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인 2025년 이상문학상 리뷰

비평 및 리뷰

by 이재 다시 원


아름다움은 어디로 갔는가. 시대와 시선, 그것만으로 충분한가


이것이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상에 선택될 만큼의 작품인가? 2025년 이상문학상 수상작들을 읽으며 떠오른 여러 가지 질문들은 이 문장으로 귀결된다. 물론 지금의 문학은 예전처럼 고전적인 아름다움과 은유에만 기대지는 않는다. 문학은 이제 시대의 증인으로서 사실을 밝히고, 고통을 이야기하며, 사회적인 문제와 책임을 나누는 매체가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문학은 이야기의 예술이다. 그러한 이야기에는 서사와 감정, 구조와 언어의 미학 등이 함께 존재해야 한다. 이번 2025년 이상문학상은 그런 부분을 간과했다고 느껴진다.


2024년의 여러 일들 이후로 이상문학상이 많은 고민을 통해 시대를 증언하는 증언자로서 자리매김하려고 노력했다는 건 잘 알겠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보이는 직설적인 시대성에 과하게 기울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다. 문학은 시대를 말할 수 있는 동시에, 시대를 말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이번 이상문학상이 시대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건 알겠지만, 그것에만 치중된 느낌은 소설집을 읽으며 버릴 수 없는 아쉬움이었다.


거북하다. [그 개와 혁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혁명적으로, 혁명을 꿈꾸는 소설. 혁명이라는 이유만으로 출판이 금지된 세계를 떠올렸었다고 심사평에서는 말한다. 하지만 반대로 혁명이라는 이유만으로 당선된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대체 이 소설의 어디가 혁명적이라는 건가. 이야기는 흥미롭지 않고 구조는 평면적이다. 사건의 연결은 극적이지 않다. 개연성 또한 떨어진다. 소설에 필요한 것들을 챙기기는커녕, 오히려 현실의 자극적인 사건들로만 소설을 덧칠하려고 한다는 인상만을 남긴다. 문학 소설이 동시대적인 소재를 품을 수는 있다. 다만 그것이 곧 작품의 완성도를 보장한다는 사실은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소설이었다. 무엇보다 이 소설에서 혁명은 표제어로만 작용한다. 그것에 대해 소설 안에서 진지하게 탐구하거나 독창적으로 해석된 부분은 보이지 않는다. 특히 깨어있는 척하는 위선은 나르시시즘으로 보일 정도였다.


어떠한 틀을 깨버리는 사람들, 흔히 깨어있다고 표현하는 자들. 그러한 자들은 그 틀을 지키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들보다 항상 우월하고 나은가?

소설에서는 틀을 깨버린다는 주장에 죽음과 병의 이야기를 엮어서 풀어내려고 한다. 하지만 주장은 납득이 가지 않고, 설득력 있는 근거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심지어 마지막 결말 또한 어떠한 개연성도 가지고 있지 않다. 틀을 깨기만 하면 전부인가. 애초에 틀을 깨기 위해 틀이 만들어지는 모순적인 상황이라고 볼 수는 없는가. 이렇듯 당연하다는 듯이 이게 혁명이라고 말하는 작가의 얇은 고찰은 소설의 깊이를 한층 더 얕게 만들었다. 결국, 소재가 가진 무게감에 비해 그것을 구성하는 주제, 소설의 밀도나 설득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했다는 말이다, ‘다르다’와 ‘틀을 깬다’라는 명분이 언제나 모든 결함적인 부분을 덮어버리는 건 아니다. 이 작품은 시대를 잘 타고난 작품일 뿐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일렉트릭 픽션]은 기타라는 소품을 통해 이웃 간의 정서적인 연결을 살며시 유도하는 감성적인 소설이었다. ‘나’와 ‘그’와 독자 사이의 거리감이 뒤바뀌는 구성은 소설 내에서 반전처럼 작용하며 이는 감정을 재조율하게끔 만들었다. 하지만 특별히 참신하다고 볼 수는 없었다. 도넛으로 치자면, 반 정도는 먹을 만했으나, 반은 더 먹고 싶지 않은 느낌의 작품이었다.


[허리케인 나이트]는 구조적으로 안정된 작품이다. 빈부격차에 대한 인식이 전환되는 과정은 촘촘하게 설계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특히 소설 내에서 나오는 문장인, “피터가 롤렉스를 한 번도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잃어버렸다는 건 다시 찾을 수 없다는 뜻이다. 다시 찾을 수 있는 건 잃어버려도 괜찮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들에겐 잃어버려도 잃어버리지 않을 방법이 있고, 그게 무엇이든 도무지 잃어버릴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그가 롤렉스를 잃어버렸다는 것은 나의 착각에 불과했다.”라는 부분은 소설을 관통하는 주요 메시지로 읽히며, 롤렉스를 통해 드러난 문제를 단순한 소유의 문제가 아닌 존재 사이의 우위에 관한 문제로 확장시킨다. 그런 인식의 끝에서 결말 부분에 드러나는 반전 또한 인상 깊다. 다만 아쉬운 점은 꼬롬함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전형적인 한국 소설은 꼬롬하다. 이는 경상도 사투리로 구린내가 난다는 뜻이다. 꼬롬하다는 특징은 나에게 나쁘지도 좋지도 않게 느껴진다. 다만, 이런 꼬롬함에만 의존한다면 한국 소설은 한국 소설로서 끝날 것이다. 이는 한국 소설 또한 여러 분야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었다.


