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내가 이상한 게 아니다.

미친 건, 바로 이 조직과 시스템이다

by 망구르빕

서울, 오전 7시의 유령들

"지이이잉-"


오전 7시 12분. 서울 지하철 2호선.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한 사람들 틈, 낯선 타인의 땀 냄새 섞인 등짝에 얼굴을 파묻은 채 주머니 속 스마트폰의 진동을 느낍니다.


짧고 신경질적인 진동. 화면을 켜보지 않아도 알 것 같습니다. 제 신체 리듬보다 더 정확하게 이 시간에 저를 찾는 사람, 김 부장입니다.


겨우 손을 비집고 넣어 확인한 액정에는, 역시나 그의 이름이 떠 있습니다.

"김 대리, 어제 보낸 주간 보고서 폰트가 왜 이래? 임원 보고용은 맑은 고딕 말고 나눔 고딕 쓰라고 했잖아.

8시 반까지 다시 해서 책상 위에 올려놔."


순간, 목구멍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어 오릅니다.

어젯밤 11시, 야근을 마치고 퇴근하는 제 등 뒤에 대고 "대충 내용만 정리해 둬, 꾸미는 건 나중에 하고"라고 했던 그의 목소리가 생생한데 말이죠.


하지만 저는 반사적으로 채팅창에 입력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그의 변덕을 믿은 게 잘못이었습니다. 아니, '대충'이라는 단어를 곧이곧대로 믿은 제가 바보였습니다.


지하철 차창 밖으로 한강의 윤슬이 반짝이고 있었지만, 제 눈에는 그저 잿빛 콘크리트 벽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잔상으로만 보였습니다.



오전 9시 30분, 대회의실의 유령들


"그러니까, 내 말은 혁신을 하자는 거야! 혁신! 우리 본부는 왜 이렇게 절실함이 없어?"


본부장의 고함이 마이크를 타고 회의실의 공기를 찢어발깁니다. '혁신'. 입사 3년 차인 제가 이 회의실에서 50번도 넘게 들은 단어입니다. 절실함을 외치는 본부장님의 넥타이는 오늘도 명품 브랜드입니다. 그의 절실함과 우리의 절실함은 과연 같은 무게일까요?


제 옆자리 박 과장은 세상에서 가장 진지한 표정으로 수첩에 무언가를 적고 있습니다. 슬쩍 곁눈질로 훔쳐보니, 그는 글씨가 아니라 의미 없는 동그라미만 계속해서 덧칠하고 있습니다.

저것은 가짜노동입니다.


열심히 듣는 척 연기하고, 무언가 적는 척 연기하는 것.

이 회의실에 앉아 있는 20명 중, 지금 당장 회사의 가치를 창출하는 '진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모두가 이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연극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엑스트라 배우들일뿐입니다.



오후 2시, 탕비실의 심문


커피 머신 앞에서 멍하니 종이컵을 바라보고 있는데, 등 뒤에서 서늘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김 대리, 아까 회의 때 표정이 왜 그래? 무슨 불만 있어?"

김 부장입니다. 다 쓴 종이컵을 구겨 쓰레기통에 던지며 묻는 그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섞여 있습니다.

숨이 턱 막힙니다.


"아닙니다. 그냥 어제 늦게 들어가서 좀 피곤해서..."


"피곤? 야, 나 때는 말이야... 일주일 내내 회사에서 밤새우고 사우나 가서 씻고 나오고 그랬어. 요즘 애들은 헝그리 정신이 없어, 헝그리 정신이."


김 부장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논리가 없습니다. 오직 '나 때는'으로 시작해서 '너희는 틀렸다'로 끝나는 서열 확인과 감정 배설뿐입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건 제 반응입니다. 저는 그 말도 안 되는 비난 앞에서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제 입은 사과를 하고 있지만, 머릿속은 혼란스럽습니다.


내가 잘못한 건가?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남들은 다 잘 적응하고 웃으면서 다니는데, 왜 나만 이렇게 매일매일이 전쟁 같고 힘든 거지?



퇴근길, 밤 10시의 깨달음


편의점 앞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미지근해진 소주를 들이켰습니다.

알코올이 식도를 타고 넘어갔지만, 가슴속에 맺힌 응어리는 씻겨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학교 다닐 때 공부를 꽤 잘했습니다. 부모님의 자랑이었고,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며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이 대기업에 입사했습니다.

'정직한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는 무엇이 되어 있나요?

거대한 기계 속에서 가장 빨리 마모되어, 언제든 새것으로 교체될 수 있는 나사 하나.

딱 그 정도의 존재감으로 느껴집니다.


합리적이고 똑똑한 엘리트들이 모여 있는 이곳에서, 왜 매일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이 반복되는 걸까요?

왜 우리는 협력하는 대신 서로를 미워하고, 감시하고, 깎아내려야만 생존할 수 있는 걸까요?


정말... 적응하지 못하는 제가 이상한 걸까요?

아니요. 술잔을 내려놓는 순간, 머릿속에 섬광처럼 스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내가 이상한 게 아니다. 미친 건, 바로 이 시스템이다.



이 글은 그 날카로운 깨달음에서 시작된 기록입니다.

저는 지금부터 저를, 그리고 당신을 병들게 했던 이 거대한 제국을 해부하려 합니다.


진화심리학이라는 메스로 넥타이를 맨 원시인들의 본능을 도려내고,

뇌과학 현미경으로 공포에 마비된 우리의 이성을 들여다볼 것입니다.

그리고 AI 기술로 이 미친 시스템의 설계도를 다시 그릴 것입니다.


당신은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닙니다. 이제 넥타이를 고쳐 매십시오.


우리는 이 시스템 속에서 단순히 살아남는 것을 넘어, 새로운 판을 짜는 설계자(Architect)가 될 것이니까요.


이 긴 여정의 끝에서, 우리는 분명 다른 풍경을 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