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는 즉흥 연주였지만, 파국은 길게 이어졌다
1929년의 대공황은 보통 “검은 목요일”이라는 단어로 압축된다. 그러나 다양한 저자들의 기록을 읽다 보면, 그것은 단일한 폭발이 아니라 길고 느린 무너짐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한순간의 파열음이라기보다, 오케스트라가 악보를 잃어버리고 서서히 삐걱거린 연주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오래된 불협화음은 오늘 우리가 듣는 시장의 소음과 묘하게 겹쳐진다.
1920년대의 주식 열풍은 전기, 라디오, 자동차 같은 신기술이 불을 지폈다. 라디오는 사람들을 집 안에 앉혀놓고도 세계를 품게 만들었고, 자동차는 도시의 형태를 바꾸었다. RCA는 그 시대의 상징이었다. 오늘날의 엔비디아와 다르지 않다. AI와 반도체, 플랫폼 비즈니스가 그때의 라디오처럼 모든 가능성을 집약한다. 문제는 ‘훌륭한 펀더멘털’이 ‘영원한 성장’으로 과잉 해석되는 순간부터다. 튼튼한 줄이 곧 하늘까지 닿을 것이라 착각하는 법이다.
당시에도 FOMO는 존재했다. 다만 이름은 달랐다. “이웃도 다 버는데 나만 빠질 수는 없지”라는 두려움이었다. 여기에 신용거래라는 불이 붙었다. 오늘날 옵션 거래, 레버리지 ETF, 사모 대출이 그 연장선이다. 빚과 욕망이 합쳐질 때, 인간은 언제나 비슷한 리듬으로 흥분한다. 역사는 바뀌어도 심장은 그대로 뛴다 - 사촌이 땅사면 배 아프니, 빚내서 나도 올라타야 한다!
은행가와 투자자들이 모두 무지했을까? 아니다. 과열을 알면서도, 음악이 멈추기 전까지 한 곡이라도 더 춤추고 싶었던 것이다. 그때의 투자풀, 특혜 IPO가 오늘의 스펙(SPAC) 열풍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익은 내 것, 손실은 남의 것’이라는 비대칭은 시대를 초월한 특권의 언어다. 그러니 “몰랐다”는 변명은 늘 사후의 이야기일 뿐이다.
1929년에 다우지수는 17% 하락했을 뿐이었다. 대재앙은 그 뒤에 왔다. 1930년대 초까지 80% 가까이 빠지면서 은행이 무너지고 실업이 폭발했다. 시장의 붕괴는 종종 한순간의 폭풍이 아니라, 신뢰가 서서히 사라지는 과정이다. 오늘날의 위험도 어쩌면 번개처럼 오는 폭락이 아니라, 조금씩 균열이 넓어지는 긴 행진일 수 있다.
사실 그 후에도 큰 변화는 없었다. 페코라 청문회와 SEC 설립 같은 제도는 뒤따랐지만, 당대의 책임자들은 대부분 살아남았다. 2008년 금융위기 때도 그랬다. 월가는 “한 번 무너져도 다시 일어난다”는 냉소적인 진리를 증명했다. 무너지는 것은 개인의 삶이고, 시스템은 늘 제도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재조정한다.
이 모든 것이 말해주는 교훈은 단순하다. 시장의 광기는 지금 당장은 늘 합리적으로 보인다. 기술은 언제나 불씨가 되고, 엘리트는 위험을 알면서도 중독처럼 춤추며, 대중은 뒤늦게 불길 속에 휘말린다. 그러나 대공황이 보여주듯, 붕괴는 한 번의 폭발이 아니라 오랜 침식이다. 오늘의 AI 열풍과 반도체 광풍이 내일의 역사책에 어떻게 기록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누구도 음악이 멈추는 순간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신의 예지라도 있지 않은 한, 우리는 결국 무대 위에서 어색하게 박자를 놓치는 댄서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