케는 양극단 어디에도 답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후자는 선택하지 않는다. 다행히 키르케도 파시파에와 마찬가지로 남성을 굴복시킬 수 있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키르케가 <힘>을 쓰는 이유와 동기는 파시파에와는 완전히 다르다.


파시파에는 남성들을 자기 발아래 두고 공포에 떨게 만들기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고, 그들을 죽이는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일부러 낳는다. 반면 키르케는 결코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는데 자신의 힘을 남용하지 않는다. 자신과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 더 나아가 무고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그 힘을 사용한다. 그게 키르케를 오만하고 고압적인 다른 신들과 가장 다르게 하는 차이로, 그야말로 신보다 훨씬 더 고결한 자의 특성으로 만들어주는 듯하다.


그렇다면 작가의 질문에 대한 답은 무엇일까? 남성중심적인 세계관에서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힘>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힘을 도덕과 선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사용해야 한다. 이 정도로 볼 수 있을까?


사실은 이 답이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그럼에도 키르케의 삶이 양극단이 아닌 제3의 길을 보여주려는 하나의 시도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어머니로서의 키르케
아이의 숨소리가 길게 늘어지고 팔다리에서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너는 왜 좀 더 평온해지지 못하니?” 나는 속삭였다.
"왜 이렇게 힘들어야 하니?”
대답하듯 아버지의 신전이 내 눈앞에 떠올랐다.
(중략)
나는 꼼짝 않고 조용히 누워 있었지만 내 안에서 떠날 줄 몰랐던 탐욕스러운 허기가 기억났다. 아버지의 무릎 위로 기어가고 싶었고, 일어나서 달리며 소리를 지르고 싶었고, 체커판 위의 말을 집어서 벽으로 던지고 싶었다.
(중략)
이 아이는 평온해져야 할 이유가 없었다. 나도 그런 적 없었고, 내가 아는 이 아이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키르케>, 매들린 밀러, 332쪽

굉장히 흥미롭게 본 부분이다. 특히 키르케가 어린 아들 텔레고노스를 고군분투하며 기르는 장면은, 자신이 어릴 적 그랬던 것처럼 불안한 성정이 나오게 되어 쩔쩔매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결국 그 자신이 부모를 가장 힘들게 했던 부분이 그 자식에게 대갚음받는 것 같아서. 나도 어릴 적 약간의 반항들로 부모님을 힘들게 했는데 내가 태어나게 할 아이도 그리 되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ㅎㅎㅎ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에요.” 아이가 말했다. “제가 어머니처럼 마법에 소질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죠.”
아버지가 생각났다. 그 옛날에 신전의 벽난로에 든 장작을 태워서 잿더미로 만들며 아버지가 말했다. 이게 나의 가장 간단한 능력이다.
“너는 마법에 소질이 없을 가능성이 크지.” 내가 말했다.
“하지만 다른 데 소질이 있을 거야. 네가 아직 찾지 못했을 뿐. 그래서 네가 떠나는 것이기도 하지.”
아이의 미소를 보고 나는 여름 풀밭처럼 따뜻했던 아리아드네의 미소를 떠올렸다.
“맞아요.” 아이가 말했다.
<키르케>, 매들린 밀러, 355쪽

또 하나 흥미로웠던 건 결국 내가 배운 대로 내 아이에게 가르치게 된다는 거였다. 키르케는 어린 시절 부모에게서 소외되었고, 무시받았고,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수치심, 좌절감, 속상함을 느꼈다. 그렇지만 그런 감정을 알기에 아들 텔레고노스가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때, 그녀의 아버지 헬리오스와 달리 따뜻하고 자상하게 그를 격려할 수 있었다.


내가 어디서 들은 말 중에 <자식을 키우는 건 인생을 다시 사는 기분이다.>는 말이 있다. 결국 내가 이번 생에 이별하고 실패하고 좌절하고, 또 내가 배운 것들 써먹어 돈으로 바꿀 수 없을지라도, 내가 태어날 자식에게 가르쳐줄 수 있기에 그 경험들이 의미 있어질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우리 엄마에게서 힘들 때마다 가장 현명한 말로 격려를 받았던 것처럼, 나 역시 내 아이에게 그런 격려를 해줄 수 있겠지?

