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김 부장이 소리 지르는 과학적 이유

넥타이를 맨 원시인들: 당신의 회사에 사바나의 유령이 산다

by 망구르빕


매일 아침, 우리는 타임머신을 탑니다.


스마트폰 알람으로 일어나 AI가 추천하는 뉴스를 읽고,

자율주행 기술이 적용된 차를 타고 출근합니다.

회사 로비에 들어서면 안면 인식 보안 게이트가 나를 맞이하고,

초고속 엘리베이터는 초속 5미터로 순식간에 42층 스카이라운지까지 우리를 올려 보냅니다.


우리의 겉모습은 완벽한 21세기입니다.

우리는 최첨단 IT 인프라와 강철 프레임으로 지어진 마천루 안에서 일합니다.


우리의 언어는 '데이터', 'KPI', '글로벌 전략', '알고리즘' 같은 최첨단 단어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호모 이코노미쿠스'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하지만 회의실 문이 닫히는 순간, 혹은 회식 자리에서 알코올이 몇 순배 도는 순간, 이 기이한 마법은 풀려버립니다.


논리와 데이터는 온데간데없고, 누군가는 붉으락푸르락 고성을 지르며 책상을 내리칩니다. (위협)


누군가는 회의 내용보다 상석이 어디인지, 의전 순서가 맞는지에 목숨을 겁니다. (서열 확인)


누군가는 힘센 자의 썰렁한 농담에 과장되게 웃으며 손을 비벼댑니다. (털 고르기)


이 기괴한 풍경, 어딘가 익숙하지 않으신가요? 이것은 최첨단 기업의 회의라기보다,

흡사 우두머리 수컷을 중심으로 둘러앉은 침팬지 무리의 서열 싸움과 소름 돋게 닮아 있습니다.


왜일까요? 왜 우리는 양복을 입고 원시인처럼 행동할까요? 진화심리학은 이에 대해 아주 명쾌하고도 서늘한 답을 내놓습니다.


우리의 문명은 21세기에 살고 있지만,
우리의 뇌는 여전히 1만 년 전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뇌에 깔린 구석기 운영체제


우리의 뇌는 지난 수백만 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습니다. 인류 역사의 99.9% 시간 동안, 우리는 수십 명 단위의 작은 부족을 이뤄 사바나 초원을 떠돌며 살았습니다.

그 시절, 생존의 법칙은 단순하고도 잔혹했습니다.


첫째, 무리의 우두머리(Alpha) 눈에 들어야 합니다.

무리 지어 사는 영장류에게 '추방'은 곧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혼자서는 맹수를 당해낼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권력자의 눈치를 살피고, 그에게 버림받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둘째, 서열을 높여야 합니다.

높은 서열은 곧 더 많은 식량과 더 좋은 짝을 의미했습니다. 서열이 밀린다는 것은 내 유전자를 후대에 남길 수 없다는, 생물학적 멸종의 공포였습니다.


셋째, 낯선 자를 경계해야 합니다.

외부인은 우리 부족의 식량을 뺏으러 온 잠재적 약탈자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편'에게는 한없이 관대하지만, '남의 편'에게는 본능적인 적개심을 드러냅니다.


문제는 이 '구석기 생존 코드'가 현대의 대기업 환경에서 치명적인 버그를 일으킨다는 점입니다.


김 대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고작 '팀장'에서 '실장'으로 직함 하나 바뀌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김 부장님은 저렇게 목숨을 걸고 경쟁자를 깎아내릴까? 연봉 차이도 얼마 안 나는데."


하지만 김 부장의 뇌 입장에서 승진 누락은 단순한 자존심 문제가 아닙니다. 사바나의 본능은 그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네 서열이 밀려났어. 이제 너는 사냥감의 가장 맛없는 부위를 먹게 될 것이고,

포식자가 나타나면 제일 먼저 희생될 거야."


이것은 물리적 생존의 공포입니다. 그래서 임원들이 의전 순서에 목숨을 걸고, 상석 배치가 조금만 틀어져도 불같이 화를 내는 것입니다. 그들은 탐욕스러운 게 아닙니다. 그들의 뇌 깊은 곳 편도체는 지금 "서열이 밀리면 죽는다!"는 빨간 경보를 미친 듯이 울리고 있는 것입니다.



원시인을 미워하지 마라, 관찰하라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의 시야는 달라집니다.


회의실에서 핏대를 세우며 소리 지르는 김 부장을 볼 때,

더 이상 "저 인간은 인성이 왜 저러지?"라며 스트레스받지 마십시오.

대신 한 발짝 물러서서, 동물원 우리 안을 들여다보듯 관찰하십시오.


"아, 지금 저 양복 입은 영장류는 자신의 서열이 위협받는다고 느껴서,

과시적인 몸짓으로 우월감을 표현하고 있구나. 전형적인 사바나의 수컷 행동이네."


이 인지적 거리 두기야말로, 당신이 감정의 소모 없이 이 정글에서 제정신을 지키는 첫 번째 방패입니다.


그들은 나쁜 게 아닙니다. 그저 진화가 덜 된 채로 넥타이를 맸을 뿐입니다.


하지만 방심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이성적으로는 덜 진화했을지 몰라도,

'정치적 생존 본능'만큼은 당신보다 훨씬 교활하게 발달해 있습니다.


다음 화에서는 이 원시적인 본능을 이용해 우리를 조종하려 드는, 조직 내의 진짜 괴물들.

'소시오패스형 리더'들의 실체를 낱낱이 파헤쳐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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