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일 동안 트랜스아메리카 트레일을 따라 달린 6400K
< 홍은택지음. 한겨레출판사 2006. 5 >
- 2005년 5월 26일부터 8월 13일까지 80일간 미국대서양연안 요크타운에서 태평양연안 프로렌스까지 트랜스아메리카트레일을 따라서 6400Km를 자전거로 여행. 여행 당시 오마이뉴스 편집장이었으나 현재는 카카오 대표이사로 재직중이라 한다.
- 지은이의 여행길의 동반자 몰튼자전거, 20인치 21단 기어 >
- 하루이동거리 95Km, 평균주행시속은 13Km, 영하 1도에서 영상 43도까지의 기온변화, 해발고도 0미터에서 3463미터의 높이를 체험, 페달 회전 수 150만번, 10개주를 건너고 시간대가 다섯 번 바뀜. 대강의 수치적 기록이다.
1. 자전거는 혁명이다.
자전거를 타는것은 삶의 방식의 '혁명'이다.
자전거타기는 교통사고로부터, 속도와 경쟁으로부터, 전쟁같은 일상의 삶으로부터의 해방을 뜻한다.
페달을 밟는 것은 사람과 공간의 관계를 바꾸는 혁명같은 행위이다. 안장에 오르는 순간 아득해 보이던 지평선도 도전해 볼만한 거리로 다가온다. 운전이나 비행은 더 효과적으로 거리를 단축한다. 하지만 그것은 공간을 죽이는 짓이며 공간을 오로지 킬로미터로 표시되는 무감각한 세계로 변질시킨다. 또한 그 힘도 죽은 연료인 화석연료에서 나온다.
반면 페달은 심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피로 돌아간다. 페달을 밟는 수직운동이 바뀌의 순환운동으로 전환되고 다시 자전거의 수평이동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두 차례의 혁명이 발생한다. 소진에서 지속으로, 그리고 경쟁에서 협동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이다.
< 1884년 토머스 스티븐스가 최초로 세계일주에 이용한 자전거, 혁명의 시작이다. >
차는 한시간을 달리면 무려 1만 8600칼로리를 소비한다. 같은 시간에 자전거는 350칼로리를 그것도 허리둘레에 끼인 지방을 소비한다. 자동차로 운전하는 거리의 80%가 집에서 13Km 이내에 집중된다고 한다.. 70Kg의 한 사람을 실어나르기 위해 200마력을 내는 2000킬로그램의 괴물을 움직이는 것이 과연 합당한일인가? 자전거 사색가인 리처드 발렌타인이 말했듯이 "카나리아 한마리를 잡기위해 원자탄을 투하하는 것이나 다를바 없는일이다."
2. 자전거는 현재다.
우리는 항상 뭘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고 있다. 목표를 이루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것은 잠시고, 곧바로 더 어려운 목표를 설정해 스스로 채찍질한다. 그래서 현재는 항상 미래로 가는 하나의 디딤돌에 지나지 않는다. 그 무수한 디딤돌을 밟고 미래는 항상 저 멀리 달아난다. 현재가 내 삶에서 소외되어 있는 것이다. 직선적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한 삶에는 두 점, 다시 말해 과거와 미래밖에 없다. 그 두 점을 잇는 선분인 현재는 그 자체로서는 의미를 갖지 못한다.
< 변한다는 것은 영속하는 진실이다. 그러나 영속하는게 어떻게 변화하는가? >
그러나 자전거 여행은 과거와 미래를 천천히 연결함으로써 현재에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속도를 다투는 시간성에서 벗어남으로써 과거와 미래로부터 해방되 무시간성 또는 초시간성을 느낄 수 있는 계기를 부여한다. 천년만년 흐르는 강물도 사실은 시간의 소산이다. 언젠가는 강줄기가 말라 사막이 되거나 물이 차고 넘쳐 바다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시간의 단위가 워낙 아득하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나 있는 듯한 착각을 주면서 동시에 초시간성에 대해 생각해 볼 단초를 제공한다.