워터하우스 (오디세우스와 세이렌)
오디세우스에 대한 재해석
“아버지 입장에서 끔찍했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는 뜻이죠.
애초에 부하들이 그 동굴로 가게 된 이유가 뭐였습니까? 아버지가 더 많은 보물에 욕심을 냈기 때문이죠. 그리고 모두가 불쌍히 여길 만큼 포세이돈의 노여움을 사게 된 것도 다 자초한 일이었잖습니까. 키클롭스에게 생색을 내지 않고 떠날 재간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중략)
“그 오랜 세월 동안 고생하며 방랑한 건. 왜였을까요? 한순간의 자부심이죠. 아버지는 아무도 아닌 존재로 지내느니 신들에게 저주받는 쪽을 택했을 겁니다.”
(중략)
“아버지는 저희와 집이 그리웠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지만 거짓말이었어요. 이타케에 돌아온 뒤로는 만족을 모르고 항상 수평선만 바라보셨으니 말이죠. 일단 우리를 손에 넣고 나니까 다른 걸 갖고 싶으셨던 거예요.”
<키르케>, 매들린 밀러, 416쪽

영웅 오디세우스를 비틀어 보는 시각도 매우 인상 깊었다. 나는 학원 강사였을 때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책을 통해 오디세우스를 가르친 적이 있다. 그때 내가 본 많은 참고문헌에서 오디세우스를 호기심이 많고 지략이 뛰어나며, 불굴의 의지로 아내가 있는 이타카로 돌아가려 했던 사람으로 해석했다. 또 멋지게 귀환하여 구혼자를 물리치고 아내와 아들을 지켜내어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한 평범하지만 비범했던 우리의 영웅 오디세우스로.


그러나 <키르케>에서는 이를 비튼다. 이 책에서는 오디세우스의 호전성과 명예욕이 그가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을 지루하고 따분하게 만든다. 급기야 오디세우스는 원하는 걸 얻자마자 바다만을 바라보며 언제든 기회만 닿으면 훌쩍 떠나고자 한다.


물론 오디세우스가 실제로 신화 속에서도 이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리스에서 우상처럼 받들어진 호전성과 명예 드높이기, 이름 떨치기가 과연 우상처럼 받들어져야 할 가치가 맞는지 의심을 던진다는 점에서 상당히 참신하고 기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작은 역시 엔딩이 남다르다.
하늘에서 별자리가 어둑어둑해지고 자리를 바꾼다. 바닷속으로 추락하기 직전의 마지막 햇살처럼 신의 광휘가 내 안에서 빛을 발한다. 예전에는 신이 죽음의 반대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 무엇보다 죽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바뀌지도 않고, 손에 쥘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나는 평생 전진한 끝에 지금 이 자리에 왔다. 인간의 목소리를 가졌으니 그 나머지까지 가져보자. 나는 찰랑거리는 사발을 입술에 대고 마신다.
<키르케>, 매들린 밀러, 500쪽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명작은 엔딩이 남다르다는 것이다. 재미있게 본 드라마 <나의 아저씨>, 고전이라 알려진 <달과 6펜스>, 그리고 이번에 읽은 <키르케>도 엔딩까지 흥미진진하고 참신했고 여운을 남겼다.


결국 영생이 지긋지긋하고 평생 고독하게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야 했던 키르케는 자신을 한없이 사랑해 주는 남편 텔레마코스와 유한한 삶을 살기 위해 스스로 인간이 되기를 자처한다.


그 대서사시의 엔딩이 '고작 인간이 되는 거라고?'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책에서는 방대한 양으로 영생과 고독 속에서 살아가는 그의 삶이 얼마나 고통이었는지, 그가 속한 신이라는 지위가 얼마나 그에게 추하게 느껴졌는지 설득력 있게 보여줌으로써 이 선택을 납득가능하게 한다.


아름다운 문장과 복선을 회수하는 플롯

<키르케>는 무엇보다 좋은 문장이 가득하다. 울림과 깨달음을 주는 문장, 인간이 아닌 신의 세계라는 장엄함과 경이를 생생하고 실감 나게 묘사했다. 그리고 프로메테우스의 등장과 수수께끼 같은 대화, 왜 글라우코스와 스킬라가 등장했는지, 왜 그녀의 마지막 할 일이 스킬라를 죽이는 일인지 촘촘하게 플롯을 짜 두어서 모든 복선을 회수한다. 뭐랄까, 그 긴 페이지가 장수를 채우기 위함이 아니라 정말로 필요한 부분만 담겨 있었다.


진짜 빼곡한 플래그들ㄷㄷ

마치며


사실은 내가 이런 소설을 처음 읽어서 이토록 행복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너무 멋진 독서 경험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빠져들었고, 좋은 문장이 너무 많아 책에 빼곡하게 플래그를 붙여두었으며, 여성주의적인 메시지, 부모로서의 마음, 유한함과 무한함, 탁월함과 그렇지 않음 등 다양한 부분에 대해 질문하고 고민하게 해 주었다.


묘사력, 통찰력, 서사력 모두 뛰어나서 감명받았고 책의 모든 문장을 깊이 새기고 싶었던 책이었다.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강력 추천한다.

별점: ★★★★★(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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