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에서 들뢰즈로 향하는 근대철학의 여정
이 책 '철학과 굴뚝청소부'는 데카르트부터 시작하는 근대철학의 인간 지성사_주로 인식론에 해당되지만_의 발전을 들뢰즈의 현대철학까지 아우른다. 초판이 1994년 6월 발행이고 내가 산 책이 2015년 3월 개정 3판 1쇄 발행으로 총 31쇄를 찍어낸 인문학에서 보기드문 베스트 셀러다. 책을 구입한게 작년 6월, 1년이 지났고 2 번에 걸쳐 숙독했지만 나는 아직도 이책의 20% 정도는 이해 못한다. 이런 책이 31쇄를 찍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의 지적 풍토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인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는 필독서로 통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데카르트의 '코기토'로 시작되는 근대로 접어들면서 신의 자리를 인간의 이성이 넘겨 받으면서 진리 인식문제는 주체와 대상간의 관계 지음에서 근대철학의 최대 목표가 되었다. 그러나 주체철학, 과학주의, 계몽주의의 특징을 갖는 근대철학의 문제설정은 신의 역할에 준하는 제 3자의 존재를 가정하지 않고서는 주체와 대상간의 일치를 보증할 수 없다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이 후 근대철학은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사고영역들을 개척하게 된다. 로크는 본유관념과 실체를 유명론의 입장에서 비판함으로써 경험주의 라는 새로운 흐름을 이끌었으나 본질적으로 근대철학의 딜레마를 해결하지 못한채 흄에 이르러 진리는 커녕 인과법칙조차도 있다고 할 수 없으며 주체가 있는게 아니라 지각의 묶음만이 있을뿐이라는 주장에 이르러 근대철학은 위기를 맞게된다. 칸트는 '선험적 주체'라는 새로운 기초를 마련함으로써 근대철학을 재건하는데 그가 사용한 방법은 진리를 주체 내부로 이전함으로써 주체를 객관화 하는 것이었다. 즉 객관적 진리를 사고 주체의 속성으로 잔환시킴으로써 주체에게 객관성을 주어 주체와 객체를 동일한 것으로 결합시키는 방법이다. 그러나 칸트의 선험적 주체 혹은 절대적 주체는 자기 스스로를 기초짓도록 함으로써 딜레마의 해소를 겨냥하지만 그 결과는 딜레마의 이전과 자신의 입론에 대한 절대적 정당화로 후에 근대철학의 근본적 결함으로 비난을 받는 요인이 된다.
헤겔의 절대정신에서 절정에 이른 근대철학은 새로이 근대적 경계를 뛰어넘으려는 다양한 시도에 부딪히는데 실천이란 개념으로 그 경계선을 허물고 한계를 넘어서려 했던 맑스, 무의식이란 개념으로 근대철학의 기반을 해체시킨 프로이드, 그리고 가치와 힘에의 의지 개념으로 근대철학을 공격함으로써 새로운 문제설정을 정립하려 했던 니체, 주체의 작용으로 이해되는 의미와 판단은 사실 주체 외부에 있는 언어구조에 속한다고 주장하는 소쉬르와 레비스트로스 등이 중요한 흐름으로 등장한다.
