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현적 나르시시스트는 취약형 나르시시스트라고도 하고 겉으로 보기엔 조용하고 소심해 보인다. 그러나 내면에는 강한 자기 중심성과 인정 욕구를 가진 성향을 말한다.
순결함과 고결함
이들의 특징은 순결함과 고결함을 중시한다. 늘 타인을 배려하고 친절한 이미지를 이용해 자신을 정의한다. 또는 자신이 가진 융통성 없는 가치를 고수하는 것도 인격과 품격을 유지하기 위함이라고 착각한다. 그들은 또한 타인이 이해하지 못할 복잡한 문제에 휩싸여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외부에서 객관적인 피드백을 제시하면 지레 겁먹고 방어기제를 발동한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완벽하고 선한 이미지가 무능하고 답답한 인간으로 만들어질까 두려워서이다. 특히 누군가가 지적을 하거나 행동에 대해 문제를 삼으면 아래와 같이 반응한다.
‘아니 내 상황이 이런 건데, 함부로 말하네!’
‘내 감정은 뒷전이야?‘
‘감히 내 순수하고 친절한 감성에 이성적인 잣대를 들이밀어?’
그러나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들은 자신들이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그들은 진실로 자기 자신이 고결한 인간 그 자체로 믿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에게 객관적 피드백을 한 사람은 가해자로 만들고, 자신은 정서적 공격을 받은 피해자가 된다.
그들이 추구하는 순결함과 고결함 속에는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고 친절하며 관대한 존재이자 남들은 이해 못 할 대단한 존재’라는 두꺼운 비대한 자아의 이상향이 숨어있다. 이런 사람이 주변에 있다 보면 이상하게 죄책감이 느껴지면서 설명할 수 없는 불쾌감이 있다. 그건 아마도 그들 안에 내재된 크나큰 가짜 자아가 친절한 모습을 앞세우지만 뒤에선 오만하게 우뚝 서 있기 때문이다. 겉은 겸손한 듯하지만 내부에는 자신이 더 우월하다는 하늘을 찌르는 건방을 은근히 풍긴다. 겸손한 듯 하지만 오만함의 흔적이 스리슬쩍 드러나서 결국 그 사람 주변에는 아무도 없게 된다. 언젠가는 가짜 자아에 가려져있던 건방진 자아가 실체였다는 것을 사람들이 깨닫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과 말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기괴하게도 자신의 생각을 투명하게 드러내선 안된다고 여긴다. 그들은 투명한 진실보단 모호하게 우회해서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회해서 표현하는 데에는 3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어린 시절 의견을 피력했을 때 받아들여진 적이 없었던 경우.
둘째, 자신이 숨겨왔던 무지, 무능함이 고스란히 드러날까 봐 두려운 경우.
셋째, 타인의 의견만 듣고 늘 타인을 먼저 생각한다는 친절한 가면 유지하기 위해서.
이들은 내재된 수치심은 어마어마하다. 특히 거절당하는 수치심과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수치심이 크다. 그래서 본인의 생각을 똑바로 드러내기보다 타인의 의견을 전적으로 들어주는 수동적 면모를 보여야만 사람이나 그룹으로부터 받아들여진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과 가치관, 행동 모든 게 다 옳지만 굳이 맞다고 표현하지 않겠어.‘
‘모든 생각과 주장을 따박따박 내세우는 피곤하고 감정적인 인간하고 나는 다르니까‘
‘저렇게 자기 얘기만 하는 애들은 이기적이야. 나는 쟤들과 태생적으로 달라.’
‘내 의견은 굳이 말하지 않겠어. 너희 생각을 전적으로 존중해 왜냐하면 친절하고 관대하니까.‘
‘나 착하지? 조용하고 예의 바르고 친절한 나를 찬양해 줘!’
‘내가 그동안 배려하고 친절했지? 그러니까 보답해, 나를 생각하고 위로해 줘, 그리고 가여워해 줘’
말로 구체화해 보았지만 이들은 이런 생각에 근접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고 믿을 것이다.
비판을 들었을 때
그들은 자신의 모호한 행동이 타인에게 정신적 피로감을 느끼게 하고 사회에 암적인 행동을 한다고 객관화하지 않는다. 아니, 할 수 없다고 하는 게 맞다. 친절함과 모호함이 회사생활에서 다른 동료들을 답답하게 만드는데 그게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회사에서 누군가 일을 지시하면 자기 마음대로 해석해 일을 한 후 제대로 완성되지 않으면 온갖 핑계를 대며 얼마나 많은 고생했는지만 초점을 둔다.
또한 만약 누군가가 자신을 비판할 때, 행동을 되돌아보고 반성하기보단 “나를 질투해서, 내 성향을 존중하지 않아서, 상대가 공감능력이 없어서, 내 진가를 몰라서..“ 같은 어쭙잖은 핑계를 대며 비대한 자아를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결국 내면은 성장하지 못하고 껍데기만 성인인 인정받지 못한 어린아이가 거대해져 불건강한 방식으로 행동하게 된다. 예를 들면 수동공격이라던가, 비꼬는 말을 하며 은근하게 상대를 열받게 만든다. 그러나 그들은 의도가 무엇이냐 물으면 의도가 없다고 할 것이다. 본인들도 의도를 모르고, 의도를 안다고 해도 나쁜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아서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무의식 중에 안다. 그들이 만든 자아가 무의식과 조화롭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늘 삶이 불편하고 힘들 것이다. 가면을 유지하는데 에너지를 몰빵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 인생 전반은 어떤 생산적인 일도, 걸맞은 결과물도 내기 쉽지 않다. 늘 타인의 인정에 목매기 때문에 자신을 발전시키는 방식으로 살지 않는다.
그 방식이 자기 인생을 망치지만 그럼에도 두꺼운 페르소나를 유지한다. 가면이 깨지면 존재의 위기를 느끼기 때문이다.
그 가면 자체가 자신을 정의하기 때문에 타인도 자신도 아무도 그의 인생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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