우연히 우리는 지구라는 같은 우주선을 얻어 타고 매일 공짜로 우주여행을 한다. 태양을 도는 이 우주선의 궤적에 비교해보면 우주선 안에서 자전거로 여행하는 것은 16절지에 연필로 그은 선보다도 길지 않다. 그래도 우리는 페달을 밟는다. 이 일이 위대해서가 아니라 그게 현재를 사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시간을 벌기위해서도 아니고 더 많은 거리를 가기 위해서도 아니다. 바뀌를 돌리면서 현재에 더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자전거는 만남이다.
바뀌를 굴리면서 우리는 새로운 자연풍경, 사람이 사는 마을이나 도시, 무엇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자동차로 스치며 지나는 주변은 우리의 의식 저 바깥에 잠시 머물다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안장위에서 바라보는 자연은 그 숨결, 그 풍광 하나하나가 우리의 인식속에 현재형으로 깊게 각인된다. 수만, 수억년의 세월이 빗어낸 산과 계곡, 강의 모습에서 우리는 인간의 한계성과 자연의 위대함을 깊게 실감하며 보다 삶에 진지하게 임하자고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새로운 도시를 만나며 우리는 그 도시의 역사와 풍물, 지역주민들의 생활과 주거환경을 경험하며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인류문화 유산의 산역사를 체험한다. 그러나 자전거 여행의 제일 큰 의미는 많은 사람을 살갑게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동기로 다양한 방법으로 자기발견과 극기체험의 순례에 나선 이들은 서로간에 동료의식이 형성되어 쉽게 인류애를 느끼게 된다. 여행중 저자는 젊은 대학생 부터 50대에 은퇴한 중년부부, 부녀간, 친구간 등 수많은 여행자를 만나며 그들의 삶과 세계관을 나누어 갖는다. 그 중 엘리슨이라는 여자 라이더는 자전거 여행을 '우주로의 游泳'이라 비유한다. 그녀는 명상의 방법으로 대륙횡단 자전거 여행을 한다는데 떠나며 남긴 메세지는 자전거가 가져다 준 명상여행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바라는 것(Desiderata)
소란스러움과 서두름 속에서도 평온함을 유지하기를.
정적에 싸인곳을기억하기를.
쉽게 굴복하지 않으면서 모든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를.
당신의 진실을 조용히 그리고 분명하게 말하기를.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심지어 아둔하고 무지한 사람들에게도 귀를 기울이기를
그들도 그들 나름의 이야기가 있으니.
사납고 나쁜 사람들을 피하기를 그들은 영혼을 갉아먹으니.
스스로 다른 사람과 비교한다면 공허해지거나 잠시 기분이 나아질뿐
세상에는 항상 당신보다 낮거나 못한 사람들이 있거늘.
앞 일을 계획하는 것 만큼이나 지금까지 이뤄낸 것들을 음미하기를.
마무리 보잘것 없는 일이라도 그것이 당신이 해야 할 일이라면 그 일에 흥미를 잃지않기를.
시간에 따라 운은 변할 수 있지만 그것은 변하지 않는 당신의 천직이 될 것이니.
사랑에 대해 냉소적이지 말기를.
아무리무미건조하고 정나미가 떨어지는 일들이 벌어져도
사랑이야말로 잔디처럼끊임없이 솟아나는 것이니.
세상에는 사기가 판치고 있으나 이것때문에
좋은 일들에 대해 눈감는 일이 없기를.
많은 사람들이 높은 이상을 위해 분투하고 있고 영웅적인 노력들로
세상이 가득차 있으나 당신 자신이 되기를.
젊음의 것들을 우아하게 단념하면서 세월의 흐름에 순응하기를.
갑작스런 재난에서도 당신을 지켜줄 영혼의 힘을 키우기를.
그러나 상상의 것으로 스스로 괴롭히지 말기를.
두려움의 대부분은 피로와 외로움에서 싹트나니.
엄격한 자기수양을 넘어서 자신에게 온화하기를.
신이 당신에게 어떤 모습이든간에 신과 융화하기를.
삶의 시끄러운 혼란속에서 당신이 무엇을 열망하고
무엇을 위해 다투고 있든 간에 당신의 영혼과 조화를 이루기를.
세상은 거짓과 허영과 무너진 꿈으로 가득차 있어도 여전히 아름답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