근대적 문제설정을 벗어나려는 흐름은 전반적으로 두 가지 특징으로 요약되는데 첫째로, 근대철학에서는 '주체'라는 범주가 선험적 인식의 출발점이었는데 반해 탈근대적 문제설정에서는 주체는 여러가지 요인들_맑스의 '사회적 생산관계', 프로이드의 '타자'로서의 무의식, 푸코의 생체권력,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등_에 의한 결과물로서 구성되는 것으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지식을 파악하는 방식인데 근대철학에서는 지식은 인간의 인식이 도달해야 할 목표지점이었고 따라서 '참된 지식'만이 다루어 졌다면 탈근대의 문제설정에서는 지식은 주체를 구성하는데 영향을 미치는 '담론'으로 정의되며 그것이 '참'이든 '거짓'이든 그게 야기하는 효과가 무엇인지를 통해 사고된다고 본다. 이것은 주체와 지식의 관계가 근대와는 반대로 바꾸었다고 볼 수도 있다. 지식이 효과를 야기하는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고 주체는 그 결과 구성 된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두가지 요소가 근대철학의 문제설정과 그것을 넘어서는 문제설정 사이에 경계를 그어주는 특징으로 생각된다
근대철학의 문제설정을 넘어서려는 현대철학의 여러시도에서도 두 가지의 흐름을 엿볼 수 있다. 하나는 변화보다는 불변성을, 가변성보다는 항속성을 찾으려는 경향으로 이런 경향은 개별적인 것에 반하여 보편성 내지 일반성에 우위를 부여하고 현상들에 대해 법칙성을 강조하여 이것을 진정한 지식의 대상이라고 간주하는 방식이다.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과학주의, 라캉이나 알튀세르의 주체개념, 혹은 프로이드의 무의식이론 등이 이런 경향에 속한다. 또 하나의 경향은 보편성의 형태를 취하는 동일성이나 법칙성으로 환원될 수 없는 차이를 강조하고, 평범하고 평균적인 규칙성에 대비하여 다양한 양상으로 차이를 드러내는 특이성을 강조하는 입장, 동일화 하려는 권력의 작용에 반하여 배제되거나 억압되는 '타자성'을 강조하려는 태도, 불변성이아니라 변화를, 정체성이 아니라 변이와 역동적인 유목을 강조하는 입장으로 푸코와 들뤼즈/가타리를 들 수 있다.
책 말미에 '인문학의 위기' 란 글에서 분석한 저자의 인문학 지반의 변화는 다음의 두 가지다. 하나는 지식이나 이론적인 담론 자체의 근본적 변환을 요구하는 지적 조건의 변화고, 다른 하나는 지적 생산의 바탕이 되는 삶의 방식이나 활동조건의 변화라는 측면이다. 지식의 생산은 어느 탁월한 한 개인의 찬재적인 능력에 따라 행해지는 '독창적'창조가 아니라는 것이 어느때보다 분명해진 오늘날, 우리를 다시금 낡은 인식론적 지반으로 유인하는 다음의 환상들에서 벗어나야 한다. 첫째, 지적생산의 주체와 결부된 '저자의 환상'_자기만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독창적인 개인이라는 관념으로 사유나 지적활동은 결국' '내'가 하는 것이란 시대착오적인 환상. 둘째, 지식은 단지 삶을 위해 '이용'할 뿐인 세간에서 분리되어 도서관 같은 진리의 저장고에 존재해야 한다는 지적 나르시시즘 환상. 셋째, 자신의 연구를 자신의 소유물로 간주하는 '전문성의 환상'으로 자신이 쳐 놓은 울타리를 벗어나는 순간 어떤 것도 납들만큼 보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력이나 실재적 결여를 은폐하려는 환상이다. 인터넷과 네트워크상에서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다. 저자는 기존에 존재하는 지식의 경계, 지적 생산과 재생산의 영토들을 가로지르면서 새로운 방식으로 지식의 장을 창안하고 또 다시 탈 영토화의 선을 그리며 지적 생산의 '주체'나 '대상' 자체를 변환시키는 노마디즘이 새로운 지적활동 방식이 되어야 한다고 끝을 맺는다.
PS: 철학적 소양이 깊고 넓은 사람에게는 쉬운 책 읽기가 되겠지만 일반인들이 이해하기에는 조금의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딱딱한 책 임을 감안한듯 개정판에서는 본문의 글 내용과 관련된 도판을 곁들여 그 시대의 사회사상사, 문화사, 예술사 등을 소개하고 있어 솔솔한 재미를 부여하고 있다. 막연하게 알고 있는 철학사와 이론의 쟁점들을 공통점과 차이점을 대조하면서 정리해보기 좋은 교양서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