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동 공격은 잔해를 남기지 않는 정신적 칼부림이다.
내현적 나르시시즘에 대해 분석하면서 수동 공격적 성향에 굉장히 민감해졌다. 그렇다고 필자가 수동공격적 성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건 아니다. 필자 또한 내면에 굉장히 비겁한 수동 공격적 성향이 있고, 이 성향으로 은근히 복수하려는 성향 또한 내재되어 있다. 힘들지만 내현적 나르시시즘의 저승사자를 자처하는 만큼 나라는 인간에게도 발현될 못난 자아를 다독이며 동시에 주시하고 있다.
수동공격은 인간의 생존 문화로 은근하게 자리매김했다. 사회적 역할, 시선과 평가, 외적 가면과 신념이 생존에 유리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때문에 의도를 숨기고 공격해야 사회로부터 버림받지 않음을 터득한 것이다. 현재 사회는 과거와 달리 공격적 언행과 행동이 사회에 살아남기에 불리하다. 공격적 태도는 인간성이 결여된 미숙한 사람으로 평가되어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선입견이 생긴다. 이는 사회적 평판이 깎이고 활동 영역이 좁혀짐을 암묵적으로 알고 있다.
과거에 칼과 화살, 창과 방패를 들고 전장에 나가 개인이 직접 죽였다. 현재는 탄도 미사일이 하늘을 가로질러 모든 것을 단숨에 파괴한다. 전장에서 쓰는 무기가 더욱 고도화된 만큼 인간의 정신도 더욱 정교한 방식으로 진화했다. 시대가 변하고 함축한 몇 문장을 트위터에 올리기만 하면 의심의 씨앗을 심고, 군중들을 유추하게 만들고 루머를 양산해 인격 말살을 할 만큼 위험한 세상이 되었다. 말 한마디로도 누군가를 죽이고 군중을 간접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은 정신적 침략이 더욱 정교해진 것이다. 이는 교묘하게 서로를 좀먹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이러한 방식은 미시적으로 볼 땐, 단순히 인간 사이에 일어나는 사소한 갈등 정도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넘어갈 문제는 아니다. 수동공격은 ‘의도하지 않았다’라고 하면 그만이다. 그래서 심리적 공격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정신이상자'가 되어 정신과 약을 복용하거나 강제 입원 상황이 발생한다. 내현적 나르시시즘을 낱낱이 해부하고 싶은 원인이 이점이다. 이들은 자신의 문제를 외부로 돌려 가스라이팅하고 가까운 이들을 의존하게 만들어 하나의 개체로 인정하지 않고, 나무에 얽힌 잡초처럼 뿌리를 썩혀버린다. 뿌리가 썩어버린 나무가 잡초를 뜯어내려면 외부의 도움이 절실하다.
수동공격은 발현 방식
<< 수동공격에 대한 데이터가 많이 없습니다.>>
- 삐져서 아무 말하지 않기, 친절하게 굴지만 은근하게 불쾌한 기분을 내뿜기(상대를 피 말리는 방식)
- 업무적으로 나쁜 평가를 받으면 업무를 지연시키고, 일부러 실수 남발하기.
- 한숨 푹푹 쉬기, 트집 잡기(메인 분노는 따로 있지만 표현 못하고 다른 원인으로 트집 잡기)
- 지적하면 인정하기보단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서 죄책감 주기(가스라이팅, 정서적 인질)
- 비꼬기('그렇게 하다가 날 새겠다.', '그래 내가 다~ 잘못했다.', '내가 제일 나쁜 사람이야~', '이렇게 알려준 내 병신인 듯') -> (수동공격이라기엔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지만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지양해야 한다.)
- 우회적으로 비난하기(타인과 비교해서 열등한 사실을 부각하기, 상대 탓이라고 말하지 않고 자신의 현재 상황을 비관(일명 징징거리기), '세대 비난, 종교적/정치적 비난(특정 종교/정당을 지지하는 사람 앞에서 그 전체를 비난하기)
- 말 끊기, 말 무시하기, 이간질, 험담, 대화에서 배제시키기
고도로 교묘한 수동공격은 티 나지 않는다.
이상하게 기분이 나쁜데, 상대하기에는 애매하다.
이 징조는 늘 명심해야 한다. 어떤 대상과 대화하고 나면 항상 기분이 찝찝하고 에너지가 고갈된 느낌이다. 처음에는 구체적인 감정 설명이 불가능하다. 좋은 사람인 것 같은데 괜히 만나기 전부터 피곤하다. 이런 느낌이 든다면 멀리하는 게 좋다. 수동공격이 너무 은밀하면 당한 사람들은 안갯속에서 길을 잃어버리고는 자신의 존재에서 문제를 찾는다.
필자는 개인 유튜브 채널이 있다. 사람들의 반응, 평가와 상관없이 1일 2 그림 업로드를 목표로 하고 있다.(취미 확장을 위해) 그러던 중, 어제 어떤 댓글이 달렸다. ‘그림 배우시면 잘하실 것 같아요’라는 따뜻한 격려의 댓글이었는데, 시간이 지나 댓글의 대댓글이 달렸다.
대댓글의 내용은 ‘착하시네’ 딱 4글자였다. 댓글을 보자마자 불쾌감이 몸을 사악 휘감았다. 악플도 아니고 날카로운 지적도 아니지만 비난받은 느낌이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았다는 기쁨도 잠시 내 그림이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첫 댓글 작성자가 마치 '형편없는 그림에 칭찬하는 착한 사람'이 된 듯했다. 댓글을 달아서 기분을 다운시키고, 내 루틴 계획을 망칠 생각은 아니었겠지만 이들은 암묵적으로 타인의 가능성과 노력, 성취를 깔아뭉개고자 하는 내적 열망이 있다. 일반적으로 삶이 행복한 사람들은 타인의 삶 또한 존중하며 격려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은 자신의 무능력, 행동력 상실에 기인한 불만을 은근하게 표현해 우회해서 사람의 성질을 건드린다.
우회해서 비꼬는 수동 공격이, 안 그래도 내현적 나르시시즘을 분석하고 있는 나를 들끓게 만들었다. 대댓글 작성자에게 감사한 점은 최근 수동공격 패턴에 대한 데이터가 부족했는데, 마침 먹잇감이 제 발로 들어와서 너무 감사했다.
이런 비겁한 인간들의 열등함이 내게 비수가 되어 상처가 되지 않을 단단함을 가지고 싶다.
사진: Unsplash의 Maxim Hop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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