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의학의그릇에 담기지 않는 고유하고 다양한 아픈 몸들의 인류학
전문의를 따고 3년간의 공중보건의 생활을 한 가리봉동 외국인 노동자 전용 의원에서의 겪고 느낀 고통과 질환에 대한 의학적 인류학적 나아가 철학적인 고찰을 담은 책이다. 저자는 기능적인 측량에 실패한 '고통이 실재한다고 할 때 그것에 부여된 의미를 탐사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즉 고통과 통증은 개인적인 것이라고 상상하지만 실재로는 그가 속한 문화와 사회와 역사의 층위에서 상연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는 '감정노동'이라는 용어가_ 심리 기제인 감정과 사회 기제인 노동이 결합해 탄생한 조어로_노동의 시회적 구조와 심리적 고통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하는것가 비슷하다.
'고통 받는 것만 실재한다'는 견해에 동의하는 저자는 인간과 비인간, 몸과 마음, 삶과 죽음 등 분리될 수 없으나 분리된 것들의 경계, 의학과 사회과학 등 기반이 다르다고 여겨지는 것들의 경계를 생각하고 연구하는 것에 관심을 둔다.이러한 태도가 우리 삶의 사고 체계에 깊숙히 들어와 있는 이분법에 저항하면서, 고통의 문제에 접근하는 유의미한 방식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질환을 가진 삶은 분명 고통스럽다. 환자는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누리던 무엇인가를 잃어버리며 결코 원하지 않던 무엇인가를 떠안는다. 쉽게 동의할 수 없는 그 교환의 관계가 지속되며 그는 질병이나 아픔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자를 배우게 된다. 그 고통이 인지의 충격을 유발하며 주변에 전이되는 방식 중 가장 유서깊고 탁월한 방식은 '이야기'이다. 환자가 몸의 증상이나 감정을 통해 무엇인가를 고통스럽게 재현해내고 있다면, 그것이 그 고통의 본질을 관통하고자 하는 몸의 의도가 아닌지를, 또 그 의도를 둘러싼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살피는 것이 치료자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질환 서사는 현대 의학의 거대한 패러다임과 코드화된 카테고리 속에 갇혀버린 몸의 목소리를 환자에게 되돌려주는 '재현'과 같다. 동시에 그것은 주변에 그리고 치료자나 의사에게 그 고통의 의미를 전달하고 해석하게 함으로써 본질에 새롭게 접근하도록 돕는 우리 몸의 가장 오래된 레토릭이다.
인간은 어느 누구도 섬이 아니다. 따라서 혼자서만 감당해야 하는 선택이란 사실상 허구다. 우리는 무엇인가 선행된 과정의 결과를 만나 장차 어떤 상황의 원인이 될 만한 선택을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은 그를 둘러싼 환경과 사회.경제적 조건부터 그의 두뇌에 전해지는 자극의 종류와 그에 의해 새로이 형성되는 신경회로 맟 보상 기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촘촘히 연결되어 있는 세상에서 일어난다. < 이기병 지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