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코 써야 할지 아니면 침묵하고 참아낼지 내내 고민했다. 무척 주관적인 경험, 그래서 더 가깝고 아프게 다가오는 현실들에 대해 더는 소리 내지 않을 수 없어 이렇게라도 쓰기로했다. 소리내어 참던 울음이 언젠가 기어코 터지듯이. 팬데믹 상황에서 일개 간호사가 듣고, 목격하고, 또 맞서온 현실. 어쩌면 사실 많은 사람들이 속으로 어느 정도 체감하지만 정작 제대로 쳐다보기 버거웠을지도 모르는 그런 것들에 대해. 또 그것들을 밖과 안의 시선에서 곱씹어 뱉어낸 이야기들.
* 스크롤을 내려 읽다가 문득 슬퍼지거나, 쉽게 씁쓸해질 수 있으므로 읽으심에 다소 주의를 요합니다. 아참, 그리고 당장 간호사들의 처우를 개선해야한다, 의료체계의 어떤 부분을 개선해야 한다고 개인적인 짧은 의견을 내기보다 판단과 결론을 내는 과정은 전적으로 읽는 당신에게 맡기기로 했습니다.
2. 바깥의 이야기
병원의 주차장. 부쩍 제자리에 시동이 켜져 있는 차들이 많아졌다. 아침부터 밤, 새벽부터 낮. 생각이 기민하지 못한 나는 그저 날씨가 추워져서 그럴까. 잠시 생각하고 말았다가 최근에야 응급실 간호기록을 보고야 이유를 알수 있었다. 적지 않은 환자들의 기록에는 '응급실, (혹은 음압격리실) 병상 부족으로 자차에서 대기 중'이라고 쓰여있었다. 아픈 사람들이 자리가 없는 병원에 어떻게든 발이라도 걸쳐놓고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발이라도 걸칠 수 있다면 다행일까. 구급대원인 친구 A의 얘기를 들었다. 최근에는 사무실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출근하자마자 갑갑한 보호장비를 입은 뒤 곧바로 앰뷸런스를 타고, 몇 초도 쉬지 못하고 환자들을 치료하고, 이송하고 차를 전부 소독하고를 반복하다가 스러지듯 퇴근한다고 했다.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아프거나, 백신의 부작용으로 고통받고 있으므로 그들은 쉴 새 없이 일한다. (특히나 저소득층이나 독거노인분들 같이, 셀프케어가 안 되는 분들, 경제적으로 힘든 분들이 돌아가시는 일들이 부쩍 많이 늘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다 며칠 전, 환자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출동을 했는데 도착해보니 할아버지는 정기적으로 투석이 필요한 만성신부전 환자였다. 당장 이송할 병원도 없는데, 투석까지 행할 수 있는 병원이나 치료소가 하나도 없다고 했다. 출동은 밀려있었고, 방법은 없었다. 할아버지에게 투석을 참으셔야 된다고, 가능한 물 드시지 마시고 짠 것 드시지 마시라는 말을 하고 뒤돌아 설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친구 A는 똑똑한 간호사였어서 이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였다. 할아버지는 그 친구의 팔을 잡고 '살려달라'라고 빌며 울었단다. 친구는 죄송하다고 말하며 다음 출동을 향해 나섰다. 할아버지의 눈물이 옮은 것처럼 아주 오랫동안 슬픔이 가시질 않더라고 했다. 이 상황이 아니었더라면 죽지 않아도 될 사람들, 억지로 투석을 참으며 버티지 않아도 될 사람들, 그럼에도 병원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사람들, 또 지금도 외로이 스러져가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화가 나고 속이 시려 어쩔 수가 없다. 그럼에도 누구도 원망할 수 없는 이 상황이 지독하리만치 아득하다.
