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가계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미국을 흔히 ‘천조국(千兆國)’이라 부르는 이유는, 그 천문학적인 국가예산과 국방비 때문이다. 매년 수천조 원에 달하는 돈을 쓰는 규모가 다른 나라들과는 차원이 달라, 마치 “돈으로 세계를 굴린다”는 인상을 준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바로 천조국이다.
1980년 미국의 연방지출 총액은 2.3조 달러였다. 40여 년이 지난 2024년, 그 숫자는 세 배나 불어난 6.8조 달러에 이른다. 단순한 물가상승을 넘어, 항목별 변화는 더 드라마틱하다. 국방비는 여전히 크지만 비중은 줄었고, 대신 사회보장과 메디케어가 가계부의 주인공이 됐다. 메디케어 지출은 1250억 달러에서 8740억 달러로, 무려 600% 가까운 증가를 기록했다. 사회보장 지출 역시 1조 5천억 달러로 불어나, 국방비를 앞질렀다. 이제 미국의 나라살림을 요약하는 세 단어는 방패보다 약병, 그리고 끝없이 불어나는 ‘이자’다.
미국 예산을 뜯어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다. 늘 논란이 되는 국방비나 교육예산 같은 ‘재량지출’보다, 사실은 사회보장·메디케어·부채이자 같은 ‘의무지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즉, 정부가 손댈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든 셈이다. 더구나 미국은 2030년이면 모든 베이비부머가 65세 이상이 된다. 숫자상으로도, 인구구조상으로도, 사회보장과 건강보험 비용은 앞으로 더 치솟을 수밖에 없다. 과거의 “총과 탱크”가 아니라, 앞으로의 예산은 “주사기와 청구서”가 잡아먹는 구조다.
이 장면이 낯설지 않은 이유가 있다. 최근 프랑스에서는 연금 개혁을 둘러싼 시위가 격렬하게 벌어졌다. ‘더 오래 일하라’는 정부의 메시지는 ‘더는 못 버틴다’는 시민들의 분노와 정면충돌했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같다. 고령화로 지출은 늘고, 재정적자는 불어나는데, 누가 부담할 것인가?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갈등은 거리로 터져 나온다.
한국도 멀지 않았다. 세계 최저 출산율과 초고령화가 겹치면서, 국민연금의 미래는 이미 적색 경고등이 켜졌다. 지금 세대는 세금을 내고, 다음 세대는 혜택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불신이 쌓인다. 미국의 수치와 프랑스의 시위는 곧 한국의 예고편이다.
재정은 단순한 회계표가 아니다. 숫자 뒤에는 가치 판단이 숨어 있다. 누구를 우선 보호할 것인가, 어느 정도의 불평등을 감수할 것인가, 미래세대에 얼마나 빚을 떠넘길 것인가.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유지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노인 돌봄과 건강보험이 재정의 중심축이 되고 있다. 프랑스는 거리에서 시민들이 그 철학적 선택을 강제로 제기하고 있다. 한국은 아직 본격적인 논쟁을 피하고 있지만, 피한다고 사라질 문제는 아니다.
미국의 나라살림은 고령화 사회의 지출 구조를, 프랑스의 시위는 사회적 합의 실패를, 그리고 한국의 현재는 다가올 폭풍 전야를 보여준다. 국가의 가계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문제는 단순히 돈이 얼마나 있느냐가 아니라, 그 돈을 어디에 쓰고, 누가 그 부담을 지며, 사회가 그 선택을 얼마나 공정하다고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