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명의 지인 세 명의 친구
26살 무렵, 내겐 아직 취업을 못한 친한 친구가 한 명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부터 일찌감치 (아마 2학년 때부터였던 것 같다) 9급 행정직 공무원으로 진로를 잡고 수험생활을 시작했던 고등학교 동창이다. 합격 인원의 130%를 1차 통과시키고, 면접에서 30%를 떨어뜨린다는데 하필이면 친구가 그 30%에 들었다. 문이 열렸다가 갑자기 자기 차례 앞에서 쾅 하고 닫혀버리자, 그 충격에 친구는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아 했다. 입사 3개월 차가 된 나는 달달한 와플과 캐모마일 차를 사주며 친구를 위로했다.
“네가 공부를 포기하지 않는 한 언젠간 돼.
빨리 되냐 늦게 되냐의 문제인 거지.
그러니까 너무 우울해하지도, 조급해하지도 마.”
이 말을 하고 나서 이럴 때엔 현실을 좀 잊을 수 있는 소설을 읽는 게 좋다면서 신작 몇 권을 추천했다. 친구는 조금 고개를 끄덕거리고 카페 너머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봤다. 대학가였고, 대로변에는 카페와 프랜차이즈 식당, 술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하지만 골목으로 몇 발자국만 들어가면 공무원 학원과 독서실로 가득 채워진 곳이었다. 우리가 앉아있던 카페는 대로변과 골목 사이에 낀 어정쩡한 위치였다. 들어올 때는 대로변인데 우리가 앉아있던 자리에서는 골목이 보였다. 시답잖은 위로를 그치고 우리는 누구는 요새 뭐 한다더라, 누구는 뭐가 됐다더라, 누구는 속도위반으로 곧 결혼한다더라 하는 얘기로 그 대화의 마지막을 채워나갔다.
친구는 7년간의 수험 생활 끝에 공무원이 됐다. 기나긴 터널을 빠져나오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터널을 직접 뚫고 나오는 것만큼 힘겨웠던 친구의 수험 생활을 지켜봤기에 합격 소식이 기뻤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합격하지 않으면 대안이 없는 걸 알았기에, 친구가 무너지는 걸 보고 싶지 않았기에 정말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 친구가 나에게 속 얘기를 털어놓았을 때 나는 너무 놀라서 표정 관리를 하지 못했다. 그때 그날 그 카페에서 나의 위로를 들으면서 속으로 내가 너무 미웠다는 거다. 직장에 들어가서 자리 잡은 친구가 한가한 소리 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사실 그때는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다 미웠다고도 했다. 자판기처럼 쏟아지는 위로가 부담이기도 했다고 한다.
나는 정말 미안해졌다. 친구에게 위로랍시고 건넸던 긍정의 말은 한 걸음 떨어져서 ‘우리’가 아닌 ‘너’의 사연이었기에 쉽게 내뱉을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미안하다고 말했다. 친구는 손사래를 치며 "그냥 그랬다고."라고 말하고 웃어넘겼다. 그러고 나서 친구는 보직 발령을 받은 친구의 공무원 생활과 첫 상사 얘기를 했고, 우리는 얼마 안가 또 깔깔대고 웃으면서 수다를 이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의 결혼생활에 큰 문제가 생겼다. 나는 이번에는 친구의 말을 가만히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철저하게 친구의 편에 섰다. 내가 사회에서 부대끼면서 성장한 것이기도 하고, 친구에게 지금은 속 깊은 얘기를 털어놓을 상대가 얼마나 소중한 지 알게 됐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상처는 먼 사람이 아니라 나의 가까운 사람들이 준다. 기대하는 것도 생기고 내가 그간 준 것도 생각나기 때문이다. 의리니 우정이니 하는 것들은 일정 부분 상호 의무감을 전제로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가까운 이들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더 이상 가까워지지 않으려고 할 때도 있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적당한 거리란 건 따로 정답이 없었다. 그 거리가 철벽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 철벽이 나와 가까운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줄 수도 있는 노릇이지 않은가.
무엇보다 상처를 준 사람이 그동안 나에게 주었던 소소한 즐거움과 재밌는 시간의 기간을 생각하면 그 가치란 건 무엇과 대체하고 싶지 않은 소중한 것이다. 진한 유대감은 생각보다 큰 안정감을 줬다.
참으로 신비로운 것은 그처럼 침통한 슬픔이 지극히 사소한 기쁨에 의하여 위로된다는 사실이다. 큰 슬픔이 인내되고 극복되기 위해서 반드시 동일한 크기의 커다란 기쁨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작은 기쁨이 이룩해내는 엄청난 역할이 놀랍다.
-신영복의《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이런 작은 기쁨이 누군가에게서 받은 상처를 또 치유해주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싶다. 작은 기쁨을 주는 것은 또 내 친구들이므로.
2018년의 마지막 날 종각에서 만나 점심을 함께 먹기로 한 나의 친구는 여전히 나와 잘 지내고 있으며, 이젠 지겹다고 말버릇처럼 푸념하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공무원 생활도 무난하게 잘 버텨나가고 있다. 서로에게 의도치 않은 상처를 주고받고, 또 그것을 잊게 해 줄 만한 작은 기쁨을 서로 주고받으면서.