보건소에서 일하는 친구 B는 백신 부작용 관련 응대를 하고 있다고 했다. 부작용 신고 전화를 받으면 어떻게 되는거냐고 물었더니 민망해하는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하루에도 쉬지도 못하고 전화를 받거든요. 크고 작은 부작용들에 관한 민원이 끝도 없이 와요. 전화를 받으면 항상 사람들이 소리를 질러요. '왜 이렇게 연결이 안 되냐.'라고. 그런데 정작 그렇게 힘들게 연결이 돼도 저희는 그냥 질병관리본부에 전화하라고 하는 게 다예요. 욕받이죠 그냥. 근데 제일 황당한 건, 다시 그렇게 긴 대기를 이겨내고 질본에 연결되도 걔네도 똑같이 가까운 지역 보건소로 전화를 하라고 한대요. 프로토콜 같은 거 없어요. 그러니까 결국, 그냥 뺑뺑이 돌리는 거에요.."
생각지도 못한 충격적인 대답에,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그 짧은 통화는 결국 '부작용이든 코로나든, 일단 병원에 가야 된다.'는 결론에 다다른 채 끝이 났다. 나는 통화를 끊고 병원 주차장에 켜져 있는 차들에 대해 생각했다. 나라에서도 더는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아픈 몸이 스스로 병원의 문턱을 넘기에도 힘든 작금의 상황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3. 안쪽의 이야기
내가 몸담고 있는 중환자실은 내 기억이 맞다면 팬데믹 시점 이래로 한 번도 병상가동률이 90% 미만으로 떨어진 적이 없다. 잠시라도 자리가 비면, 금세 침대는 다른 환자로 교체된다. 어느 때보다 일손이 간절한 시국. 그럼에도 퇴사율은 여느 때보다 높다. 높은 수준이 아니라 이례적으로 치솟았다. 왜냐면-
무 오랫동안 소진된 상황에서 업무가 산더미처럼 쌓인다. 중환자실 업무뿐 아니라, 코로나 중환자 지원근무와 선별진료소 지원업무, 격리 프로토콜, 이제는 일상처럼 흔해진 동료들의 자가격리나 확진. 모든 것들이 버텨내야 하는 일이 된다. 최전선에 남아있는 간호사들은 이미 오래전에 지쳤다.
거기다 '이렇게 일하느니 돈이라도 벌겠다.'는 여러 동료들은 소위 말하는 '코로나 코인'을 뛰러 과감히 퇴사했다. 자원해서 코로나 전담병원에서 근무를 하면, 일당으로 약 30만 원 내외를 받는다고 했다. 월급으로 치면 700~800만 원 선인 셈이니, 지금처럼 병원에서 일하는 보통 간호사들 연봉의 두배는 거뜬히 넘으니까. 물론 그들을 비난하려고 쓴 글은 절대 아니다. 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자원해서 확진환자를 보는 사람들이므로 그만한 대우를 받을 가치가 있겠지. 다만 그래서 퇴사한 사람들의 업무는 오롯이 남은 사람들의 근무가 된다. 빈자리는 신입간호사들로 채워진다. 아마 팬데믹 이후 여러 병원의 간호 퀄리티는 불가피하게 퇴보했을 거라 감히 짐작해본다. 결국 이 손해는 간호계나 병원의 것이 아닌 오롯이 환자들의 몫임에 다름없다.
4. 개인적인 이야기
엊그제, 엄마와 외할머니가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렇게나 병원의 깊숙한 곳에서 일하면서도 정작 그 엄마가 확진을 받았다는 전화를 받고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당장 어디서 지내야 할지, 치료는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남의 일이 아니구나, 체감한 순간을 요새 더욱 자주 겪는다. 그러니까 - 위험은 바로 코앞에 있다. 더는 멀리 누구 친구의 친구, 친척이 아닌 바로 나나 우리 부모님의 앞까지 와있다. 그저 붕괴된 현실 속, 잔해들로 깜깜한 이 위태로운 터널을 당신과 당신의 가족만큼은 안전하게 걸어 나올 수 있기를 진심으로,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