[리틀 프라이드]는 실망이 시작된 지점이었다. 그러니까, [그 개와 혁명]을 통해 낮아진 기대치가 앞선 [일렉트릭 픽션]과 [허리케인 나이트]로 미묘하게 상승하고 있던 가운데 나타난, 내 기대치를 지하 깊숙한 곳으로 꽂아 내린 작품이었다. 퀴어, 트렌스 젠더, 스트립쇼, 불편한 시선들. [리틀 프라이드]는 모두가 피하고 싶지만, 누군가는 말해야 하는 불편한 진실들을 다루고 있다. 다만 그런 진심에도 불구하고 문학적 성취에 이르지는 못했다. 설정에 퀴어가 나오고, 호모포비아가 나오고, 스트립쇼가 나온다고 해서 이야기가 깊어지거나 재밌고 참신해지는 건 아니다. 우선 이야기를 읽게 하려면, 소설의 다음 장이 기대되고, 같은 소설을 여러 번 읽고 싶게 만드는 그런 참신함과 감정적 재미를 느끼게 해줘야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마치 남의 일기를 엿본 것과 같은 스토리로 내게 실망을 안겨주었다. 소재는 자극적이지만 주제와 서사는 약하고 인물의 심리는 얕다. 책에 포함된 소설의 심사평에서는 “혐오와 차별의 문제를 다루되 단순한 이분법을 넘어 그 복합성과 상호 겹침을 섬세하게 포착해낸 작품”이라 평했다. 정말 그러한가? 극단적인 어느 쪽에도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게 상호 겹침을 섬세하게 표현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섬세할 만큼 촘촘하고 곱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깊은 고찰과 설득력 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어야 한다. 하지만 [리틀 프라이드]는 자극적인 재료로 만들어낸 최악의 레시피 같았다. 자극적이고 일반인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소재를 다룬다면, 소설을 통해 사회의 인식이 변화하기를 바랐다면, 그만큼 재미와 설득력을 갖춰 독자를 끌어들여야 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 간극을 뛰어넘지 못했다.


[슬픈 마음 있는 사람]은 마치 미스 박의 이야기 같았다. 미스 박이 죽었다. 여기서 어떤 감정이 느껴지는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미스 박이 누군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처럼 소설에서는 서사 없이 무거움을 흘려보내며 위로라는 포장지로 과대 포장된 선물 상자를 내보인다.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도 충분히 재밌고 설득력 있게 그릴 수 있을 터인데, 이 소설은 그냥 무언가를 어쭙잖게 모방하려는 시도의 결과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위로 같지 않은 근거 없는 위로는 얄팍할 뿐이다.


[구아나]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따르지 않고 동거만 하는 커플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이 소설은 조용하고 담담하게 흐르며 조용하고 담담하게 끝난다. 어떤 드라마가 크게 있는 건 아니지만, 소설의 일상적인 톤은 안정감 있고 편안하게 느껴진다. 문학성보다는 소설의 리듬감으로 기억에 남을 정도였다. 적당하게 쓰였고, 적당하게 읽혔다. 하지만 결국엔 적당함이라는 말로만 남았다. 만족도 감동도 적당한…. 그런 맛


이번 2025년 이상문학상을 읽으며 한국의 문학 현장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25년의 이상문학상은 한국 문학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시대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선택한 직접적인 방식과 그로 인해 잃어버린 감정의 복잡함과 간접적인 아름다움 들. 다음 장이 기대되지 않는, 읽고 싶지 않은 소설들. 현재의 문학 현장은 치열하다. 매체는 다변화되었고 플랫폼은 소비자의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하는 시스템으로 변화되었다. 이런 시대 변화의 한 가운데에서 한국 문학은 전통을 지키고 있는가. 필요한 전통을 벗어던지고, 필요하지 않은 전통만 더욱 고수하며 스스로를 고립의 길로 이끌고 있지는 않은가. 시대성과 미학은 결코 대립하지 않는다. 문학이 감당해야 할 가장 어려운 과제는 무겁고 복잡한 현실과 미래를 이야기로써 설득력 있고 아름답게 전달해주는 데 있다. 2025년 이상문학상은 그런 문학적인 합일을 보여주는 작품을 선정했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시대의 목소리를 너무 가까이서 들으려고 한 탓인지, 이야기의 힘을 잃고 말았다. 나는 여전히 문학이 아름답기를, 그 아름다움이 복잡한 현실과 맞닿아 있기를 바란다. 그러한 아쉬움을 담아 이번 2025년 이상문학상 리뷰를 끝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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