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영화 리뷰 - 더 디그 <The Dig>
나는 문과 동생은 이과생이었다. 가끔, 내가 이과 동생이 문과를 갔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비록 수학이 두려워 이과를 선택하지 않았지만 난 지구과학을 꽤나 좋아했다. 내신 성적에 거의 반영되지 않는 과목이었지만 꼼꼼히 필기하며 열심히 들었다. 교과 내용이 선명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지구과학 노트의 표지와 교과 선생님 얼굴은 잊히지가 않는다. 아직도 유성우가 서울 하늘 어디 즈음을 지난다거나 월식이 관찰된다는 뉴스를 들을 때, 그리고 해변의 특색 있는 모랫 빚을 볼 때 지구과학 시간이 생각나곤 한다. 선생님이 보는 내 눈은 내가 기억하는 것만큼이나 반짝였을까.
넷플릭스에 신작이 떴길래 예고편을 보다 '고고학'이라는 주제에 홀려 본편을 클릭했다. 뭔가 엄청난 게 묻혀있다는 느낌을 가진 부자 고고학자 이디스 프리티가 땅을 샀고, 그 땅에 묻힌 것들을 자신이 고용한 사람들과 발굴해가는 과정이 담겨있었다. 실화에 기반을 둔 스토리 전개상 예상치 못한 스펙터클이 숨어 있다거나 갑작스러운 악인의 등장 같은 것은 없었다. 다만 이 지방의 흙 한 줌만 쥐어도 어디 부근에서 나온 흙인지 알 수 있다는 재야의 발굴 전문가 바질 브라운이 '죽음'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우리의 삶은 유한하고, 결국 발굴된 유물들처럼 언젠간 부패하고 묻혀버릴 것이라는 이디스의 말에 브라운 씨는 답한다. 인간이 동굴에서 삶을 시작했을 때부터 우리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무언가의 일부였다고. 과거와 현재 미래는 그렇게 연결되어 계속될 거라고. 내가 죽으면 무슨 소용이냐는 생각이 치고 들어오지만 이상하게도 안심이 되는 문장이었다.
그리고 포르투갈의 남쪽 해변을 여행하던 날이 떠올랐다. 이제껏 본 적 없는 모래색과 바위들이 가득한 해변이었다. 그날도 난 홀린 듯 겹겹이 쌓인 바위틈 사이를 한참 보았다. 신기한 바위들을 보면 나는 그 바위에 새겨진 그런 시간들에 눈이 머문다. 지금 내가 밟고 있는 땅도 언젠가는 조개껍질이 가득하던 바다 속이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비단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못하는 상상이라 해도 축적된 시간을 한 장면으로 내 눈에 담고 있다 생각하면 그 세월 앞에 경외심이 솟아오른다. 몇 차원의 현재를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조금 과장하자면 <모아나>에서 영혼이 된 선대 부족민들이 항해하는 모아나 곁에서 함께 나아가는 장면이 생각나기도 한다. 무튼 뭔가가 있긴 있다.
바질 브라운 씨의 말대로라면 이 바위에 새겨진 과거와 내가 만지고 느끼고 있는 현재 그리고 앞으로 내가 없는 세상에서 이어질 미래는 어쩌면 연결되어 있는 것 아닐까. 복잡할 거 뭐 있어. '그럼 그런 거라 믿지 뭐'라고 생각하니 그새 또 마음이 편해진다.
THE DIG starring Carey Mulligan and Ralph Fiennes | Official Trailer | Netflix - 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