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식탁을 기록합니다.
제주에 가면 아무리 바빠도 동문시장엔 꼭 한 번은 들린다.
집안의 경조사 같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여행 일정에 무슨 바쁜 일이 있을 이유가 없다.
내가 이곳에 들르는 이유는 딱 하나, 먹는 맛 때문이다.
나의 제주 여행은 대개 동문시장 순대국밥으로 시작해서, 리턴하는 날 다시 동문시장 순대국밥으로 끝난다.
나와 제주를 자주 다니는 사람들은 이 일정을 훤히 안다. 그래서 그들의 제주 여행 시작과 끝도 자연스럽게 순대국밥이 된다.
지난번 혼자 제주 여행을 마치고 부산으로 돌아오는 날이었다. 조금 일찍 동문시장에 도착해 할 일 없이 이곳저곳 기웃거리는데 건어물 좌판에 적힌 글씨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고즐맹이’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웬만한 생선은 거의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고즐맹이라니. 가벼운 흥분에 괜히 가슴이 쿵쾅거렸다.
납작한 소쿠리에 배를 딴 채 하늘을 보고 누워 있는 생선을 유심히 살폈다. 하지만 그 모습만으로는 정체를 알기 어려웠다. 아직 마수걸이도 못한 오전 시간, 잘 말려놓은 생선을 뒤집어 본다는 건 여간 낯뜨거운 일이 아니다. 멀찍이서 모양만 훔쳐보며 속으로 짐작했다.
‘꼬진가…?’
아직 비행기 시간이 여유가 있어 시장을 한 바퀴 더 돌아 보는데, 어떤 아주망이 생선을 바쁘게 손질하며 말했다.
“고즐맹이 상갑써. 막 싱씽현마씸.”
살갑게 들리는 제주말이었다. 손질하는 생선을 보고서야 ' 아 꼬지구나' 확신이 섰다.
고즐맹이는 제주말이었고 부산과 남해안에서는 꼬지, 표준어로는 꼬치고기다.
이 생선은 갈치, 고등어, 조기 같은 국민생선에 가려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맛을 보면, 국민생선들의 맛을 응축해 놓은 고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잡어라 값은 싸지만, 맛은 결코 가볍지 않다. 문제는 사람들이 꼬지의 가치를 잘 몰라 값이 싸도 손이 가지 않는다. 생김새는 꽁치와 비슷하다.주둥이가 길고 몸매도 날씬하다. 작을 땐 귀여운 맛이 있지만, 덩치가 크면 처음 보는 사람에겐 조금 징그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살이 무른 편이라 생물로 오래 두기는 힘들다.그래서 주로 말리거나 바로 요리한다.반건조해서 굽고, 조림을 하고,국이나 탕으로 좋은 식자재다. 잘말려 구워서 야채와 함께 샐러드를 하면 특별한 요리가 된다. 살을 다져 햄버거 패티를 만들어 생선 햄버거를 만들면 건강한 한끼 식사가 된다.
일본에서는 이 생선을 카마스(カマス)라 부른다. 그리고 오마카세 초밥이나 츠마미로 쓰는, 제법 대접받는 고급어종이다.
나는 비단 이 꼬지뿐 아니라 이런 잡어로‘잡어미학(雜魚味學)’이라는 생선공방을 꿈꿔왔다.
잡어에서 맛을 배운다는 뜻으로 공방 이름까지 정해 두었지만 요즘은 생선이 귀해져 공방을 차린다는 게 언감생심이 되었다.
그렇다고 잡어미학 이 이름이 내 곁을 떠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며 지금도 내 마음 한켠에 단단히 자리 잡고 있다. 이렇게 추운 겨울날, 뚝배기에서 보글보글 끓는 잡어미학 탕 한 그릇으로 온몸을 데우는 장면이 눈앞에 선한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