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선에서 종착점으로 바뀐 시대의 풍경
한때 결혼은 인생의 초석이었다. 성인이 되어 독립하려면 집도, 직장도, 심지어는 냉장고마저 결혼과 함께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오늘날 결혼은 더 이상 초석이 아니다. 이미 집과 직업, 안정된 생활 기반이 마련된 뒤에야 얹는 마침표, 혹은 인생 완성의 상징으로 변모했다. 마치 긴 건축을 끝낸 후 마지막으로 올려놓는 완공 표식 같은 존재다.
평균 초혼 연령이 29~30세로 올라간 것은 단순한 숫자 변화가 아니다. 결혼은 더 이상 성인 입문의 관문이 아니라, 안정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보상이다. 테일러 스위프트와 트래비스 켈시가 30대 중반에 약혼한다는 뉴스가 흥미로운 것은, 대중문화조차 결혼을 “출발점”이 아닌 “정점”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결혼은 이제 “누구나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성공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로 변했다.
문제는 이 변화가 계층별로 전혀 다른 풍경을 낳는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여성의 결혼율은 여전히 높지만, 비졸업 여성의 결혼율은 급격히 떨어졌다. 사람들은 소득·학력이 비슷한 상대를 찾는 경향이 강해, 이른바 ‘경제적 정렬(assortative mating)’이 심화되고 있다. 그 결과 학력이 낮은 여성들은 점점 줄어드는 “결혼할 만한 남성”을 두고 경쟁하게 된다. 특히 비졸업 남성의 고용률과 범죄·구금률이 높은 지역일수록 이 격차는 더 벌어진다고 한다. 결혼의 불평등은 결국 사회 전체의 불평등을 확대시키는 장치가 되어버렸다.
부모의 부 역시 결혼의 전제 조건이 된다. 30대 후반까지 결혼한 비율을 보면, 부유층 출신은 약 59%인 반면, 저소득층 출신은 30%에 불과하다. 결혼 자체가 새로운 부의 격차를 낳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부모의 자산이 결혼 가능성을 좌우하는 출발선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결혼은 다시 부를 한데 모아, 다음 세대의 격차를 더 공고히 한다. 결혼은 사랑의 제도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자산의 압축기가 된 셈이다.
여성의 경제적 지위가 크게 향상된 시대에, 과거처럼 “나는 돈 버는 남자다”라는 전통적 역할은 더 이상 결혼을 보장하지 않는다. 특히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남성들은 구직 경쟁에서 밀리고, 전통적 남편상으로도 설 자리를 잃었다. 새로운 성 역할에도 적응하지 못하는 사이, 중하층의 결혼율은 급속히 낮아지고 있다. 결혼은 더 이상 모두의 통과의례가 아니라, 선택받은 계층의 특권이 되었다.
이렇게 결혼이 인생의 마침표로 변하면서 나타나는 또 다른 현상은 아이러니하다. 결혼 자체는 더 안정적이 되었다. 초혼 연령이 늦어지며 이혼율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제도는 더 이상 보편적이지 않다. 오히려 계층과 계급을 드러내는 사회적 표식으로 작동한다. 일부는 동거를 대안으로 택하지만, 미국에서는 여전히 결혼이 지위를 공고히 하는 강력한 신호로 남아 있다. 따라서 결혼은 “모두가 거쳐야 하는 삶의 단계”에서 “일부가 누릴 수 있는 훈장”으로 바뀌었다.
결혼은 한때 인생의 초석이었지만, 이제는 안정된 사람만이 올릴 수 있는 마침표다. 안정성과 낮은 이혼율이라는 긍정적 효과가 있는 반면, 불평등을 심화하는 그림자도 함께 드리운다. 결혼은 인생의 보편적 언어가 아니라, 계층을 구분하는 사투리로 변했다. 그렇다면 질문은 남는다. “결혼은 여전히 사랑의 제도인가, 아니면 부와 지위를 굳히는 자물쇠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