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은 올랐는데, 정작 지갑은 아직 무겁다
세계 경제는 늘 거대한 진자처럼 흔들린다. 지난 수십 년간의 진자가 ‘자유무역’ 쪽으로 기울었다면, 이제는 ‘자국보호’라는 방향으로 서서히 되돌아가고 있다. 그 중심에는 미국발 관세 전쟁이 있다. 낯설게 보이지만 사실 관세 자체는 새로운 발명품이 아니다. 개발도상국은 산업을 키우기 위해, 선진국은 전략 산업을 지키기 위해 언제나 이 무기를 활용해 왔다. 한국 역시 초기 성장기에는 적극적으로 관세라는 갑옷을 입었다. 문제는 오늘날 그 칼끝이 누구를 향해 있고, 실제로 누가 상처를 입고 있는가이다.
관세가 붙으면 물가가 뛴다 ― 경제학 교과서에 적힌 공식이다. 그러나 지난 1년간의 미국 CPI(소비자물가지수)는 그 공식을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 연준의 파월 의장도 최근 연설에서 관세 효과가 “예상보다 크지 않고, 다소 일시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수치상으로도 당장 인플레이션 압력이 폭발적으로 커지지는 않았다. 물론 이는 단기적 관찰일 뿐이고, 장기적으로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관세=인플레 폭탄”이라는 공포는 다소 과장된 그림이었던 셈이다.
그렇다고 피해가 없는 건 아니다. 최근 업계 인터뷰와 경제지 분석을 보면, 수출·수입업체들이 관세 부담을 소비자에게 모두 전가하지 못하고 반쯤은 떠안는 것으로 보인다. 매출을 유지하는 편이 경영상 더 낫다는 계산이다. 소비자에게 전부 넘기면 수요가 줄어들고, 기업이 다 짊어지자니 손익이 흔들린다. 그래서 기업은 줄타기를 택한다. 그러나 이 줄타기가 언제까지 가능할지는 불확실하다. 업종별·상품별 체력이 다르고, 경기 상황이 변하면 균형은 금세 흔들릴 수 있다.
결국 관세의 장기 효과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 기업이 얼마큼 버틸 수 있을지, 글로벌 수요가 어떤 흐름을 탈지, 이는 모두 미지수다. 다만 하나는 분명하다. 세계가 과거의 자유무역 전성시대에서 점차 자국 우선주의로 기울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여 년간의 과도한 유동성이 불평등을 심화시켰고, 정치의 시선은 이제 “글로벌”에서 “내 나라”로 이동하고 있다. 관세 전쟁은 단순한 세금 문제가 아니라, 시대정신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이 변화 속에서 한국은 고민스럽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경제 구조는 자유무역 환경에서 빛났지만, 자급자족적 경향이 강화되는 시대에는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단순히 더 싸고 많이 파는 전략은 오래가기 어렵다. 기술 혁신, 서비스 산업, 내수 기반의 강화 등 새로운 균형을 모색해야 한다. 특히 한국 같은 중견국에게는, 외부의 파고에 휩쓸리지 않고 새로운 길을 여는 전략적 유연성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그렇다면 미국발 관세 전쟁의 피해자는 누구일까? 지금까지는 기업들이 마진을 줄여 대신 삼키고 있고, 소비자들은 큰 충격을 피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길어지면 그 균형은 흔들릴 수 있다. 피해자는 기업일 수도, 소비자일 수도, 혹은 결국 모두일 수도 있다. 다만 분명한 건, 이번 전쟁이 단순히 가격표 몇 줄을 바꾸는 사건이 아니라, 세계 경제의 풍경 자체를 다시 그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관세는 결국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의 방향을 말해주는 거울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