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퀴벌레가 된다면 어떡할 거야?

에세이

by 이재 다시 원


인간관계에 대한 깊은 현타가 왔다.

어느 정도냐면, 이제는 약속을 먼저 잡지 않고, 누가 만나자고 해도 가까운 이가 아니면 망설일 정도로..?

새로운 사람과 관계를 쌓아가는 일 자체가 버겁게 느껴진다.

예전의 나는 사람을 알아가는 것도 좋아했고, 친해지는 일도 기꺼웠는데, 요근래는 그 과정이 설렘보다 피로에 가깝게 느껴진다.


물론 모든 관계가 그런 것은 아니다. 내게 정말 소중한 몇몇 인연은 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그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관계가 점점 소모적으로 느껴진다.


어쩌면 내 욕심일지도 모른다. 나는 관계 안에서 서로가 서로의 목적이 되어주기를 바랐다. 그래서 같이 있는 상대에게 항상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누군가는 그저 순간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누군가는 어딘가에 함께 갈 사람이 필요해서, 누군가는 정보나 지식을 얻기 위해, 또 누군가는 다른 사람에게 가닿기 위한 징검다리로서

나를 거쳐갔다.


한 사람으로서 내가 원해지는 게 아니다.

그저 잠깐의 쓸모 있는 존재로 호출되는 순간들의 반복


처음에는 그럴수록 더 진심을 보이려고 했다. 내가 진심이면 언젠가 관계도 진심이 될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 믿음은 사람을 따뜻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오래 달궈진 냄비는 조금씩 닳아 간다는 걸 몰랐던 모양이다.


더 힘이 드는 것은, 그렇게 시간을 들여 가까워진 관계조차 때로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다.


오래 보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분명 서로의 마음 가까이에 서로가 닿았다고 믿었는데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된다

나는 생각보다 그 사람에게 큰 의미가 아니었구나 하는 것들


관계가 끝나는 일보다 더 아픈 건, 애초에 그 관계 안에서 내 믿음 만큼의 나는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러다보니 생각은 자꾸만 더욱 깊고 어두운 곳으로 내려간다.

나는 누군가에게 그저 ‘나’이기 때문에 욕망받을 수 없는 존재인가

내 존재 자체가 아니라

어떠한 순간의 편의와 필요 때문에만 선택되는 사람인가


이런 생각은 그만해야되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좀처럼 멈춰지지가 않는다.

아마 너무 오래된 기억들이 함께 올라오기 때문일까


어린 시절부터 내게는 무너짐이 일상이었다

친구든 일이든 가족이든

어른과 아이 사이에서든

삶의 굴곡에서도

늘 어딘가 쉽게 금이 갔다

내가 금이 쉽게 가는 사람인건지, 너무 세게 부딪힌건지는 모르겠지만…


기대하지 말아야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나는 늘 조금은 기대했고, 그 기대보다 더 크게 무너졌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누군가에게 기대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커진다. 그러면 덜 다칠 수 있을 것 같아서. 믿지 않으면 실망이 줄어들테니까…


보통은 밤에 떠오른 생각을 너무 믿지 말라고들 한다. 감정은 밤이 되면 날뛰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아침 9시부터 하루 종일 같은 생각을 했다면, 그것을 단순히 밤의 우울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겠지. 다만, 이 생각이 진실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어쩌면 나는 지금 세상을 정확히 보고 있기보다는 너무 지쳐서 왜곡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더욱 요즘의 내게 힐링이 절실하다. 먼저 나만의 여유를 회복하는 힐링이…


나는 사람에게 그만 실망하고 싶다

그런데 우습게도, 이래놓고 또 다시 사람을 믿어보게 되겠지. 그럴때면 스스로가 바보같다고 생각한다. 아니, 애초에 바보가 맞다. 학습 능력도 없고. 믿을 걸 믿어야지, 왜 또 사람을 믿냐고…


근데 한편으로는 원래 그런거 아닐까…

아직 나를 실망시키지 않은 관계들만이 있을 뿐,

언젠가는 누구나 서로를 실망시키고 또 실망당한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서로의 괴물이 되어, 가장 다정했던 얼굴에 깊은 상처를 남기겠지.


예전에 어떤 친구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자신은 관계의 끝을 먼저 보고 시작한다고.

그 친구는, 그 말이 애정이 없단 뜻도 아니고, 희망을 포기했다는 뜻도 아니라고 했다. 모든 관계는 언젠가 끝난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라고. 그래서 나와의 관계에서도 매번 끝을 그린다고. 그럼에도 함께한 순간은 사라지지 않고 자신의 안에 남을 것이라고도 얘기했다.


그 말을 들은 당시에 나는 굉장히 섭섭해했던 것 같다.

관계의 끝을 미리 상상한다는 게 내게는 너무 차갑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니라고, 나는 다르다고, 우리는 다를 수 있다고. 내가 증명해보이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친구가 먼저 나를 떠났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지, 보여줄 수 있는데. 그런 마음이…


시간이 지나보니 알 것 같다. 그 사람은 그 자리에 머물 힘 조차도 없었구나, 하고… 관계를 견디는 힘, 모순된 마음을 붙들고 있는 힘, 설명되지 않는 감정을 감당하는 힘 말이다.

물론 잘못은 있었다. 그러나 그 잘못조차 그가 먼저 내 손을 놓은 뒤에야 들어난 것이었다. 어쩌면 그 친구는 자기 안의 모순을 끝내 납득하지 못해서 떠난 걸지도 모른다. 원래도 납득되지 않는 행동을 싫어하던 사람이었으니까.


요즘은 자꾸 카프카의 [변신]과, 한때 유행한 밈이었던 “내가 바퀴벌레가 된다면 어떻게 할거야?” 같은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예전에는 그 질문이 단순한 밈처럼 보였는데, 지금 조금 다르게 읽히는 건 왜일까.


벌레가 되는 상상이 핵심이 아니다

쓸모를 잃은 내가 여전히 사랑받을 수 있는가


사실 많은 사람은 죽음보다 사회적 죽음을 관계적 죽음을 더욱 두려워하는 것 같다. 완전히 사라지는 것보가, 살아 있으나 아무에게도 필요하지 않은 상태. 더 이상 부름 받지 않고, 기억되지 않고, 가치 없는 존재가 된 상태.


지금의 세계에서는 그것이 실제 죽음보다 더욱 쉽게 찾아온다. 그래서 사람들은 묻는 것이다. 내가 바퀴벌레가 되어도 너는 나를 사랑할 거냐고…

내가 쓸모를 잃어도, 보기 흉해져도, 더 이상 네 삶에 도움이 되지 않아도, 너는 여전히 내 곁에 있을 거냐고.


나는 그렇다.

바퀴벌레가 되어도, 네게 최선을 다해 마음을 쏟을 수 있다.

적어도 지금의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런데 정작 내가 바퀴벌레가 되었을 때, 내가 마음을 주었던 사람들 중 그 누구도 나를 돌아보지 않을 것만 같아서

그래서 문득 외로워졌다


단순히 혼자인 감정이 아니라…

완전히 혼자라는 걸 감각한 느낌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는데.


삶은 때때로 환멸을 안고도 계속된다.

실망한채로 무너진채로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아침을 맞는다.

그러니 지금은 거창한 결론 대신 작은 다짐 하나만을 남기자.

사람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말자. 그리고 내 자신부터 돌보자.


결국 살아내는 일은, 사람을 다시 믿는 일 이전에

나를 버리지 않는 일이기에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